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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마루 / 임영도

에세이향기 2023. 3. 13. 16:52

마루 / 임영도

 

 

마루는 불평하지 않는다. 찍히고 밟히고 뛰어도 아파하지 않는다. 따뜻한 온돌을 부러워하지 않으며 벽창호로 막힘을 거부한다. 방밖에 앉아서 계절의 변화를 밤낮으로 바라보지만 감탄의 소리도 지르지 않고 무표정이다. 앞마당에서 무슨 일이 벌어져도 간섭하지 않고 비바람이 몰아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마루는 집안 생활의 동선을 이끄는 으뜸자리이다.

경남 함양에 있는 일두一蠹 정여창 선생의 고택을 찾아 민박을 한 적이 있다. 마을 전체가 유서 깊은 선비의 고장답게 고샅길마다 고풍스러운 운치가 깃들어 발길을 멈춰 세운다. 솟을대문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뒤틀린 서까래에서 애잔한 세월의 흔적이 담뿍 묻어난다. 단정하게 배열된 집들은 하늘로 비상하는 듯이 솟아오른 팔짝 지붕의 추녀마루마다 대학자의 기품이 서려 있는 듯하여 고개를 숙이게 한다. 집마다 마당을 향해 넓은 가슴을 열고 한적한 마루들이 빈자리를 내어주며 앉으라 한다.

사랑채가 고즈넉한 마당의 배경이 되어 해 질 녘 노을에 오백 년 노송老松의 목리木理를 마루에 새겨 놓는다. 가지런한 세살무늬의 방문을 열고 옛 주인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나올듯하여 눈가에 긴장감이 흐른다. 애초엔 누르스름했을 나무의 속살이 세월의 풍파에 눌려 거무스름하게 색 바랜 널빤지가 친근한 표정을 짓고 있다. 고요하게 앉아있는 마루들이 단아한 방들을 분리하고 다시 연결하여 5칸의 집을 하나로 묶어놓았다.

한옥은 온돌과 마루의 바닥이 중심공간이다. 온돌은 돌로 따뜻함을 고우지만 마루는 나무로 시원함을 짜낸다. 돌판은 고단함을 눕히고 널빤지는 노곤함을 앉힌다. 방은 내밀함을 숨기고 목소리를 가두지만 마루는 친밀함을 나누고 자연을 끌어안는다. 마루가 있어 소통을 이루고 방이 있어 정을 나눌 수 있다. 마루는 방과 방을 연결하는 통로이며 집안에 있는 광장과 다름없다. 사람과 자연이 일체가 되어 방과 마루에 가족의 삶을 담는다.

마루는 앉아있는 자리에 따라 이름과 역할이 다르다. 대청마루는 집안의 중심축이며 성전이다. 후손들이 도열하여 제례를 올리며 마음속에 조상의 얼을 새기는 엄숙함이 서려 있는 곳이다. 텅 빈 대청에서 머리에 흰 수건을 동여매고 제사음식을 정성스레 준비하는 옛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대청은 손님을 맞이하여 담소를 나누는 예절이 담겨있는 곳이다. 뒷편의 들창을 들어 올리면 마당과 뒤안이 하나의 공간이 되어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받아들이는 멋과 여유를 보여준다. 한여름 밤, 마루 밑의 빈공간을 채운 서늘한 공기가 널빤지 틈새로 올라와 쾌적한 침실이 되기도 한다. 마루 곳곳에 숨겨진 선조들의 지혜 속에 오늘날의 편리함이 녹아있다는 생각에 말없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방문을 열고 바깥기둥(평주平柱) 사이로 발을 내디디면 툇마루가 여백의 공간으로 다가선다. 댓돌에 올라 일상의 짐을 벗고 방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의자와 같다. 마루 밑에서 멍멍이는 선잠을 깨 뒤척이고 생쥐가 귀를 세우며 마루 위의 비밀소리를 엿듣는 곳이기도 하다.

툇마루는 사색의 마당이다. 천지가 어둠에 갇히는 칠흑의 밤에 툇마루에 앉으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린다. 오감 중에서 가장 기가 센 시각이 막히면 청각과 후각이 생기를 띄며 어둠을 밝힐 수 있다. 명상을 할 때나 냄새를 맡을 때 눈을 감지 않는가. 지나간 시공을 회상할 때도 눈을 감고 마음속 눈동자로 보아야 선명해진다. 어둠 속에서 볼 수 없는 어제의 모습도 툇마루 위의 달빛 속에서는 또렷이 보인다.

집 옆면과 뒤편에 기둥 밖으로 튀어나온 쪽마루가 앙증맞다. 방문을 열고 바로 발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간이 마루지만 동바리마다 옹골찬 기운이 서려 있다. 햇빛 따스한 봄날, 쪽마루에 걸터앉아 후원의 봄기운을 느끼고 꽃밭에 활짝 핀 꽃잎을 바라보며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정겨운 마루다. 지나던 길손이 땀을 닦고 비를 피하던 휴식의 자리이기도 하다. 쪽마루에 봇짐을 내려놓고 마을의 소문을 들으며 세상을 살피던 사랑마루이다. 이곳에서는 보이지 않는 바람의 형체가 앞산 나뭇가지의 흔들림으로 나타나 보이고 구름의 흩어지는 모습으로 가는 곳을 알아챈다.

고고히 솟은 누각처럼 다른 마루보다 한 자(30cm)이상 높게 단을 둔 누마루가 위엄을 보여준다. 집의 방향을 뒤틀어 꺽여진 한 칸의 공간이 삼면을 열어놓고 자연을 관조하는 자리를 만들어 놓았다. 섬돌도 없고 마당에서 바로 오르지 못하는 권위의 마루이다.

자연의 풍광을 집안으로 넉넉히 끌어들이고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교류의 장소이기도 하다. 쇠 지팡이에 몸통을 지탱하고 힘겹게 서 있는 소나무가 시야를 가리지만, 한때는 솔바람과 대화하며 시상을 읊조리지 않았을까. 누마루의 난간 기둥을 붙잡고 서서 먼 하늘을 바라보며 난세에 한숨도 깊었으리라. 다른 마루보다 조금 높게 앉은 누마루지만 집에서는 동등한 자리로 한 몸처럼 뼈대를 이루고 있어 더욱 빛이 나는 듯하다.

양옥의 거실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이기적인 삶에 젖어 사는 현실에 마루의 기억이 퇴색되고 있다. 한옥의 마루라는 열린 공간에서 자연과 소통하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선대의 여유로운 생활상이 반짝이며 다가온다. 집의 가장 높은 곳에 앉은 지붕의 용마루가 먼 산의 고갯마루를 넘는 구름의 흐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에게는 낮은 곳에 머물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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