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전체 글 2381

하얀, 빈티지 / 문경희

하얀, 빈티지 / 문경희 나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하긴, 살아오는 내내 이것을 취하고 저것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그래 봐야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는 빤한 확률인 것을 알면서도 매 순간 세상의 끝에 선 듯 갈팡질팡하고 했다. 중차대하거나, 쓰잘머리 없거나, 나를 흔들리게 만드는 것들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그러나 흔들림으로 서성거린 시간에 비해 결단은 가능한 귀차니즘에 손상을 입지 않는 정도에서 싱겁게 내려지곤 했다. 탕, 탕, 탕. 판사 봉을 내리치듯 마음을 굳히기까지 고심으로 보낸 시간이 아까웠지만, 그 비생산적인 일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었다.​ 삼십 대의 중턱을 넘은 무렵, 한두 오라기씩 반갑잖은 손님이 터를 잡기 시작했다. 민망했다. 심심찮게 눈에 띄는 ..

좋은 수필 2026.09.01

바다 / 장금식

바다 / 장금식 응봉산 정상에 올랐다. 오른쪽엔 화진포 바다, 왼쪽으로는 화진포 호수 두 개가 서로 엎드려 있다. 산과 바다, 호수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일몰에 젖은 아랫마을은 넋을 잃게 하고 나그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 차도에는 어느새 가로등이 제 몸을 밝힌다. 빛에 안도하지만 배는 고프고 다리는 후들거린다. 육체의 고통은 영혼의 정화라고 했건만 의식은 자꾸 안갯속을 헤맨다. 간신히 정신의 끈을 잡으며 1시간 반 정도 더 걸으니 거진항이다. 18km, 6시간 홀로 걷기에 마침표를 찍는다. 저 멀리 비친 희미한 불빛이 칠흑 같은 바다에 스며들자 해수면엔 윤슬이 반짝인다. 여러 색으로 서 있던 등대 탑은 어둠에 가려 낮의 자취를 감춘다. 가물거리는 불빛은 내 눈에서 멀어지다가 가깝다가, 희미하다가 ..

좋은 수필 2026.08.26

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단체사진/이성목

서울매일신문 2026년 6월 5일 금요일자유진의 詩가 있는 풍경 단체사진 이성목나는 왜 늘 뒷줄에만 서 있었을까누렇게 얼룩지고 빛바랜 흑백사진눈부시게 터뜨려 주던 플래시 불빛과좀체 터지지 않던 억지웃음들이그땐 어쩌면 이렇게도 어정쩡한 자세였는지앞선 자들에게 얼굴 가려지고청춘이 반쪽으로 남은 사내얼마나 더 뒤꿈치를 들고 견뎌야만 할까세상의 뒷줄들은사람은 사회적인 존재다. 인정욕구가 계속 가려지고 무시당한다면 상처를 받을 수 있다.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주목받는 것과 행복한 것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시인은 ‘왜 나는 늘 뒷줄에만 서 있었을까’ ‘얼마나 더 뒤꿈치를 들고 견뎌야만 할까’ 라고 말하지만,행복이란 자신의 가치와 관계,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역설로 보여주고있..

좋은 시 2026.08.22

은과 실 / 박은실

은과 실 / 박은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건, 어쩌면 그와 나 사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의미의 실 하나가 생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쑥쑥, 사랑, 무럭, 축복... 그리고 온맘, 만복... 요즘 부모들은 태중胎中의 아기에게도 이름을 지어 불러준다. 이름이란 부모의 바람과 사랑이 담겨 있으니, 태명胎名이라도 그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아기를 향한 간절한 기도일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이름이 간절한 바람이나 소망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류시화 시인이 엮은 속 인디언 이름들은 자연이나 현상, 혹은 구체적인 사물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바람이 몹시 불었던 날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언덕’이 되었고, 지빠귀가 울면 ‘지빠귀가 노래해’가 되었다. ‘빗속을 걷다’ 같은 서정적인 이름도 있었고, ‘너 잘 만..

좋은 수필 2026.08.12

영광 서림 / 강표성

영광 서림 / 강표성 바람이 골목의 모서리를 스치자 책들이 몸을 뒤척인다. 인도까지 밀려 나온 책더미 사이에 그가 앉아 있다. 전통시장의 헌책방 거리를 지키는 낯익은 터줏대감이다. 오랜만유” 우렁찬 목소리가 골목으로 번진다. 그저 소일하는 태도가 아니다. 한때 번화가에서 큰 서점을 운영했다는 그는 이제 낡은 활자의 숲을 지킨다. 책들의 미로 속에서 그의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 지하로 내려가자 퀴퀴한 냄새가 훅 밀려온다. 먼지와 묵은 세월이 뒤섞인 공기다. 끝내 사라지지 못하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의 숨결이다. 주인이 뒤따라와 구석구석 전등을 건다. 불빛이 번지자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던 책들이 선잠에서 깨어난다. 오래된 목재와 빛바랜 종이 위로 시간의 지문이 켜켜이 스며있다. 한 권을 집어 드는 순간..

좋은 수필 2026.08.10

국밥집에서 / 박승우​

국밥집에서 / 박승우​허름한 국밥집에서국밥 그릇 먹다보면그래도 사는 게 뜨끈하다는 생각이 든다고장난 시계와 삐걱거리는 의자와비스듬히 걸린 액자가 다정하다는 생각이 든다뜨거운 국밥 한 숟갈 목젖을 데워오면시린 사랑의 기억마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외로움도 쓸쓸함도 다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한자리 모여 앉아 제각각의 모습으로 국밥을 먹는 사 람들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이 익었다는 생각이 든다소주 한 잔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국밥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먹으며구겨진 날들이 따뜻하게 펴지고 있다

좋은 시 2026.08.09

외할머니의 숟가락 / 손택수

외할머니의 숟가락 / 손택수 외갓집은 찾아오는 이는 누구나 숟가락부터 우선 쥐여주고 본다 집에 사람이 있을 때도 그렇지만 사람이 없을 때도, 집을 찾아온 이는 누구나 밥부터 먼저 먹이고 봐야 한다는 게 고집 센 외할머니의 신조다 외할머니는 그래서 대문을 잠글 때 아직도 숟가락을 쓰는가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고 마실을 가는가 들은 바는 없지만, 그 지엄하신 신조대로라면 변변찮은 살림살이에도 집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그릇의 따순 공기밥이어야 한다 그것도 꾹꾹 눌러 퍼담은 고봉밥이어야 한다빈털터리가 되어 십년 만에 찾은 외갓집 상보처럼 덮여 있는 양철대문 앞에 서니 시장기부터 먼저 몰려온다 나도 먼 길 오시느라 얼마나 출출하겠는가 마실 간 주인 대신 집이 쥐여주는 숟가락을 들고 문을 딴다​ ‘호랑이..

좋은 시 2026.08.09

애플수박을 기르는 이유/강돈묵

애플수박을 기르는 이유/강돈묵 대부분의 사람은 과일을 고를 때 크기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값은 같은데 큰 것이 잘 익어 맛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실컷 먹고도 남을 양이면 지친 이웃사촌과 나누어 맛을 볼 수 있는 것이 수박이다. 시골집 돌담을 넘는 소쿠리에는 종종 커다란 수박이 들어 있었다. 장마철이라 습도는 높고 한없이 기온이 오르는 날이면, 체온을 덜어내고자 온 식구가 대청마루에 모여 앉는다. 어머니는 두멍에서 큰 수박 통 하나를 꺼내 오셨다. 미리 텃밭에서 따다가 찬물에 담가 둔 것이다. 칼을 대기가 무섭게 쩍 벌어지며 빨간 속내를 내보이면 저절로 군침이 돌았다. 어머니의 무더위 퇴치법은 수박으로 시작하여 식혜로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는 어머니도 아니 계시고 커다란 ..

좋은 수필 2026.08.08

등대 / 유하문

등대 / 유하문 지붕 낮은 집들이 송이버섯처럼 엎드려 있는 작은 마을 앞 바다에 방파제가 두 팔 벌려 마을을넘보는 거센 파도 막아 줍니다. 근심 끝에 파수병 하나 하얀 총 들고 서 있습니다​멀리 부레옥잠처럼 떠 있는 형제 섬들 너머로 아침나절 조업나간 배들이 돌아오고, 서녁 하늘 피조개 속살 같은 노을이 만선한 어부들 얼굴에 단풍으로 피어났습니다​이윽고 밤이 되면 보초 선 이등병이 아직 귀환하지 않은 전우들을 위해 반딧불처럼 기별을 보내고육지에선 촛불이 활화산 마그마처럼 흘러 바다까지 소식을 전해주었습니다​마을 초입에 서서 어두워진 바다를 바라보며 소매 끝 눈으로 가져가는 노모와 먼저 간 아내를 위해 우리들의 아버지는 작은 촛불 켜고 착착착 잘도 돌아옵니다​아침에야 걱정 거두고 잠이 든 등대 안쪽 부두엔..

좋은 시 2026.07.23

서리(霜)/이순금

서리(霜)/이순금올봄에 지인으로부터 목화씨를 서너 알 받았다. 솜털에 싸여있는 흑갈색의 팥알 크기다. 두말할 것 없이 옥상의 화분에 고이 심었다. 봄볕에 그중 한 개가 넓적한 떡잎을 내밀더니 무성하게 쑥쑥 자랐다. 여름날 더위 속에서 희고 발그레한 꽃들을 피워내더니 연초록색 열매를 매달기 시작한다. 제법 통통해질 무렵 하나를 따서 입속에 넣고 깨물어 본다. 목화의 소박한 향기를 품은 담백한 즙이 입안에 고인다. 한 개를 더 따려다 손을 멈추고 송이 수를 세어본다.가을의 초입에서 먼저 매달린 송이가 사방으로 입을 쩍쩍 벌리며 하얀 솜털을 부풀리기 시작한다.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아픈 추억 한 자락이 재빨리 달려와 내 손을 잡는다. 그때는 과년한 딸이 있는 집들은 거의 밭에다 목화를 심었고, 가을이면 ..

좋은 수필 2026.07.22

풍경 소리 / 이봉주

풍경 소리 / 이봉주​울음 속에 쇳물처럼 솟구치는 날개가 있다천 번의 담금질에 쇳덩이 속에서 날개가 돋는다팔만 사천 번의 메질, 울음의 두께로 날개를 편다오래도록, 응어리진 울음을 풀어주고 흩어진 울음을 모아 주던 손은 천 개의, 귀 없는 바람이다법당문 꽃살무늬 고요 속으로 속세의 상처들이 돌아와 엎드리는 밤산사 지봉 아래 둥지 튼 새 한 마리한 점 바람에불의 날개로운다

좋은 시 2026.07.22

숙영식딩 / 손진은

숙영식딩 / 손진은 늦점심 후 마루끝, 구두끈 매다차양을 뛰어다니는 빗소릴 듣네석류꽃 환한 그늘에 반쯤 가린 간판‘–’가 떨어져 나간 ‘숙영식딩’에어룽어룽 빗방울들, 매달리네천마총 돌담길 반백년도 넘게 지킨 밥집우물가 숙영이라는 이름 다홍치마 할머닌여즉 그 흰손으로 푸성귀를 씻고 있고안쪽 방 벽에는안강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문의,광대뼈가 나온 사내 무겁게 훈장 매단 채이쪽을 인자한 웃음으로 건너다보네숙영식당, 푸른 아크릴 간판이 희멀겋게 바래는 동안비바람 햇살 벌떼처럼 잉잉대며 갉아대도그리움은 딩, 딩, 덩더웅 딩,아직 가야금 청줄로 울리고 있다는 거네석류, 가늘게 떨리는 잎새에 얹어논 가슴처럼숙영式 ‘딩’이네아까부터 작은 몸집의 저 새는가지 새 그늘에 쉴 새 없이 들락거리고나는 반백년을 은핫물처럼 흐르며..

좋은 시 2026.07.22

도마의 노래/최수일

도마의 노래/최수일 믹서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새벽의 고요를 갈아엎는다귀를 틀어막다가 나는모자란 잠을 둘둘 말아 끌어당기다가문득 먼 곳에서부터 내 잠을 깨우던어머니의 도마 소리에 부스스 잠을 털고 일어난다 이른 새벽어머니가 마늘 다지는 그 소리는낙숫물이 떨어지는 소리처럼 들리다가어느 순간 내 귀의 귀걸이처럼 걸려 찰랑거렸다어머니의 쪽파 써는 소리는낡은 창문을 사락사락 문지르는 고양이 발자국 소리 같았고북어 몸통 두드리는 어머니의 도마질 소리는투두둑 투두둑, 배고픈 복서의 거친 주먹질 같았다객지에 나간 아버지의 안부가 뜸해질 때면그때 부엌에서 들려오던 어머니의 도마 소리는없는 아버지를 세워두고 흠씬 패대기치는 여장부 같았고할머니께 잔뜩 핀잔을 들은 날의 도마질 소리는마른장마 잔뜩 낀 하늘처럼 무겁고 둔탁했..

좋은 시 2026.07.17

평미레 / 김종국

평미레 / 김종국 잡곡을 조금 살까 해서 쌀집 안으로 들어선다. 은빛으로 여문 쌀알 속에서 긴 계절의 향기가 난다. 감자즙 내음 같고 시골 부엌의 공기 맛도 느껴진다. 됫박으로 쌀을 휘저을 때 쌀알이 서로 부딪치며 내는 작은 마찰음까지, 얼마만인가. 공감각적인 기억이 나를 어린 시절로 데려간다. 정미소 옆 나지막한 쌀집이 있었다. 낮은 처마 밑으로 드러난 낡은 서까래가 빗살처럼 줄지어, 오랜 세월의 무게를 떠받쳐 왔다. 지난 시간의 막이 겹겹이 쌓인 양철 간판은 한때 진했을 글씨가 희미하게 바랬다. 가게 한가운데 뒤주와 됫박, 저울이 자리를 지키고 쌀자루는 무거운 순서대로 벽을 따라 층층이 기대어 있었다. 뒤주에는 쌀이 작은 동산처럼 쌓여 있었다. 되를 쌀 속으로 찔러 넣으면 알곡이 작은 파도처..

좋은 수필 2026.07.17

덧칠 / 심재숙

덧칠 / 심재숙 매일 오가던 길목, 유난히 허름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상가 건물 하나가 어느 날 거대한 가림막 뒤로 자신을 숨겼다. 몇 달간 이따금씩 들려오던 둔탁한 파열음과 망치 소리는 건물이 오랜 세월 견뎌온 낡은 흔적을 허물고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다. 한때는 그 거리에서 가장 빛나는 얼굴이었을 테지만 속절없이 흐르는 시절의 무게를 비워내고 시대에 맞추어 거듭나기 위해 혹독한 진통을 겪는 중이다.​ 가림막이 걷힌 자리에는 전과 너무나 다른 생경하고도 멋진 건물이 서 있다. 비바람에 깎여나갔던 거친 시멘트 외벽은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마감되고 아귀가 맞지 않던 낡은 창틀 대신 맑은 통유리가 눈 부신 햇살을 머금고 있다. 허물어짐의 위기를 견디고 새 생명을 얻은 그 눈부신 광경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

좋은 수필 2026.07.17

몽매 / 길영숙

몽매 / 길영숙 살벌하다. 눈알을 희번덕이며 날 춤을 춘다. 허공에서 휘두른 쟁기가 적의 심장에 꽂힌다. 생사의 경계선도 뛰어넘는 질긴 놈이다. 마당과 집 둘레에 잡(雜)스럽게 무성한 초록이 눈엣가시다. 특별한 능력을 알기 전까진 무지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만다.​ 하찮게 생각한 적들이 짧게 깎인 잔디 사이사이에 숨어든다. 주인인 양 초록 융단 속에서 세를 불린다. 낯익은 토끼풀, 민들레, 제비꽃이 주를 이루지만 이름 모를 풀도 많다. 한여름 태양 빛이 키워낸 침입자를 매서운 겨울이 잠재워주기만 기다린다. 스스로 후퇴하는 계절이 되어서야 숨통이 트였다.​ 흙냄새만 나면 뒤덮는 무법자들은 시골 어디에서든 골칫덩이다. 로망이었던 전원생활이 현실의 무게로 짓눌러온다. 고달픔을 벗어나기 위해 화생방전을 고려하..

좋은 수필 2026.07.17

화상 / 현상연

화상 / 현상연 라면을 끓여 상에 놓다가 쏟았다냄비와 불의 관계는 멀지만라면과 국물의 관계는 뜨겁다뜨거운 국물이 옷자락을 적셔 생살을 무는 듯통증이 번져 부어오른다화상의 흔적은 국물 혹은 진물일 것이다화기가 지난 곳마다 통점이 점령을 당하고주둔지의 막사처럼 물집이 집을 짓는다수포는 아픔의 관계들이 모여드는 곳,습하거나 끈적한 곳은 고통의 은신처바늘로 물집을 허물어본다손에 뜯겨나는 살점이 거푸집처럼 무너진다먹구름 드리운 날에는 데인 상처가폐부 깊숙한 곳으로부터 가려워 온다눈을 감아도 불길로 솟아오르는 굳은살불면의 어둠속에서 긁는 가려운 살갗,한숨을 뱉어내는지 밤바람소리에

좋은 시 2026.07.14

귀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자면 - 박은실

귀에 대하여 한 말씀 드리자면 - 박은실 이순耳順에 가까운 여성들의 점심 식사 장, 쌍꺼풀 수술을 했느니 얼굴 거상을 했느니…. 한참 말이 오가다 마침내는 예쁜 년보다 아프지 않은 년이 최고라며 건강 얘기로 귀결되었다. 물방울 모양의 달랑거리는 귀걸이를 한 친구는 이석증으로 고생을 호되게 치렀단다. 뇌 쪽 문제인 줄 알고 MRI에, CT까지 한바탕 소란을 떨고 알아낸 병명이 이석증이었다며 귀가 얼굴 외곽에 있더라도 괄시 말고 대접을 잘하라고 농담 삼아 말했다. 하긴 그렇다. 예뻐진다면 청산가리도 갈아 마신다는 존재가 여자들인데, 여태 귀를 성형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으니. 미모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흔히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따진다. 그들 중 귀가 제일 먼저 나와 있음에도 얼굴 변두리에 자리해서인지 사..

좋은 수필 2026.07.10

제19회 충북도민 백일장--수필

제19회 충북도민 백일장 입상작 ▩심사평▩ 너무 궁핍한 편견일지는 몰라도 글감이 너무 평범한 것이면 주제는 아주 특별한 게 효과적이고, 글감이 특이한 것이면 주제는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흔한 것을 선택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머니’에 관하여 사연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모든 사람은 세상에 펼쳐놓을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글감이다. 이런 글감으로 글을 쓸 때는 남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를 가지고 나타나야 차별화가 가능하다. 더구나 ‘어머니’에 관한 글의 내용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데에 머무르고 만다면 독자는 바로 실망하고 덮을 게 뻔하다. 글의 내용은 신선해야 독자의 눈을 사로잡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수필 2026.07.09

못을 빼다 /권숙월

못을 빼다 권숙월​티브이 광고에잘못 한다에서 못을 빼니 잘 한다가 되었다잘못 먹었다에서 못을 빼면 잘 먹었다잘못 살았다에서 못을 빼면 잘 살았다잘못 가르쳤다에서 못을 빼면 잘 가르쳤다잘못 배웠다에서 못을 빼면 잘 배웠다자주 써먹어 녹슬지 않은못, 빼면 이렇게 뜻이 달라진다꾸중이 칭찬으로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말로 바뀐다제자리 잘 박힌 못이문장을 완전히 바꿔 놓는 것이다

좋은 시 202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