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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썩어도 산다 / 김향남​

에세이향기 2026. 5. 28. 08:58

 

 
 

속이 썩어도 산다 / 김향남

 

숲길을 걷다 보면 가끔 그런 나무를 만난다. 잎은 무성한데 속은 텅 비어 시커멓게 썩어버린 나무. 마치 누군가가 몸 한가운데를 오래 후벼 파낸 듯 깊은 구멍이 나 있지만, 놀랍게도 그 나무는 여전히 살아 있다. 햇빛을 받으면 연둣빛 잎을 피우고, 바람이 지나가면 가지 끝을 흔들어 기척을 낸다. 사람이라면 이미 끝났다고 여길 상처인데도, 나무는 다시금 잎을 내고, 단풍이 들고, 겨울을 건넌다.

식물 생태학에서는 이런 나무를 ‘비어있는 중심’을 가진 개체, 혹은 ‘중공中空나무’라고 부른다. 흥미롭게도 나무에게 속이 썩는다는 것은 반드시 죽음의 신호가 아니다. 오히려 오래된 나무일수록 중심부가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나무는 생장 층, 즉 겉껍질 마로 안쪽의 얇은 부분에서 살아 움직이며 양분을 교환한다. 그곳만 무사하면 속이 비었어도 생은 계속된다. 생명의 조건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중심부의 단단함이 아니라, 겉과 속 사이 어디쯤에서 이루어지는, 살아 있는 얇은 층에 있다는 말이다.

나무는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도,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상처를 그대로 둔 채 그 위에서 새잎을 틔운다. 그 태연한 생존의 방식을 보고 있으면 인간의 고통과 회복도 저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아문 뒤에야 다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덜 아문 채로도 계절을 건너는 일, 나무는 어떤 교훈도 강요하지 않지만, 묵묵히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분명한 말을 건넨다. 삶은 상처 없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품은 채 어떻게 제 모양으로 서 있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나무는 본래 상처를 안고 사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비어버린 속, 긁히고 벗겨진 껍질, 계절마다 다시 벌어지는 균열까지 모두 자기 몸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생을 파괴하는 힘과 생을 지속시키는 힘이 한 몸 안에서 뒤섞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상처가 사라져야 온전하다고 믿지만, 나무는 상처를 지닌 채로도 충분히 완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속이 비어가는 만큼 나무는 더 가벼워진다. 바람이 불어와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 중심이 비어 공명통처럼 변해 버렸기에 바람을 흘려보내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외부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내지 않고, 속으로 스며든 바람을 의연히 통과시켜 버린다. 그래서 더 오래 버티는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단단함이 강함이라고 믿지만, 나무는 오히려 ‘비어있음’으로 더 오래 버틴다.

‘속 빈 나무’는 또 다른 생명을 품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딱따구리는 그 안에 둥지를 틀고, 작은 짐승들이 겨울밤을 견딘다. 벌들이 숨어들고, 빗물이 고여 곤충들이 드나드는 작은 웅덩이가 되기도 한다. 비어버린 내부가 누군가에는 집이 되고 피난처가 된다. 상처를 감추지 않는 몸이 다른 생명을 들이는 그릇이 되는 것이다. 상처가 하나의 생태가 되는 순간이다.

봄비가 지난 뒤 그 나무 앞을 지난다. 검게 뚫린, 그 빈 가장자리에서 밀려 나온 연한 잎과 젖은 껍질의 미세한 윤기를 본다. 한때는 결핍으로만 보였던 자리가 사간이 지나자 그 나무를 가장 오래 설명하는 얼굴이 된 듯싶다. 숲에서는 흠 없는 나무보다 저마다의 비어있음과 균열을 지닌 나무들이 더 깊은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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