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소소한 이야기 3

별표 전파사 / 박진형 作

유홍준의 시와 함께] 별표 전파사 / 박진형 作  그의 전파사에는 수선되지 않는 시간이 흐른다세 개의 별과 금빛 별이 반짝이던 시절부터별을 수리하던 그는 오늘도 별의 안부를 묻는다  떨어진 별들이 다시 운행하기를 기다릴 때이들은 한 음계씩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사내의 회로계를 거치면 비밀은 드러나  전파사는 별들의 무덤에서 별들의 자궁으로 변했다그의 드라이버만 있으면 별들은우주 어디든 다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그의 은하수를 건너 새로운 별로 이주할 꿈을 꾸었다별똥별이나 혜성은 그의 전파사를 기웃거렸다마모된 공구함과 칸칸이 채워진 낡은 부속품들은 오랜 친구하늘에서 노래하는 별들 속에 그의 체온이 남아 있다점점 사라지는 별들과 새롭게 태어나는 별들 사이에서그의 전파사는 종종 기우뚱거린다어떤 별도 들르지..

소소한 이야기 2024.09.27

흑산/김훈

\ - 장대는 아가리 옆에 푸른 수염이 두 개 돋아 있다. 가슴 밑의 지느러미는 부채와 같다. 푸르고 투명하다. 지느러미로 물 밑바닥을 더듬어면서 짐승처럼 걸어 다닌다. 장대는 큰 소리로 운다. 장대의 울음소리는 개구리 울음소리와 같다. 해질 무렵에 울어대는 것도 개구리와 같다. 장대가 우는 연유는 알 수 없다. 조기는 때로 몰려가면서 운다. 조기 때의 울음은 우레처럼 온 바다에 울린다. 물 위에 뜬 어부들은 먼 조기 울음소리에 잠들지 않는다. 어부들은 물속에 대나무 통을 담가놓고 조기 울음소리를 듣는다. 어부들은 소리 나는 쪽으로 배를 저어가서 그물을 내린다. 길목을 아는 어부는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조기를 건져 올린다. 조기는 배 위에서도 옆구리를 벌컥거리면서 운다. 조기가 우는 연유 또한 알 수 없..

소소한 이야기 2023.07.20

조선매화/김화성

조선매화 햐아, 숨이 막혔다. 춘분을 앞두고, 올해도 어김없이 구례화엄사 각황전 옆 수백년 늙은 홍매가 몸을 풀었다. 너무 붉어 검은빛마저 감도는 흑매(黑梅)’. 붉고 깜찍한 홑꽃들이 검은 줄기에 ‘꽃등불’을 조롱조롱 매달고 있었다. 발갛게 우꾼우꾼 달아오른 숯불. 마치 두루미가 외발로 서 있는 듯, 허리를 살짝 비틀고 무심하게 먼 하늘을 돌아보고 있었다. 꽃마다 앙증맞은 다섯 장의 선홍 꽃잎. 영락없이 뿌루퉁하게 입을 내민 철부지 막내딸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홍매의 ‘검은빛’을 잡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고 헤덤볐다. 순천선암사 늙은 매화들도 우르르 꽃을 토해냈다. 사람들은 육백 살이 넘는 무우전 담장곁 홍매와 원통전 뒤편의 백매(이상 천연기념물 제488호) 주위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뒤틀린 가지..

소소한 이야기 202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