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1 23

고택에서 / 박시윤

고택에서 / 박시윤   관가정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른 봄의 따스함이 길 곳곳에 아지랑이로 내려앉아 있다. 온화한 지붕의 선에 시선이 머문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고요하고 옛것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은 바쁜 걸음마저 느리게 만들어 놓는다. 여린 봄바람에 바싹 마른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일다가 사라지다. 막 잎을 돋우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그늘과, 남몰래 하늘을 받드는 찔레의 군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여린 순을 베어 무니 5월의 싱그러움이 입속으로 들어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친다. 찔레의 향기에 사로잡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아득히 먼 옛날로 접어드는 시간의 길목처럼 잠시 동안 어지러움이 일었다. 현실에서 멀어져 머무는 동안 나의 마음은 600년을 거슬러 푸덕한 아낙이 되어 있었..

좋은 수필 2025.01.16

부처와 마리아가 만나다 / 사윤수

부처와 마리아가 만나다 / 사윤수    어느 레스토랑에서 손님이 웨이터에게 안심 스테이크를 주문한다. 고기는 마블링이 좋은 부위로 미디움으로 익혀주시고 소스에 후추는 조그만 넣으세요. 수프는 호박수프로 묽게, 그리고 샐러드는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주세요. 주문을 받은 웨이터가 주방 쪽으로 걸어가서 주방장에게 시큰둥하게 전달한다. 안심, 하나!   종교가 신이 아닌 인간을 위한 것이라면 저마다 다른 숭배의 대상과 계율도 결국 구원이라는 하나의 의미로 귀결된다. 부처님 오신 날에 신부와 수녀가 법당을 찾아가고 크리스마스 때는 승려가 교회에 가서 성탄을 축하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하물며 불교에서는 일찍이 차별과 분별을 없애라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전하지 않았던가.  경주 남산의 수많은 석불 가운데 을 보면 나..

좋은 수필 2025.01.16

구멍 뚫린 여자 / 박영란

구멍 뚫린 여자/박영란​  내 어깨와 팔을 지탱하던 힘줄 하나가 끊어졌다. ‘극상근’이라고 이름 불리는 하나가 고무줄처럼 끊어졌다는 소식이었다. 아울러 ‘어깨회전근개파열’이라는 병명이 주어졌다. 들여다볼 수도 접근할 수도 없는 그곳에 무엇 때문에 이런 아수라장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하긴 얼굴에 생긴 뾰루지 하나도 생겨난 이유를 모른다. 하물며 육백여 개의 근육과 약 이백 개의 뼈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 구석구석에 자리한 오장육부와 그 사이로 정맥과 동맥이 어떻게 피돌기를 하는지, 어젯밤 먹은 야식이 위장을 거쳐 어떻게 대장으로 가서 똥이 되는지. 그 멀고도 가까운 내 안의 비밀을 어떻게 알겠는가. 바지의 고무줄도 끊어지면 버리든 갈아 끼워야 하듯, 사람에게도 이럴 때 수술이라는 방편이 있다. 아직은 버..

좋은 수필 2025.01.15

세상의 당신들 - 이주옥

세상의 당신들    -    이주옥   당신이라는 단어가 어느 날 새삼스럽게 다가들었다. 당신, 세상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이 고마워서다. 인생의 가장 적요한 시간에 나 아닌, 그 당신이 빼꼼히 들여다봐 줄 때 더없이 따뜻하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한 슬픔에 빠져 있다가 그 슬픔에서 빠져 나갈 때 가장 힘이 되어주는 것도 당신이다. ‘당신’이란 이름은 그저 2인칭으로 갇혀 있을 때는 막연한 거리에 있다. 그러나 그 공간과 시간을 벗어나 내게로 걸어왔을 때는 가장 따뜻하고 친밀한 이름이 된다.     세상엔 많은 당신이 있다. 또한 무한정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당신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그리고 쉽게 쓰이는 곳은 부부 사이일 것이다. 당신이란 이름으로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부를 때는..

좋은 수필 2025.01.14

무 맛을 안다는 것 / 윤혜주

무 맛을 안다는 것 / 윤혜주  무 맛을 알았다. 아무 맛 없다고 타박했던 그 맛을 이순에야 알았다. 땅심 먹고 자란 식물 중 가장 자연적인 그 맛을 내 입이 알기까지는 참으로 오래 걸렸다. 편안하게 입안 가득 수분을 채워주다 천천히 제 몸을 우려내 주재료에 어우러져 드는 착한 맛. 누구나 만나지 못해도 늘 마음 언저리를 채우는 사람이 있듯, 어떤 맛에서도 일인자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어련무던한 맛. 자신이 받은 사랑을 다른 이에게 조용히 베풀면서 행복해하는 그런 사람 같은 무 맛을 안다는 건, 인생의 오감을 느낌으로 마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증거리라. 땔감 준비와 움을 파는 것으로 아버지의 겨우살이 준비는 시작되었다. 겨울이면 내 유년의 텃밭엔 크고 작은 움들이 하얀 눈 봉우리를 하고 올망졸망 앉아 있..

좋은 수필 2025.01.13

그녀, 모산댁/ 김용삼

그녀, 모산댁/ 김용삼   단단한 채비가 무색하게도, 그녀가 금세 걸음을 멈춘다. 집 근처 공원을 고작 두 번 돌았을 뿐인데 더 이상은 버거운 듯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위태위태하다. 나도 신발코를 나란히 하여 그녀의 걸음에 힘을 보태지만, 아들의 호위가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눈치다. 길모퉁이의 허름한 벤치가 그녀의 구원투수다. 짐을 부리듯 무거운 육신을 내려놓고, 후유, 길게 숨 한 자락을 쏟는다. 군데군데 막힌 혈관 탓인지, 수시로 칼에 베인 듯 아리다며 나에게 다리를 맡긴다. 주무르는 손길에 기름기 빠진 그녀의 다리뼈가 느껴진다. 그녀는 내 어머니, 모산댁이다. “할머니, 내일 아빠 산소, 같이 가실래요?” 그녀가 영양제를 맞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손녀의 전화 때문이었다. 선산 한편에 한 몸..

좋은 수필 2025.01.05

그래서 말인데 띄어쓰기

그래서 말인데 띄어쓰기[그래서말인데/그래서 말인데] 둘 중에 올바른 표현은 '그래서 말인데'로 띄어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말인데'를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검색하면 아무 결과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인데'는 '앞의 내용이 뒤의 내용의 원인이나 근거, 조건 따위가 될 때 쓰는 접속 부사 '의 뜻을 가지는 부사 '그래서'와 '((주로 '말이야', '말이죠', '말이지', '말인데' 꼴로 쓰여)) 어감을 고르게 할 때 쓰는 군말. 상대편의 주의를 끌거나 말을 다짐하는 뜻을 나타낸다.'의 '말', 그리고 뒤 절에서 어떤 일을 설명하거나 묻거나 시키거나 제안하기 위하여 그 대상과 상관되는 상황을 미리 말할 때에 쓰이는 연결어미 '-ㄴ데'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런데 말이야하지만 말이죠내가 말이지 어제 ..

우리말 2025.01.05

663회(2017.4.17.) 우리말 겨루기 문제 풀이(2)

663회(2017.4.17.) 우리말 겨루기 문제 풀이(2)- 아우라의 주인공 이승진 님의 우승을 축하합니다! ♣우리말 달인에 오르는 아주 쉬운 방법 : 문자나 ‘카톡’을 할 때, 긴가민가하는 것이 있으면 사전이나 맞춤법을 검색해 보라. 그걸 습관화하면 된다!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글쓰기를 해보는 것. 일기나 수필을 쓰면서, 그때마다 맞춤법/띄어쓰기를 확인하게 되면 금상첨화다. 요체는 평소의 언어생활에서 부딪는 것들을 챙겨보는 것. 단, 맞춤법/띄어쓰기에 관한 기본 원칙/원리들을 1차 공부한 뒤에. 낱개의 낱말들만 외우려 들면 쉬 지쳐서 중도 포기하게 되고, 활용 문제(띄어쓰기와 표준 표기)에서 전혀 힘을 못 쓴다. -溫草 생각.  □ 맞춤법 문제 이번 회에는 맞춤법 관련 문제로 출제된 것이 크게 줄었..

우리말 2025.01.05

삶의 최소단위, 숟가락 / 마혜경

삶의 최소단위, 숟가락 / 마혜경   조용히 밥을 먹는다. 밥을 먹을 땐 말을 하지 않는다. 나에게 밥은 하루만큼의 태엽이고 끈끈한 다정함이다. 어둠과 고통이 밀려올 때마다 밥이 그리워진다. 나에게 말은 의미의 모양이며 활짝 열리는 관계의 끈이다. 밥이 키운 말들이 따뜻한 손이 된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입은 소리를 찍어내는 틀이자 생명을 불어넣는 밥의 입구가 된다. 밥을 먹을 때 말을 하지 않는 이유는 들어가는 밥과 나오려는 소리가 충돌하기 때문이다. 말하면서 밥을 먹을 때에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온전히 들어가야 할 밥과 오롯이 나와야 할 소리가 같은 지점에서 만나면 무척 낯설어진다. 난 그날 이후로 목구멍에서의 이 어색한 조우를 정리했다. 밥은 밥대로, 소리는 소리대로 받아들이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

좋은 수필 2025.01.03

희망의 단서 / 이성환

희망의 단서 / 이성환     실바람에도 흔들린다. 손쉽게 꺾일 만큼 연약하지만 제 뜻을 굽히지는 않는다. 그것들이 팔짱을 끼고 엮이면 쉽게 떼어 낼 수 없는 힘받이가 된다. 사물을 지탱하고 뭇 생명에게 도움을 주는 자들의 위대한 힘이다.  민속박물관에 전시된 짚신이나 똬리, 달걀 망태가 눈길을 끈다. 메줏덩이를 매단 서너 가닥 지푸라기나, 쌀 한 섬이 거뜬히 담기는 가마니가 새삼스러운 느낌이 든다. 짚풀을 꼬고 엮는 손재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지 싶다. 건드리기만 해도 바스러질 듯 미약한 몸피가 어떻게 무거운 것을 받아들이고 지탱할까. 약하고 허름한 것이 칡 줄기처럼 실하게 되는 동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얼핏 보면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아 있다. 사물의 중심이 아닌 군더더기에 불과..

좋은 수필 2025.01.03

[공문서 작성 바로 알기] 띄어쓰기

[공문서 작성 바로 알기] 띄어쓰기 공문서 쓸 때 알아두면 좋은 정보, 띄어쓰기의 올바른 표기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 공문서의 ‘띄어쓰기’① ‘제-’와 같은 접두사‘제-’는 ‘그 숫자에 해당되는 차례’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이므로 뒷말과 붙여 씁니다.또한 외래어(섹션)보다는 순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예시) 제 1섹션 → 제1 부문(원칙), 제1부문(허용)② ‘-여 / -쯤 / -가량’과 같은 접미사‘-여 / -쯤 / -가량’은 접미사이므로 앞말과 붙여 씁니다.예시) 50여명의 → 50여 명의내일 쯤 → 내일쯤일주일 가량 → 일주일가량③ 호칭어나 관직명성과 이름은 붙여 쓰고 이에 덧붙는 호칭어, 관직명 등은 띄어 씁니다.예시) 홍길동씨 → 홍길동 씨행정안전부장관 → 행정안전부 장관④ ‘본, 총..

우리말 2025.01.02

별이 되어 / 김필령

별이 되어 / 김필령    밑에 길게 드러누운 황토밭, 운동장에서 교장 선생님의 느린 훈시를 듣고 서 있는 아이들처럼 어린 감나무들이 고개를 떨구고 줄지어 서 있다. 붉고 푸른 단풍나무가 밭둑을 따라 담장처럼 빙 둘러쳐져 있어 산밭은 더욱 아늑하고 고요하다.​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신발을 벗고 밭고랑을 타고 들어가 한 뼘 자란 풀을 뽑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아픔보다 더 큰 슬픔이 있으랴.’ 한 움큼씩 뿌리째 뽑혀 올라올 때마다 창자가 끊겨 나간듯이 배를 쥐어짠다. 구토가 일어난다. 피눈물이 고이고 두 무릎은 어느새 땅에 꽂혀있다.​ 산밭에 오르는 두 갈래 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돌아가면 오래도록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있었다. 흙벽은 허물어지고 비스듬히 쓰러져 있는 슬레이트 지붕은 낡은..

좋은 수필 2025.01.02

귀꽃 / 김보성

귀꽃 / 김보성      폐사지에서는 나의 말[言]을 방목해도 괜찮다. 모든 것이 벌거벗은 채로 퇴색되어 고요로 쌓이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던 연꽃은 까만 연자를 품어 동안거에 들고, 고인을 헤아리다 지친 귀부의 몸통은 덩그러니 황토 자리를 깔고 앉았다. 제각각 흩어진 돌들이 사고무탁으로 노거수에게 제 몸을 맡기고 무연하다. 햇살은 담백하게 내려앉고 바람은 가식 없이 방랑한다. 계절이 비껴간 터는 옛날의 어스름을 닮아 홀로 담담하다. 젖은 숨이 바삭해진다. 사초는 은빛으로 일렁이고 그 뒤를 바람의 소리가 뒤따른다. 아무도 말이 없다. 귀를 열어 소리를 담을 뿐이다. 침묵 속에 나 홀로 소란하다. 하지만 말의 무게를 누르고 고요의 결을 느끼면 생각은 비워지고 몸은 가벼워진다. 점점 내 안의 풍경 속으로 ..

좋은 수필 2025.01.02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절규/박계옥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절규나는 누구일까괜히 문들어진 입 내 안에 도시리고 있는또 다른 모습아, 길 길은 아직도 아득히 먼데 - 박계옥 시인(중국) ****수백 년을 살았을 법한 나무가 불에 타버렸는지, 아니면 고사목이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앙상한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자신의 본 모습에 경악하는 나무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푸르게 창창한 앞날이 많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한탄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고뇌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 생을 다하고 돌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오랜 세월 비바람 견뎌낸 우람한 자태와 당당한 모습은 수백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아직 갈 길 많이 남아있다고 서럽다고 하지..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단풍 단상/정현숙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06  단풍 단상멀리서 바라볼 땐 곱기만 하더니가까이 가서 보니 흠투성이네하긴,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아도알고 보면 완벽한 사람은 없더라- 정현숙멀리서 보면 곱고 예쁘기만 한 단풍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저렇게 흠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걸 사람살이에 비유하고 보니 더더욱 와 닿네요. 그래요. 세상에 흠 없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다만, 그 흠결이 얼마나 적은가 많은가에 달렸겠지요. 조금 떨어져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는 몰랐던 그 사람의 단점이 어느 선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발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사람에 대한 실망은 좀 오래 가더라구요. 얼마 전 믿고 있던 사람이 나 몰래 뒤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일이 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데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따듯한 국화/박해경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12  따뜻한 국화가을이 다가오자시들했던 국화들이살아나고 있다쌀쌀해진 골목길이데워지고 있다- 박해경(2024 제2회 창원 세계디카시페스티벌 작품집 수록작)*****날이 추울수록 국화의 빛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아무리 추워도 그 색을 잃지 않아서 옛 선비들의 작품에 절개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이제는 국화빵으로 탄생해서 서민들의 간식거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 국화문양으로 만든 풀빵은 밀가루 반죽을 풀처럼 만들어서 굽는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빵틀에서 국화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삼켜지고 온 몸이 따뜻해져 오면서 그 고소한 냄새가 온 골목길을 돌아 집집마다 배어드는 것만 같다. 퇴근 길 어깨마저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비행운을 바라보며/이태희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비행운을 바라보며막막한 허공을 날아본 적이 있는가빽빽한 숲을 헤쳐본 적이 있는가열사의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는가망망대해 홀로 건너본 적이 있는가그대 온몸으로 생애를 건너고 있는가- 이태희 시인(2023년 《디카시》 겨울호 수록)****막막한 허공에 비행기의 흔적이 길게 남겨졌다. 온 몸으로, 홀로 가는 저 시간들을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비추어 생각한다. 허무와도 같은 ‘막막한 허공’을 견뎌야 하는 시간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빽빽한 숲’ 속에서 행여 자신이 가야할 방향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열사의 사막’과도 같은 견딜 수 없는 허기와 갈증을 과연 극복할 수나 있을지, 언제 구조가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바다 한 가운데 같은 외로움과 고통을..

카테고리 없음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정리가 필요한 순간/김선애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45  정리가 필요한 순간/김선애쓸모없는 것들과잡동사니로 차고 넘치는 서랍아직도버릴 걸 버리지 못한내 욕심 주머니가 보인다- 김선애****2024년 마지막 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저 서랍 하나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들까지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 실감이 된다. 저 서랍 속 정리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물건들처럼 뒤엉켜있는 나의 한 해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결심해야 하는 것들로 수북하다.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버릴 건 버리고 비울 건 비워야겠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집어넣을 수는 없으므로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내 욕심 주머니를 과감하게 버려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 어떤 조문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 어떤 조문  어떤 조문/권현숙쪼들린 살림 환히 필 거라더니꿀맛 같은 날 올 거라더니죽을 둥 살 둥 일만 하더니 눈치도 없이 환한 봄날 수필가(2023년 한국디카시연구소 디카시신인문학상 수상작) ******************************************************봄,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같던 대지에 생명이 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죽음은 생각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환하고 즐겁고 활기차서 어둡고 우울한 것들은 아예 없어야 하는데,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에 맞이한 어느 죽음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쓸쓸하다. 일만하다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죽음이, 원 없이 피어난 꽃을 배경으로 조문 온 조화처럼 병풍으로 둘러친 저 눈치 없이 환..

좋은 시 2025.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