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택에서 / 박시윤 관가정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른 봄의 따스함이 길 곳곳에 아지랑이로 내려앉아 있다. 온화한 지붕의 선에 시선이 머문다. 머무르고 싶은 마음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고요하고 옛것을 대하는 경건한 마음은 바쁜 걸음마저 느리게 만들어 놓는다. 여린 봄바람에 바싹 마른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일다가 사라지다. 막 잎을 돋우는 아름드리 은행나무의 그늘과, 남몰래 하늘을 받드는 찔레의 군락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여린 순을 베어 무니 5월의 싱그러움이 입속으로 들어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헤친다. 찔레의 향기에 사로잡혀 갈 길을 잃은 지 오래다. 아득히 먼 옛날로 접어드는 시간의 길목처럼 잠시 동안 어지러움이 일었다. 현실에서 멀어져 머무는 동안 나의 마음은 600년을 거슬러 푸덕한 아낙이 되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