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채비가 무색하게도, 그녀가 금세 걸음을 멈춘다. 집 근처 공원을 고작 두 번 돌았을 뿐인데 더 이상은 버거운 듯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위태위태하다. 나도 신발코를 나란히 하여 그녀의 걸음에 힘을 보태지만, 아들의 호위가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눈치다.
길모퉁이의 허름한 벤치가 그녀의 구원투수다. 짐을 부리듯 무거운 육신을 내려놓고, 후유, 길게 숨 한 자락을 쏟는다. 군데군데 막힌 혈관 탓인지, 수시로 칼에 베인 듯 아리다며 나에게 다리를 맡긴다. 주무르는 손길에 기름기 빠진 그녀의 다리뼈가 느껴진다. 그녀는 내 어머니, 모산댁이다.
“할머니, 내일 아빠 산소, 같이 가실래요?”
그녀가 영양제를 맞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손녀의 전화 때문이었다. 선산 한편에 한 몸으로 누운, 제 엄마·아빠에게 가자는 뜻이다. 고향 뒷산 중턱에 자리한 묘역까지는 요즘같이 숨이 차고 다리에 기운이 빠지면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이럴 때 최고 보약이 오만 원짜리 영양제다.
자식 앞세운 어미가 무슨 낯으로 그 험한 꼴을 보겠냐며 장례식장은 물론 집 밖 출입도 자제했던 모산댁이다. 손녀들이 제 애비의 첫 제사를 지내고 산소를 둘러본다는 차편에 동행키로 한 것은, 먼저 떠난 둘째 아들이 아직도 가슴에 체기처럼 얹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며느리는 찔레꽃 노래를 종종 흥얼거렸다. 명절 준비를 할 때면 되새김질하듯 같은 구절을 처량하게 읊어대어 모산댁의 지청구를 듣곤 했다. 찔레꽃 노래가 구슬픈 건, 별처럼 슬프고 달처럼 서러운 여자를 노래했기 때문이란다. 모산댁은 며느리를 보낸 후에야 찔레꽃의 꽃말이 고독과 그리움이란 것을 손녀들에게 들었다.
퍼진 암을 이기지 못하고 둘째며느리는 봄비에 찔레꽃 지듯 서른다섯 짧은 삶을 마감했다.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는 것을 알고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희망의 때를 놓친 후였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며 수술과 방사선치료, 약물치료 등 부질없는 법석만 떤 셈이었다. 결국, 모산댁은 혼자 된 아들보다 어미 없이 허둥거릴 어린 손녀들이 눈에 밟혀 재고 따질 겨를도 없이 둘째네로 짐을 옮겨야 했다.
한창 어미 손이 필요한 손녀들이었지만, 먹이고 공부시키는 건 일도 아니었다. 열여섯에 시집와서 평생 자리를 보전한 남편을 대신하며 육 남매를 거뜬히 먹이고 키워내지 않았던가. 막내아들 결혼을 끝으로, 오래전에 어미 노릇을 훌훌 내려놓았던 모산댁은 굽은 허리를 곧추세우고 두 번째 어미 노릇을 시작했다. 문제는 둘째 아들이었다. 적당히 세월이 지나면 둘째에게도 새사람이 생길 줄 알았고, 그러면 다시 큰아들네로 들어가리라 했던 것이 결국 스무 해가 넘도록 발목이 잡힌 꼴이었다. 첫 어미 노릇이 어미라는 의무감으로 해낸 것이라면, 칠순 근처에 떠안은 두 번째 어미 노릇에는 난감한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
고맙게도 손녀들은 매사를 스스로 챙길 만큼 일찍 세근이 들었다. 제 어미와의 작별을 아파할 틈도 없이 할미를 거들고 나섰다. 하지만 애비는 가장의 책임만으로도 늘 바빴으니, 어미 대신의 할미가 성에 차기나 했을까. 손녀들의 졸업식은 물론이요, 진학을 위해 만나야 하는 선생님과의 상담은 꿈도 꾸지 못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크다고, 모산댁은 수시로 며느리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그럴수록 어미 잃은 손녀들이 안쓰러웠지만, 다행히 큰손 갈일 없이 잘 자라주었다.
생일이나 어버이날이면 큰아들 집에서는 격식을 차린다고 법석을 떨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먹은 셈 치자며 손사래를 쳤고, 자식들이 무슨 선물을 해드릴까요 물어오면 받은 셈 칠 테니 그만큼의 봉투를 원했다. 셈 치고 얻은 봉투는 뒤늦은 어미 노릇에 큰 원군이었다. 그런 요령을 손녀들도 이어갔다. 옷 탐이 나거나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 아이들은 사 입은 셈 치거나 다녀온 셈 치곤 했기 때문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두 번째 어미 노릇은 그저 악으로 버틴 셈이다. ‘여자는 약해도 어미는 힘이 세다’는 말은 언감생심이었다. 어미의 힘은 당대(當代) 자식에게나 해당하기 때문이다. 자식의 자식, 자식의 손주까지 생긴 그녀는 이미 팔순을 넘어 누군가의 살뜰한 손이 필요한 노인일 따름이었다. 그저 어미 시늉만으로도 힘에 부칠 수밖에 없었다.
미수(米壽)가 턱밑까지 차올랐을 때, 손녀들은 각각 짝을 찾아 할미 곁을 떠났다. 요즘 애들답잖게 고만고만한 형편의 짝을 만나 모산댁의 짐을 덜어주었다. 비록 부모복은 없었지만, 신랑 복은 타고난 것 같아 그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둘째 아들이 제 처 곁으로 떠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산 중턱까지 난 도로에 차를 세우고 산길을 오르는 손녀들의 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오랜만에 제 엄마·아빠를 만난다는 설렘 때문이리라. 큰손서(孫壻)가 모산댁을 부축하여 뒤를 따른다. 영양제 탓인지 몸도 마음에 뒤지지 않고 거뜬히 산길을 오른다. 길섶엔 매운 겨울을 이기고 꽃피울 채비를 하는 개망초 투성이다. 한 다발 푸지게 꺾어다가 아들 발치에 놓아 주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아들 앞에 술 한 잔을 쳐서 놓는다.
“에미랑 잘 사냐? 거기서도 술만 벗하고 사는 건 아니제?”
둘째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며 혼잣말로 주절댄다. ‘엄마, 애들 키우느라 고생했어요.’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아들의 대답 삼아, 할미꽃처럼 몸을 웅크린 모산댁은 바람 귀를 향해 조곤조곤 말을 이어간다.
“이제 나도 힘이 없어. 자네를 붙들고 있을 기력도, 시간도 없으니 이쯤에서 훌훌 가시게나.”
손녀들이 제 부모의 유택 주위에서 잡초를 뽑는지 떠들썩하다. 그동안 모산댁은 묘역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다. 주변엔 그녀를 닮은 민들레가 연신 씨방을 터트리는 중이다. 훨훨, 가볍게 몸을 날리는 홀씨를 망연하게 바라고 선 모산댁의 실루엣이 오래된 그림처럼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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