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5/22 2

빈병/이남순

빈병 이남순 쓰러져 본 사람만이섰던 날을기억한다 가득 차 있을 때는듣지못한숨비소리 나누고비운 후에야바람과섞이는 몸—이남순, 『이녁이란 말 참 좋지요』, 시인동네, 2024. ----------   개인적 정서가 잘 드러나는 표현 양식으로서 서정시는 시조가 가깝게 채택하고 있는 장르이다. 일상에서 축적된 경험과 시간들이 특별한 지각을 형성하고 개인을 둘러싼 세계에 사물의 속성이 개입되면서 새롭게 포착된 의미가 재발견되고 시인은 이를 주제화하게 된다. 김용택 시인은 “시가 내게로 왔다”라는 표현을 썼지만 대체로 이러한 시적 동기는 그냥 오는 것이라기보다 간절해야 나타나며 잡아야 내 것이 된다. 또한 이것은 순간적이라 기록으로 가둬놓지 않으면 금방 달아나 버린다.  이남순 시인의 빈 병의 경우도 일상속에서 빈..

좋은 시 2025.05.22

미지근에 대하여 - 박정남​

미지근에 대하여 - 박정남​국수를 주문하는데전원이 다 미지근한 국수가 좋다고 해미지근을 시켜놓고 보니이 모임 참, 미지근해서 오래간다 싶다생각하니 다다음달이 벌써 10주년이 되는 달이다미지근이 미덕이 되었으니이젠 이름 하나쯤 가져도 좋겠다는 제안에누군가 미지근으로 하자고 하여웃으며 결정을 보았다이름 하나 얻는 데도 장장 10년이 흘렀으니그 뿌리도 참, 미지근하게 깊다​미지근해서 술술 잘 넘어가는 국수에국물까지 두 손으로 받쳐들고 단숨에 들이켜자배가 남산만하게 부풀어 오른다어느덧 남쪽 산에선 보름달이 떠오르고 있다미지근하게 끓어오르는 정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흘러나오는 노랫소리를 들으며 곰곰 생각하니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저 바다는단절이 아닌미(美)와 지(知)에 뿌리(根)를 박았던 것한결같은 ..

좋은 시 2025.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