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5/24 2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와 나 사이 / 이생진 아내는 76이고나는 80입니다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걸어가지만 속으로 다투기도 많이 다툰 사이입니다​요즘은 망각을 경쟁하듯 합니다나는 창문을 열러 갔다가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고아내는 냉장고 문을 열고서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누구 기억이 일찍 돌아오나 기다리는 것입니다​그러나 기억은 서서히 우리 둘을 떠나고마지막에는 내가 그의 남편인 줄 모르고그가 내 아내인 줄 모르는 날도 올 것입니다서로 모르는 사이가서로 알아가며 살다가다시 모르는 사이로 돌아가는 세월그것을 무엇이라 하겠습니까​인생?철학?종교?우린 너무 먼 데서 살았습니다.​

좋은 시 2025.05.24

달제어獺祭魚 / 이정숙

달제어獺祭魚 / 이정숙 봄비 같은 겨울비가 오전 나절 추적댔다. 비가 남긴 습기와 만둣집에서 토해내는 증기에 붕어빵 굽는 내가 스며 외투를 파고든다. 예전과 달리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워, 역세권에서 파생된 단어 ‘학세권’처럼 이른바 ‘붕세권’ 지도가 알음알음으로 공유된다는 풍문을 들었다. 풍문은 그저 풍문일 따름일까. 후문 경비실을 지나가면 붕어빵 노점 몇 곳이 위풍당당하다. 거리 간격도 제법 균형감 있는 세 곳을 그가 한 군데씩 들른다. 달차근한 훈김이 도는 봉투를 안고 그가 온다. 꼬리의 바삭거리는 식감과 풍부한 단팥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 그가 인정한 맛집다웠다. 자매가 미소로 손님을 맞이하는 붕자매 붕어빵이다. 사실 먹음직하니 노르스름한 빛이 도는 마트 앞 붕어빵이 시각적으로는 더 높은 점수..

좋은 수필 2025.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