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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따듯한 국화/박해경

에세이향기 2025. 1. 1. 10:02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12

 
 

따뜻한 국화

가을이 다가오자
시들했던 국화들이
살아나고 있다

쌀쌀해진 골목길이
데워지고 있다

- 박해경(2024 제2회 창원 세계디카시페스티벌 작품집 수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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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추울수록 국화의 빛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아무리 추워도 그 색을 잃지 않아서 옛 선비들의 작품에 절개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이제는 국화빵으로 탄생해서 서민들의 간식거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 국화문양으로 만든 풀빵은 밀가루 반죽을 풀처럼 만들어서 굽는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빵틀에서 국화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삼켜지고 온 몸이 따뜻해져 오면서 그 고소한 냄새가 온 골목길을 돌아 집집마다 배어드는 것만 같다. 퇴근 길 어깨마저 움츠러드는 쌀쌀한 날씨에 천 원이면 붕어빵 5개에 얼마든지 떠먹을 수 있었던 어묵의 뜨거운 국물도 이제는 막무가내로 치솟는 물가에 마음껏 누릴 수 없게 되었다. 붕어빵 하나에 천 원 풀빵은 4개에 천 원인 시대, 이 풀빵 천 원어치로 배를 채우던 시절은 이제 아득히 먼 옛날이 되어버렸다. 따뜻한 국화가 그리운 시절에도 주머니 사정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이 더 추울지 모르겠다.

글. 이기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