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1/01 10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절규/박계옥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절규나는 누구일까괜히 문들어진 입 내 안에 도시리고 있는또 다른 모습아, 길 길은 아직도 아득히 먼데 - 박계옥 시인(중국) ****수백 년을 살았을 법한 나무가 불에 타버렸는지, 아니면 고사목이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앙상한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자신의 본 모습에 경악하는 나무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푸르게 창창한 앞날이 많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한탄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고뇌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 생을 다하고 돌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오랜 세월 비바람 견뎌낸 우람한 자태와 당당한 모습은 수백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아직 갈 길 많이 남아있다고 서럽다고 하지..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단풍 단상/정현숙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06  단풍 단상멀리서 바라볼 땐 곱기만 하더니가까이 가서 보니 흠투성이네하긴, 세상에 좋은 사람은 많아도알고 보면 완벽한 사람은 없더라- 정현숙멀리서 보면 곱고 예쁘기만 한 단풍도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저렇게 흠이 많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이걸 사람살이에 비유하고 보니 더더욱 와 닿네요. 그래요. 세상에 흠 없는 사람 어디 있겠어요. 다만, 그 흠결이 얼마나 적은가 많은가에 달렸겠지요. 조금 떨어져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는 몰랐던 그 사람의 단점이 어느 선 안으로 들어가서 조금 가까워졌다 싶으면 발견하게 될 때가 있는데 사람에 대한 실망은 좀 오래 가더라구요. 얼마 전 믿고 있던 사람이 나 몰래 뒤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인 일이 있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데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따듯한 국화/박해경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12  따뜻한 국화가을이 다가오자시들했던 국화들이살아나고 있다쌀쌀해진 골목길이데워지고 있다- 박해경(2024 제2회 창원 세계디카시페스티벌 작품집 수록작)*****날이 추울수록 국화의 빛깔은 더욱 선명해진다. 아무리 추워도 그 색을 잃지 않아서 옛 선비들의 작품에 절개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고 있지만 이제는 국화빵으로 탄생해서 서민들의 간식거리로 사랑을 받아 왔다. 이 국화문양으로 만든 풀빵은 밀가루 반죽을 풀처럼 만들어서 굽는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빵틀에서 국화꽃처럼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군침이 삼켜지고 온 몸이 따뜻해져 오면서 그 고소한 냄새가 온 골목길을 돌아 집집마다 배어드는 것만 같다. 퇴근 길 어깨마저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비행운을 바라보며/이태희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비행운을 바라보며막막한 허공을 날아본 적이 있는가빽빽한 숲을 헤쳐본 적이 있는가열사의 사막을 횡단한 적이 있는가망망대해 홀로 건너본 적이 있는가그대 온몸으로 생애를 건너고 있는가- 이태희 시인(2023년 《디카시》 겨울호 수록)****막막한 허공에 비행기의 흔적이 길게 남겨졌다. 온 몸으로, 홀로 가는 저 시간들을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비추어 생각한다. 허무와도 같은 ‘막막한 허공’을 견뎌야 하는 시간과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빽빽한 숲’ 속에서 행여 자신이 가야할 방향과 가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닌지, ‘열사의 사막’과도 같은 견딜 수 없는 허기와 갈증을 과연 극복할 수나 있을지, 언제 구조가 될지도 모르는 막연한 시간을 견뎌야 하는 바다 한 가운데 같은 외로움과 고통을..

카테고리 없음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정리가 필요한 순간/김선애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245  정리가 필요한 순간/김선애쓸모없는 것들과잡동사니로 차고 넘치는 서랍아직도버릴 걸 버리지 못한내 욕심 주머니가 보인다- 김선애****2024년 마지막 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저 서랍 하나가 많은 생각들을 하게 한다.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가족과 친척들 그리고 사회적인 이슈들까지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얼마나 적절한지 실감이 된다. 저 서랍 속 정리되지 않고 뒤섞여 있는 물건들처럼 뒤엉켜있는 나의 한 해도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결심해야 하는 것들로 수북하다. 새날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버릴 건 버리고 비울 건 비워야겠다. 잡동사니로 가득한 공간에 새로운 무엇인가를 집어넣을 수는 없으므로 앞으로 한 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내 욕심 주머니를 과감하게 버려야겠다. 나이가 들면서 ..

좋은 시 2025.01.01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 어떤 조문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 어떤 조문  어떤 조문/권현숙쪼들린 살림 환히 필 거라더니꿀맛 같은 날 올 거라더니죽을 둥 살 둥 일만 하더니 눈치도 없이 환한 봄날 수필가(2023년 한국디카시연구소 디카시신인문학상 수상작) ******************************************************봄, 모든 것이 사라진 것만 같던 대지에 생명이 있음을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죽음은 생각할 수 없고 모든 것이 다 환하고 즐겁고 활기차서 어둡고 우울한 것들은 아예 없어야 하는데,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봄날에 맞이한 어느 죽음은 그래서 더 안타깝고 쓸쓸하다. 일만하다 뜻하지 않게 맞닥뜨린 죽음이, 원 없이 피어난 꽃을 배경으로 조문 온 조화처럼 병풍으로 둘러친 저 눈치 없이 환..

좋은 시 2025.01.01

헌옷/김왕노

헌 옷 /김왕노 잠든 아버지 내가 벗어 던진 헌 옷 같다.다려도 주름이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스타일도 뭐도 없이덧대 바느질을 할 수 없을 정도로실밥 터지고 낡아 남루한 아버지어머니도 손질하다가그냥 쓰레기통에 버릴 아버지일터에서 지쳐 돌아와쉰내 나는 곤한 잠이 들었다.뱀 허물처럼 늘어져 잠이 들었다. 피곤한 세상을 두고겨우 잠으로 도망가신 아버지 흑 하고 치받는 내 울음이 들킬까 봐아버지에게서 멀어지자아버지는 한 번 더 버려지는 헌 옷이다.   ​경상도 가랑잎/김왕노 보훈병원 병상에 가랑잎이 된 자형이 바스락거리고 있었다.고엽제 환자인 자형의 말라서 드러난 핏줄은가랑잎에 도드라진 잎맥이었다.월남전 참전에서 한 잎 가랑잎으로 굴러서 끝내 병상까지 온경상도 가랑잎 한 장병문안 간 내게 기어코 일어나 그간 팽개친..

좋은 시 2025.01.01

젊은 날을 소환하다_ 조태숙

젊은 날을 소환하다_ 조태숙  하늘에 덧대어 구름을 깁듯삶의 곡선을 거슬러 올라​한 올 한 올흐릿한 기억을 수선하고 있다 _ 조태숙  여인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꿰매고 있는 걸까. 고요한 배경의 하늘과 대조를 이루며 앉아 있는 그의 실루엣은 바람에 흔들리는 듯하지만 여전히 단단하다. 세상의 상처와 갈라진 틈을 마주하며, 그것을 아물게 하기 위해 실을 꿰고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치유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감상: 설강

좋은 시 2025.01.01

봉인해제/이은솔

24. 11.15(금)_ 제민일보_소하의 디카시 산책_에는 김영빈 시인의 디카시 '봉인해제'가 초대되었습니다.​​_본문​비움으로 비로소 해탈에 이른 조개를 본다. 아니 회중시계를 본다. 그는 이제 시간이 멈춘, 더는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경계 너머에 앉아 깊은 삼매에 든 수도자처럼 고요하다. '스마트폰 사진의 달인'으로 인정받고 있는 김영빈 시인의 작품이다. 역시나 영상언어가 주는 울림이 크다.​썰물 지는 갯벌 위로 윤슬이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는 사진 속은 한 점의 바람도 없이 한 점의 구름도 없이 그저 고요하기만 할 거 같은 풍경이다. 그 풍경에 '봉인해제'라는 제목이 붙었다. ‘거짓말처럼’ 평화가 깃드는 순간이다. ​빈속을 훤히 드러내고 앉은 저 회중시계 속에는 어떤 시간이 봉인되어 있었..

좋은 시 2025.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