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절규
나는 누구일까
괜히 문들어진 입
내 안에 도시리고 있는
또 다른 모습
아, 길 길은 아직도 아득히 먼데
- 박계옥 시인(중국)
****
수백 년을 살았을 법한 나무가 불에 타버렸는지, 아니면 고사목이 되어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앙상한 몸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주하게 된 자신의 본 모습에 경악하는 나무의 절규가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아직은 푸르게 창창한 앞날이 많을 거라고 그래서 이렇게 죽을 수는 없다고 한탄과 아쉬움으로 점철된 고뇌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한 생을 다하고 돌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 오랜 세월 비바람 견뎌낸 우람한 자태와 당당한 모습은 수백 년 동안 최선을 다해 살아온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아직 갈 길 많이 남아있다고 서럽다고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형기의 「낙화」에서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다시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글. 이기영 시인
'좋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단풍 단상/정현숙 (0) | 2025.01.01 |
---|---|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_따듯한 국화/박해경 (1) | 2025.01.01 |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정리가 필요한 순간/김선애 (2) | 2025.01.01 |
이기영 작가의 디카시 한 편 - 어떤 조문 (0) | 2025.01.01 |
헌옷/김왕노 (2) | 2025.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