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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이야기

별표 전파사 / 박진형 作

에세이향기 2024. 9. 27. 10:55

유홍준의 시와 함께] 별표 전파사 / 박진형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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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전파사에는 수선되지 않는 시간이 흐른다

세 개의 별과 금빛 별이 반짝이던 시절부터

별을 수리하던 그는 오늘도 별의 안부를 묻는다

 
 

떨어진 별들이 다시 운행하기를 기다릴 때

이들은 한 음계씩 타고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사내의 회로계를 거치면 비밀은 드러나

 
 

전파사는 별들의 무덤에서 별들의 자궁으로 변했다

그의 드라이버만 있으면 별들은

우주 어디든 다시 날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은하수를 건너 새로운 별로 이주할 꿈을 꾸었다

별똥별이나 혜성은 그의 전파사를 기웃거렸다

마모된 공구함과 칸칸이 채워진 낡은 부속품들은 오랜 친구

하늘에서 노래하는 별들 속에 그의 체온이 남아 있다

점점 사라지는 별들과 새롭게 태어나는 별들 사이에서

그의 전파사는 종종 기우뚱거린다

어떤 별도 들르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수리된 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운 아들은

별을 노래하다 어느 날 별이 되었다

산동네에 사는 덕분에 간혹 득템을 하는 경우가 있다. 멀쩡한 전자피아노를 건지는 경우도 있고 휘황찬란한 자개농을 건지는 경우도 있다. 산동네가 아니면 잘 없는 일이다. 얼마 전엔 어둑발이 내리는 저녁 무렵 귀가를 하는데 누군가가 오디오를 내놓는 게 보였다. 천일사(天一社) 별표 전축! 1977년 문을 닫은 회사의 제품이었다.

누군가가 내다버린 전축을 가져다가 복원하는 일은 '소리의 무덤에서 소리의 자궁'으로 변신시키는 일. 낡디낡은 기계를 복원시키는 일은 전문가를 찾는 일부터 쉽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설레는 일. 지금 그 낡은 기계는 내 시골집 방 한켠에 자리를 잡고 있다.

유홍준 시인

시인 유홍준:1998년 『시와반시』로 등단.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북천-까마귀』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이 있다. 시작문학상 이형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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