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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와 베란다/이만수

에세이향기 2026. 6. 6. 11:47

툇마루와 베란다

이만수

자연과 인간, 그리고 사물을 포함한 세계 내의 모든 존재는 쉬지 않고 서로를 흔들어 놓는다. 시각과 청각으로, 혹은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자극하고, 그렇게 흔들린 이미지들은 기억 속에 남아 서로를 다시 반영한다.
 
이른 아침에 툇마루에 앉거나 마당을 쓸면서 세상을 바라본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는 동시에, 마당에서부터 들판과 언덕을 지나 대관령까지 첩첩이 싸인 산들의 사이에, 그 너머의 공간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삶의 깊이와 두께를 동시에 감각하고 느낀다.
 
 

〈산조2424〉, 2024, 캔버스에 백토, 채색, 162×131cm ⓒ 이만수
 
 
강릉 안반데기. 말로만 듣던 이곳을 직접 본 그때의 충격은 언어를 넘어서는 침묵 그 자체이다. 그 풍경은 오랫동안 묻혀 있던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소환하고, 가파른 산비탈에 파내지고 메워지는 밭고랑의 선은 무수히 반복되며 인식과 감각을 초월한 비현실적인 세계를 보여준다.
 
내 앞에는 항상 산이 나타난다. 대관령과 백두대간을 넘어 다닐 때도 그러하였고, 작업실을 오고 갈 때도 그리고 어디를 가더라도 앞과 뒤, 오른쪽과 왼쪽에 산이 태연하고도 집요하게 펼쳐져 있다. 나는 멀고 가까운 산의 능선을 시선으로 더듬고 감각으로 어루만진다.
산은 길을 만들고 선을 이루고 있다. 그 길을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는 우리 삶의 모습이 점점이 박혀 재구성되고 기억되고 있다.
 
이처럼 마당·들·산은 인간과 자연의 감각적 교차가 이루어지는 접경지대이고 나와 세계가 맞닿아 있는 공간이다. 산과 산 사이에 있는 도시와 들판 그리고 마당에서 우리의 삶은 파내고 메우기를 신화처럼 반복한다.
 
 

〈산조2432〉, 2024, 캔버스에 백토, 채색, 161×130cm ⓒ 이만수
 
 
나는 마치 마당을 빗자루로 쓸 듯이, 혹은 밭을 갈듯이 마르지 않은 화면에 흔적을 남기고 흙과 색을 메운 뒤 메운 만큼 다시 물로 씻어내고 갈아내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몸과 화면 사이, 미세한 물의 막을 어루만지는 행위이며, 산조의 가락처럼 긴장과 이완 사이에서 의도적인 불완전이라는 자신의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화면 속의 형상과 선 그리고 색이 흐릿해지는 동시에 선명해진다. 갈아내고 씻어내는 물소리와 마찰음 속에서 내면의 감정은 새벽처럼 흩어지고, 그 자리에는 결국 ‘어쩔 수 없는 긍정’의 여운이 남는다.
 
 

〈산조2433〉, 2024, 캔버스에 백토, 채색, 162×131cm ⓒ 이만수
 
 
툇마루에서 마당과 들판 그리고 산을 바라보며 새벽을 맞이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 베란다에서 새벽을 통과하고 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간과 밝음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공간 속으로 여전히 사람들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