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니까 중년이다 / 원정란
인생을 사게절에 비유하곤 했다. 청춘을 꽃피는 봄이라 하면 여름과 가을은 장년, 중년, 노년인데 백세시대가 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십 대, 이십 대의 전유물이던 청춘은 어느새 삼십 대로 확장되고 간혹 40대의 일부도 포함 시켜 봄여름의 경계가 없어졌다. 중년은 신중년의 개념으로 40, 50, 60대까지 지평을 넓혔고 장년이란 말을 사라지게 했다. 이젠 노년도 80세가 넘으셔야 편하게 호칭할 수 있으며 70대는 눈치껏 아니면 생략하는 게 오히려 현명한 처신이 되었다. 그렇게 인생의 가을이 길어졌다.
봄, 여름을 보낸 가을은 지혜로운 계절이다. 누군가에게 탐스럽게 익은 글자로 편지를 쓰고, 봉투에는 은행잎을 가득 넣어 부치고, 흩어진 낙엽만큼 조건 없는 자비를 베풀고 싶은 시절, 제도권의 지식이 현장에서 단풍이 들고 연륜을 주렁주렁 매달아 마치 한 그루 감나무 같은 가을, 그것이 중년이다.
수년 전,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책 표지에 리드 글이 이렇게 쓰여 있다.
불안하니까 청춘이다.
막막하니까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외로우니까 청춘이다.
두근거리니까 청춘이다.
이 책을 읽고 질투가 났다. 청춘, 존재만으로도 빛 나는 시기, 지난밤 과음 끝 속 쓰림 같은 일시적 통증을 중환자 병동에 넣은 느낌이 들었다. 청춘은 호들갑스러울 정도로 보듬으면서 정작 중년에겐 관심도 없다니, 비록 면허는 없지만, 자격은 있어 조목조목 중년을 대변하고 싶었다.
‘ 불안하니까 중년이다.’
청춘의 불안이 무질서하다면 중년의 불안은 무차별하다. 벌써 농도 자체가 틀리다. 청춘이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트레킹 하듯 즐기는 불안이라면 중년의 불안은 이미 오아시스를 찾고도 해갈이 안 되는, 가능성마저 소진한 잿빛 두려움의 합집합이다. 느닷없는 명퇴로 이 세상에 오롯이 혼자 남겨진 것 같은, 지금까지의 헌신이 헌신짝처럼 취급되는 굴욕과 아직 남아도는 능력의 쓰임새를 못 찾아 죄책감을 느끼는 좌불안석의 분위기, 갈 곳은 없어도 갈 곳을 찾아 나서야 하는 허망한 발걸음, 누구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중년의 불안이다.
‘막막하니까 중년이다.’
청춘의 막막함에는 희망이 있지만, 중년의 막막함에는 절망이 있다. 무기력과 어깨를 나란히 한 중년은 허울 좋은 관록만 창고에 쌓여 있을 뿐 청춘처럼 앞으로 박차고 나갈 여력이 없다. 극복하겠다는 의지도 힘을 받지 못한다. 출구를 가진 예외는 있으나 대부분 스스로 미로에 가두고 무겁게 씨름하고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인생역정이 다 그런 거라 위로를 하지만 매번 그 끝은 체념과 맞닿아 있다. 엄습하는 운명 앞에 위아래를 위해 머물거나 멈출 수도 없는 중년의 막막함은 컴컴한 동굴이다.
‘흔들리니까 중년이다.’
청춘의 흔들림은 당연한 자기방어다. 그러나 중년은 변두리 포장마차에서 한 잔 걸친 뒤 갈지자로 비틀대는 자기 방출이다. 자식, 부모, 친구, 직장, 선배, 후배, 남편 혹은 아내, 중년을 흔드는 요소는 너무 많다. 예상치 못한 명퇴, 저 혼자 큰 것같이 오만한 자식들, 다 열거하지 못할 위기들과 느닷없이 닥친 갱년기의 횡포. 기울기 시작한 시력, 청력, 심력까지 죄다 끌어안은 채 원하는 대로 흔들려 줄 뿐이다. 늘 휘청대지만, 끝까지 따라오는 달빛처럼, 바닥에 길게 누운 그림자처럼, 중년의 흔들림에는 세상에서 가장 묵직한 은유가 들어있다.
‘ 외로우니까 중년이다.’
청춘하고 중년하고 어느 쪽이 더 외로울까? 인간은 태생이 외로운 존재라 하지만 그래도 청춘은 화려하고 중년은 검박하다. 청춘이 치맥을 즐긴 뒤 길거리를 배회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록rock이라면 중년은 밤바다에 홀로 앉아 깡 소주를 기울이며 나지막이 부르는 대중가요와 같다.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인생’ 사무친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그런 정서의 정점, 누구한테 토로할 수 없는, 그렇다고 삼킬 수도 없는 절대 고독의 한 가운데가 중년의 외로움이다.
‘두근거리니까 중년이다.’
청춘은 두근거리는 시작을 의미하는 축복이다. 중년의 두근거림은 걱정을 부르는 불규칙한 호흡이나 식지 않는 열정의 반란이다. 다행히 중년의 것은 둔탁하지만 진중하다. 기억과 추억이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리움을 소환하고 그것이 사랑이건 미련이건 욕심이건 심장을 더 힘차게 펌프질한다. 왕년의 ‘~라떼는 말이야’가 귓등으로 표류하고 있지만, 지금껏 지켜 온 신념과 후손과 국가를 위해서는 다른 차원의 박동으로 바운스 바운스, 열심히 두근거린다.
‘아프니까 중년이다.’
청춘은 마음이 아프고 중년은 총체적으로 아프다. 중년의 중이 가운데 中인 것처럼 샌드위치 사이의 잼처럼 납작 끼어 아프다. 그런데도 대부분 육체의 아픔 외에는 드러내지 못한다. 상구보리 하화중생, 위로는 부모님과 어르신께 아래로는 자손과 후배들에게 나무 그늘과 언덕과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하니 니체의 ‘초인超人’이라도 되어야 극복하지 싶다. 그들이 불혹, 지천명, 이순을 거치며 작게는 가정에 크게는 사회에 헌신했다는 사실에 도장을 찍어 준다면 얼마나 좋아할까. 모두를 위해 살점이라도 떼어 주고 싶은 중년의 본심을 이제라도 알아주면 그들은 충분히 뉴딜new deal 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혜로운 자는 과거를 아쉬워하지 않으니 아름답고,
현재를 붙잡으려 하지 않으니 자유롭고,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새롭다.
누군가의 이 현명한 가르침이 우리 모든 중년에게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좋은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허송세월/김훈 (0) | 2026.06.11 |
|---|---|
| 맹그로브 호흡법/ 김주선 (0) | 2026.06.07 |
| 나무 도마/ 김시윤 (1) | 2026.06.07 |
| 맨발/김희자 (0) | 2026.06.07 |
| 유통기한/윤이나 (0) | 2026.06.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