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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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나무 도마/ 김시윤

에세이향기 2026. 6. 7. 09:37

나무 도마/ 김시윤

벼린 날이 춤을 춘다. 푸른 오이가 동글동글 떨어져 나가고 붉은 당근이 어슷비슷 삐딱하게 잰 체를 한다. 풋고추는 날이 지나간 자리마다 보란 듯이 매운맛을 새겨 넣고 매끈한 양파가 쪼개질 때는 난데없이 눈물이 솟는다. 허리 잘록한 애호박은 요염한 몸뚱이를 나박나박 맥없이 내맡긴다. 올려지는 무게나 맛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납작 엎드린 허리에 힘을 주고 그저 놀아나는 칼춤을 늡늡히 우러를 뿐.

긋고 지나간 자국만큼 썰려 나간 세월이 욱신거린다. 뭉텅뭉텅 잘린 사랑이 냄비 속으로 잠기고 깍둑썰기로 조각난 이야기들이 칼날 끝에서 나뒹군다. 덩어리진 노동을 하루 멀게 썰고 다지는 순간들, 상큼한 향기가 살을 그으며 스며들 때도 있고 비리고 미끈거리는 기름기에 몸피가 짓이겨질 때도 있다. 다만 받아들일 뿐, 불평은 꿈에서도 생각해 본 적 없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고, 조물조물 찬이 버무려지면 있던 자리로 물러나 가만히 침묵한다.

등을 기대고 서면 비로소 아늑해지는 시간. 때가 되면 손길에 이끌리어 주어지는 의무에 순응하는 일만이 기꺼운 역할이고 보람이다. 세상사 받아들이고 말면 그뿐이지 피동의 운명을 탓하지 않는다. 성찬을 차려 내고도 존재를 내세울 수 없거니와 요지 가지로 모양을 만들고 재주를 부려도 주인공이 되어 보지는 못한다. 공은 언제나 배려 없이 설쳐대는 무적의 칼날로만 향할 뿐, 갖은 수난을 견뎌낸 도마의 노고 따위는 대수롭지 않다.

썰고 다지는 일만이 다였을까. 쓱쓱, 탁탁 내키는 대로 설쳐대는 칼날이 상하지 않도록 무던히 애를 쓴다. 단단하되 튕겨서는 아니 되고 물러터져 날이 파묻히어서도 안 될 일, 칼이 닿으면 재바르게 밀어 올릴 오달진 물성이어야 하기에 젖고 마르기를 망설이지도 않는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가해의 힘을 보호해야 하는 역설, 칼이 리듬을 잃지 않고 작업의 연속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든든히 받쳐내는 것 또한 소중한 역할이다.

날이 지나간 틈 사이로 스며들던 냄새와 핏물을 기억한다. 붉은 고기가 비릿한 피 냄새를 흘리며 썰릴 때 함께 떨어져 나간 몸피의 고통이 생생하다. 쪼개지는 통증을 식혀주는 무의 시원함과 패인 상처 위에 보들보들 도포되던 두부의 위로도 잠시, 다진 파의 매운 냄새가 이내 파고들던 쓰라린 순간도 또렷하다. 쓰린 상처 위로 다시 상처가 올라도 더는 아프지 않을 때까지 안으로만 파고들며 견딘 시간. 서슬 시퍼렇던 칼날도 도마의 팬 자국만큼 점점 무디어져 가고, 깊숙이 파고들지 못한 칼끝의 절망도 도마의 얇은 허리에 오목하게 담겼을 터.

바람 앞에 온몸을 내맡기던 때가 우련하다.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과 지저귀던 새들의 노랫소리, 출렁이는 숲의 향기 속에서 하늘을 향해 팔을 뻗던 시절이 못내 그립다. 고대광실 번쩍이는 화초장도 되지 못하고, 공자 왈 맹자 왈 지적 호기심 충만한 책상머리로도 앉지 못한 채, 뿌리도 가지도 없는 나무토막으로 부엌 한쪽에 모로 누운 몸. 네모난 틀 밖으로 벗어날 생각은 일찍이 없었기에 안으로 파고들기만을 고집하였는지도 모른다.

열아홉의 나이테에 새겨진 순응의 미덕을 온몸에 무장한 채 머물던 곳을 떠나던 날, 솜털 고운 두 볼에 연지곤지 찍고 상답한 바리안베에 곱게 싸여 꽃가마에 실릴 때조차도 오직 도리만을 명심하였다. 몸피에 난 무늿결과 결 따라 밴 향내도 고르고 골라 데려다 놓을 자리임을 모르지 않았기에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야 할 것을 다짐, 또 다짐하였다.

아버지는 '달을 쫓느라 발밑의 동전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동전푼을 챙겨야 하는 건 늘 엄마의 몫이었다. 책을 들고 앉으면 앞산이 무너진다 해도 쉬 움직일 기세가 없던 아버지였다. 거듭되는 일의 실패로 세상 밖으로 나가길 포기해 버린 아버지를 대신해야 하는 엄마는 눈앞에 놓인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통통거리는 도마 소리를 시작으로 우리를 거둬 먹인 건 언제나 엄마였다. 빈약한 먹거리라도 성심을 다해 다듬어 만들고, 초근목피도 진수성찬으로 탈바꿈해 낸 덕에 다섯 남매의 철없는 배는 주릴 틈이 없었으니.

북풍한설 매서운 새벽에도 어둠을 밝히고 토닥토닥 만들어 낸 뜨거운 국물, 염천 화염에 잃은 입맛 돋우기 위해 맛깔나게 차려진 한 상도 말없이 빚어낸 도마의 노고였다. 다섯 개의 책가방이 줄을 잇고, 호호 뜨거운 김을 불어가며 담아낸 도시락이 아랫목을 그득하게 차지하던 때에도 엄마의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오는 법이 없었으니, 사시절 끼니마다 불려 나오는 도마의 허리가 오목하게 패여 가는 동안 우리의 철없는 배는 볼록하게 부풀어 올랐음에랴.

연한 살과 향긋한 재료들이 오르던 도마 위로 거칠고 질긴 것들이 올려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삶을 지탱하던 굳센 날이 병을 얻고 나서였다. 열아홉 보다 많은 나이테를 두르고도 주어지는 삶의 무게가 겨워 턱밑 숨을 헐떡였다. 도마의 패인 자리에 가지가지 배어들던 냄새처럼 나의 뼈와 살을 채운 것 또한 긴 세월 스며든 엄마의 사랑법이었으니. 밑돌이 되고자 기꺼이 내민 등에 긋고 지나가는 칼날의 고통쯤은 아무래도 좋았다. 낡은 도마처럼 안으로 패여 들기는 하였어도 네모난 시간을 비켜난 적은 없었기에 삶의 가풀막도 어기차게 넘지 않았을까.

도마에 난 상처는 삶의 증거다. 지닌 상처가 닥치는 시련을 막아내는 강골의 역사를 묵묵히 써 내려온 문장이다. 온몸이 난장 같은 상처투성이니 사릴 일이 무엇 더 있으랴. 흐리고 꿉꿉한 날에 으스러질 듯 뒤틀리는 무거운 삭신도 맑은 날 거풍 한 번이면 거뜬했다. 간들바람에 젖은 마음 마르고 몸에 밴 맵짠 냄새가 빠지는 날이면 암묵한 상처가 단박에 치유되고 날 듯 가붓해지는 몸뚱이였다. 긁히고 패인 상처가 안쓰럽다. 파고드는 칼날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었던 필사의 흔적들이려니.

소독을 이유로 굵은소금에 생채기를 내맡기는 행위도 골골이 박힌 아픔과 비린내 나는 오욕을 씻어내는 의식이라 여긴 덕에 긴 세월 무탈하게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진 데 마른 데 가릴 수 없는 처지가 서럽기도 하련만 순응만이 존재 가치임을 익히 알기에 가슴 패는 고통도 묵묵히 삼켰으리라. 해사한 낯빛 위로 내보이는 상처가 민망할 법도 할 터인데 미립의 도라도 깨달은 걸까. 도마의 표정은 그저 담담하기만 하다.

시골집 부엌 한편에 다소곳이 놓인 도마를 꺼내 든다. 나이테 선명하던 뽀얀 살결 위로 깊은 골 주름이 덮였다. 수천 시간을 말리고 켜서 만든 고급 도마처럼 반드럽지도 그 모습이 근사하지도 않다. 오롯이 제 쓸모에만 맞춰진 조촐한 맵시의 완곡한 몸피다. 거칠고 난만한 상처들로 옴폭하게 패여 가는 동안 나이테만큼 투명하던 몸피는 사라지고 젖고 마른 세월이 남긴 주름만이 오목하다. 낡은 도마에는 등이며 허리를 아낌없이 내어놓던 지순한 사랑이 묻어있다.

벼린 날을 손에 든다. 푸른 오이가 동글동글 떨어져 나가고 붉은 당근이 삐딱하게 잰 체를 한다. 양파를 썰고 풋고추를 다진다. 고여오는 눈물을 옷깃으로 훔치며 나는 공연히 고추가 맵다고 탓을 한다. 찌개가 끓고, 찬이 버무려지면 제 할 일 끝난 도마가 시골집 부엌 한편으로 물러나 가만히 침묵한다. 그 자태, 참 고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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