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두도 구두를/이가은
누가 벗어놓고 간 오목한 마음일까
조금 더 깊어지면 바닥에 닿을지도
발들은 지금 외출 중, 구두끼리 모였다
다른 길 걸어와도 아픈 건 같았구나
상처에 광을 내면 오래 빛날 별이 된다
마른 천 손가락에 둘러 그러안고 닦아 준다
구두도 구두를 벗어 보고 싶었을까
부르튼 밑창 대신 홀가분한 맨발로
헐거운 내일이라도 성큼성큼 가 봤으면!
구두들은 모두 다르다. 각각 “다른 길”을 걸어왔다. 서로 다른 삶이지만 동변상련의 아픔을 공유한다. 닳고 닳은 “상처에 광을 내면 오래 빛날 별”이 될 수 있으려니 기대하며, 「마른 천 손가락에 둘러 그러안고 닦아」 줄 때, 구두의 삶은 별빛처럼 살아나 다시 오래도록 반짝일 수 있을까. 그럴 성싶지는 않기에, 차라리 “부르튼 밑창 대신” 구두를 벗어나 “홀가분한 맨밥로” ‘성큼성큼’ ‘내일’을 향해 걷고 싶기만 하다. 새로워지기는커녕 더욱 헐거워질 내일일지라도, “구두도 구두를 벗어 보고” 싶은 욕구와 충동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조금 더 깊어지면 바닥에 닿을지도” 모를만큼 “누가 벗어놓고 간 오목한 마음”이 위태롭고 안쓰러운 시간에, 빈 구두끼리 모여서 외출한 발들을 기다리는 풍경이 시대의 풍경에 겹쳐진다.
구두의 무게는 몸의 무게이며 삶의 무게이다. 등짐처럼 짊어진 발의 짐과 멍에로부터 벗어날 날을 꿈꾸어보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가혹하고 냉엄한 현실의 고통에 눌린 채 바닥으로 내려앉는 구두라는 상관물을 통해, 현실의 구속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맨발’로 대유되는 화자의 구원 의지를 읽게 된다.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이며, 시인의 등단작이다 8년 전의 작품이지만 세월이 느껴지지 않는 참신하고 독특한 창법이 깊숙한 감흥으로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박명숙(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1999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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