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의 말/이달균
안방에 놓인 장롱은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비녀를 빼지 않은 어머니의 팔십 평생
오늘도 오동나무는 안으로 결을 세운다
손이 귀한 집 손자는 언제 보냐고
벽오동 한 그루를 담장 아래 심었을
외가댁 어른들 한숨이 손끝을 저며온다
대동아 전쟁이란 흉흉한 소문 속에
감춰둔 놋그릇마저 기차에 실려가고
처녀는 장롱 속에서 며칠을 보냈다
일곱의 탯줄을 끊은 가위며 실꾸리며
눈치 보며 세 들어 산 좀들의 흠집들과
닦아도 추억이 되지 않는 삭아가는 소리들
딸들은 내다버리자고 무심코 말하지만
피난 간 식구들을, 아버지의 임종을
묵묵히 지키고 기다리며 예까지 왔노라고……
솜씨 있는 장인이 만든 오래된 악기의
만 가지 소리와 만 가지 사연들을
너희가 어찌 알겠냐고 안방에 앉아 일러준다
-이달균, 『장롱의 말』, 고요아침,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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