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수필 이론 23

수필의 서정성/방민

수필의 서정성/방민 수필도 시처럼 서정을 담는다. 서정은 감정을 펼친다는 뜻이다. 인간은 사고하기도 하지만 감정도 품는다. 서정은 이중 감정을 주로 드러내어 표현한다는 의미다. 이 서정을 대표하는 문학 장르는 시를 으뜸으로 꼽는다. 시의 성격 중에서 두드러진 것이 서정으로, 시를 달리 서정시라 부를 정도로 시의 핵심적 속성이다. 이 서정성이 수필에도 시와는 다른 방식으로 담겨있다. 이를 수필의 서정성으로 이를 만하다. 수필의 서정성은 시의 서정성과 어떻게 비교할 수 있는가. 같거나 유사한 점은 무엇이고, 변별 측면이 있는가 알아보자. 시와 수필의 공통적 서정성에 대해 먼저 살펴본다. 첫째로 시와 수필에서 드러나는 서정성은 개인의 개별적 정서이다. 창작 행위가 개인적 독자 활동이므로 당연한 귀결이다. 독자..

수필 이론 2024.03.08

에세이의 본질과 형식/강돈묵

에세이의 본질과 형식 강 돈 묵 1. 들어가면서 흔히 ‘수필가는 많은데, 수필은 적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수필을 쓰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것은 글쓴이들의 작가 정신의 결여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한다. 그렇다고 하여 타 장르의 작가들보다 수필가들이 나태하고 안이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똑같은 경우인데도 다른 장르의 허물보다 수필의 허물이 겉으로 잘 드러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또 한 가지는 일반 독자들의 의식 속에 수필을 폄훼하는 인식이 깊이 뿌리내려 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의식은 수필가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수필..

수필 이론 2023.07.09

교술의 기록성과 문학의 형상화 /강돈묵

교술의 기록성과 문학의 형상화 --김정화의 흔히 수필을 교술 문학의 대표격으로 말한다. 이 교술은 ‘사실을 가르치거나 전달하기 위한 기술’, ‘대상이나 세계를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설명하는 문학 장르’ 쯤으로 사전류에서는 밝히고 있다. 신재기 교수는 에서 ‘교(敎)는 정보를 알리는 거나 주장한다는 의미이고, 술(述)은 사실이나 경험을 서술한다.’는 뜻이라고 밝힌다. 그리고 수필은 문학의 형상화와 교술의 기록성이라는 상반된 두 세계를 변증법적으로 처리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형상화와 기록성은 함께 어우러지기에 부담이 있어, 변증법적 처리라는 용어를 동원했을 것이다. 그렇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수필문학이 추구해 가야 할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 막연히 자신이 경험한 바를 기술하는 데에 멈춰서는 안 되고, 그..

수필 이론 2023.07.09

수필의 화자시학/안성수

새로 쓰는 수필론 수필의 화자시학 안 성 수 1. 여는 말 수필의 화자는 어떻게 존재하며 그 기능을 수행할까? 이 문제는 곧 수필의 정체성과 연결된 문제로서 작가들이 글을 쓸 때마다 한 번씩 반문해 보아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그만큼 화자는 수필의 구조와 소통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 동안 화자 연구는 소설 서사의 핵심과제가 되어 왔다. 소설의 화자 연구는 구조주의 시대에 이르러 개념의 구체화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견고한 논리를 확보하게 되었지만, 전통소설론에서는 소재를 포착하는 자와 그것을 문학적 이야기로 조직하여 들려주는 자의 기능을 통합하여 사용해 왔다. 이를테면, 전통적 화자는 구조시학자들이 말하는 초점화자와 서술자의 두 가지 기능을 분별없이 사용함으로써 역할과 기능의 ..

수필 이론 2023.07.09

이야기의 구조화와 문학성/안성수

이야기의 구조화와 문학성/안성수 한국의 현대수필에서 발견되는 작법상의 문제는 이야기의 미적 구성이나 구조(structure)에 대한 무관심이다. 문학작품에서 구조란 전체성 속에서 유기적으로 작동되는 구성요소 상호간의 관련방식이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작가가 꿈꾸는 주제와 의미세계를 감동적으로 담아내기 위한 구성요소들의 유기적이고 심미적인 배열방식이다. 이러한 텍스트의 문학적 의미와 울림은 그 구조에 의해 조절되고 탄생된다고 할 수 있다. 사정이 이런 데도, 한국의 많은 수필작가들은 이야기를 천편일률적인 소재발생 순서로 배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이야기 줄거리만 무성하고 독자를 공감의 세계로 이끄는 문학적 울림이 빈약한 작품을 낳는다. 이야기의 구조화 원리 중에는 소재의 발생순서로 단순 배열하..

수필 이론 2023.07.09

수필의 철학성과 문학성/안성수

수필의 철학성과 문학성 1. 눈물 지난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는 강의 중에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손수건으로 닦아내도 눈물은 쉬 멈추질 않았습니다. 나는 강의를 중단한 채 고개를 숙이고는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써보았지만 허사였지요. 강의실 분위기는 삽시간에 숙연해지고 말았습니다. 창피한 생각은 두 번째였습니다. 우선, 눈물을 막는 것이 급했으니까요. 선생이 강의를 하다말고 울먹이기 시작하니 강의실 이곳저곳에서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더러는 참으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속수무책이란 말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가 봅니다. 그 일로 인하여 그 날 수업을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눈물을 수습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젠 ..

수필 이론 2023.07.09

수필 플롯과 미의식 / 안성수

수필 플롯과 미의식 / 안성수 수필 텍스트 속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들어있다. 하나는 소재 자체로서의 이야기(스토리)이며, 다른 하나는 그 소재의 배열순서를 예술적으로 변형하여 재조직한 문학적 이야기(플롯)이다. 이때, 스토리는 작가가 경험에서 가져온 생生 소재에 불과한데 비해, 플롯은 그것을 통찰과 재인 과정을 거쳐 발효 숙성시킨 숙熟 소재라고 할 수 있다. 스토리가 플롯의 재료라면, 플롯은 그 스토리를 예술적으로 체험하는 배열의 질서이다. E. M. 포스터는 『소설의 양상』에서, "스토리는 시간이 연속에 따라 배열된 사건들의 서술"로, 플롯은 "인과성에 중점을 둔 사건들의 서술"로 구별한다. 이러한 스토리의 개념과 논리는 수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지만, 플롯에서는 근본적인 차이점을 갖는다. ..

수필 이론 2023.07.09

수필은 생활의 도구다 / 홍억선

수필은 생활의 도구다 / 홍억선 수필은 생활문학이다. 삶의 이야기다. 수필은 순수문학이니 본격문학이니 하는 범주에 가깝지 않다. 수필은 시처럼, 소설처럼 그 본질을 순수의 정수, 완미의 세계에 두지 않는다. 선지자적 예언으로 미래를 추동하는 시와 구별되고, 소설처럼 개연성 있는 허구로 현재를 창작하는 일과 다른 길을 간다. 수필은 우리들 삶의 기억들을 불러와 현재에서 해석한다. 그것이 반성이 되든, 에너지가 되든 미래에 적용해 보는 작업이다. 그리하여 수필은 우리의 삶에 이용하고 한층 더 후생하게 하는 삶의 도구다. 삶의 지렛대이다. 지금은 누가 무어라 해도 수필의 시대이다. 수필 쓰는 사람이 자력으로 판을 그렇게 키운 것은 아니다.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다. 시대 흐름이 세상의 일들을 풀어서 설명하는 산..

수필 이론 2023.05.06

수필 아포리즘 / 윤재천 隨畵集

수필 아포리즘 / 윤재천 隨畵集 / 1. 수필은 인간학. 인간 내면의 심적 나상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 한 편의 수필에는 자신의 철학과 사유, 현재와 과거의 행적, 미래를 예시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2. 수필은 창의 문학.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이 아님. 함축과 묘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적절한 예시를 들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문학. 끊임없이 변하는 독자, 관습에 매여 있는 작가. 3. 수필은 언어 예술. 논설이나 훈계조의 직설화법이 아니라 정서가 흥건하게 배어 있는 메타포. 작가는 시대를 꿰뚫는 혜안과 통찰력이 필요. 4. 수필은 신문고(申聞鼓). 시대와 동행하는 또 하나의 캔버스. 작가는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

수필 이론 2022.11.02

디지털 시대의 문장력 / 김시래

디지털 시대의 문장력 / 김시래 상도동 중앙대학교 후문에 유명한 닭볶음탕집 식당이 있다. 종로에 본적을 둔 계림닭도리탕이다. 대로변에서 올려보면 2층창문에 "곧 60년"이라는 문구가 눈에 뜨인다. "곧"이라는 토를 단 이유가 뭘까? 대학동기의 손에 이끌려 점심과 반주를 겸한 그곳의 인상은 그렇게 다가왔다. 솔직한듯해서 나쁘지 않았다. 반면 다소 의심쩍기도 했다. 방송국이 추천한 맛집이라며 제멋대로 미끼를 던지는 식당이 어디 한둘이던가. 가게안으로 들어서니 주방쪽 테이블 벽쪽에 걸린 액자에도 다소 긴 문장이 적혀 있었다. "맛있으면 이웃에게 알리고 맛없으면 주인에게 알려주세요". 라는 글귀였다. 무슨 큰 의미가 담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창문에 적힌 글과 더해 가식없는 주인의 마음씀씀이를 가늠케했다. 그..

수필 이론 2022.04.19

글쓰기와 관점 / 김시래

글쓰기와 관점 / 김시래 도전에 응한 이유를 묻자 48살의 추성훈은 '쉬운 길보다 어려운 길을 가야 배울 것이 많을 것'이란 아버지의 가르침을 꺼내들었다. 모두 감동했다. 남은 그의 여정도 그럴 것이다. 백전노장의 말에는 인생을 대하는 관점이 담겨있다. 말과 글은 관점의 도구다. 글속에 담긴 관점은 그의 인생처럼 유일무이해야 한다. 공감마저 얻는다면 세상을 넓히고 세상을 키울 자격을 얻는다. 단어와 어휘가 사용되고 매끄러운 문장력이 동원 될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라. 단골 손님이 그릇 구경하러 음식점에 가는 게 아니다. 맛 때문이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은 문체가 아니다. 관점이다. "그리운 건 그대일까, 그 때일까" ,"구겨진 종이가 더 멀리 간다". 하상욱 작가의 단문이다. 댓구로 이뤄진 감각적 문..

수필 이론 2022.04.11

반추상(半抽象) 수필/ 윤재천

반추상(半抽象) 수필/ 윤재천 반추상 수필은 그 의미가 다의적(多義的)이다. 수필은 자연현상과 함께 각기 다른 삶의 실상과 그에 따른 경험을 기록할 목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대중화되어 있는 문학이다. 수필은 형식이나 내용에 제한이 없는 글로 인식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글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지만, 이런 기존의 인식이 수필의 어려움이기도 하고,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수필의 내용이 작가의 삶의 모습이라는 선입견이 강함으로써 창작과정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수필은 경험의 기록이기도 하고, 기대하는 소망의 피력일 수도 있어 다양한 것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경계를 넘어 다양성을 토대로 자라나야만 미래를 바라보는 수필이 된다. 다의적 수필은 그 특색이 불투명한 메시지로 독자에게 다가가지만 '이미지'..

수필 이론 2022.03.28

수필은 주역(周易)에 생활복을 입힌 것이다 / 박양근

수필은 주역(周易)에 생활복을 입힌 것이다 / 박양근 “가는 것은 모두 이 시냇물과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어느 날 공자님이 시냇물 위에 놓인 다리를 건너가면서 한탄한 말이다. 우리들도 일상에 묻혀 지내다가, 모든 것들은 쉬지 않고 변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 하늘에 뜬 구름을 쳐다본다. 기원전 6세기경 희랍의 서정시인도 인생무상을 이렇게 노래했다. 보게나, 세월이 내 관자놀이 위로 흰 서리를 뿌리더니, 어느새 내 머리를 흰 눈밭으로 만들었네. 이가 빠져 버린 잇몸은 자꾸 넓어지고 젊음도 기쁨도 오래전에 스쳐가 버렸네 시인이든 철학자의 명석한 논리와 다감한 감정이 지향하는 곳은 한 곳, 한 것이다. 그것은 인생과 자연의 변화이다. 천지개벽 (天地開闢), 상전벽해 (桑田碧海)..

수필 이론 2022.03.24

글의 과녁 / 김시래

글의 과녁 / 김시래 얼마전 MBC ‘놀면 뭐하니?’를 연출한 김태호 PD가 백상예술대상에서 한 수상소감은 의아했다. 그는 “큰 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놀면 뭐하니?’가 시즌제로 가야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재석씨가 혼자 끌어가는 것이 큰 스트레스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덧 2년을 향해 달려갑니다.유재석씨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는데 센스있는 백상예술대상에서 그 선물을 준비해 주려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평소 담백했고 겸손한 프로듀서였다. 이날도 수상의 영광을 파트너의 수고와 공으로 돌려 시상식의 스포트라이트를 양보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다소 방심했다. 시상식의 주인공은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아니라 시청자다. 시청율을 올려준 것도,시상식을 보는 사..

수필 이론 2022.03.12

춘풍추수(春風秋水)로 가는 글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 박양근

춘풍추수(春風秋水)로 가는 글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 박양근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러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들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나짐 히크메트- /터키의 시인 (1902-1963) 명문장의 종착지점은 있는가. 그것에 다다르면 순결한 영혼에 덕지덕지 붙은 굳은살을 벗겨지련만. 원래의 심성으로 돌아갈 수 있으련만 아쉽게도 명..

수필 이론 2022.02.10

비대면시대의 수필문학/강돈묵

비대면시대의 수필문학 강 돈 묵 dmkang892@hanmail.net 1. 들어가기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천고의 진리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의 문화가 태동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다 쇠퇴하게 되면 경쟁관계에 있던 새로운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일찍이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헬레니즘 문화가 한 시대를 끌고 가다가 쇠락하자 신 중심(神中心)의 헤브라이즘 문화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고, 다시 인간 중심, 신 중심의 사상이 순번을 바꾸어가며 이어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바로 역사가 돌고 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실례로 여겨졌다. 그동안 이러한 사조 내지 문화의 교체는 장기간의 세월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나, 최근에 와서는 그 패러다임마저 무너..

수필 이론 2021.09.15

글쓰기 방법론: 쓰라고?/김서령(자유기고가)

글쓰기 방법론: 쓰라고? 김서령(자유기고가) 글을 써라. 어떻게? 그냥 써라. 아니 어떻게 그냥? 무조건 써라. 아니 어떻게 무조건? 글쓰기에서 가장 어려운 건 시작이다. 도무지 뭘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할 때 무조건, 그냥 , 아무렇게나! 한 문장을 시작해버려라. 눈에 보이는 아무 단어나 우선 써 버려라. 이렇게! 그게 바로 오늘의 글감이다. 글감은 당신의 기억 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다가 당신이 원할 때 얌전하게 차곡차곡 순서대로 나타나 줄만큼 인심좋지가 않다. 되려 떠올리려 할수록 천리만리 도망가 버리는 심술쟁이다. 뭘 쓸까? 막연히 살아온 모든 날을 뒤지면서 백날 엎드려 있어 봐도 떠오르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책상 서랍을 다 뒤집어엎고 밀린 빨래를 다 치대서 널어도 뾰죽한 생각이라곤 단 한 개가..

수필 이론 2021.08.16

존재자들의 머리카락을 찾아서

월간 2021. 7월호 평론 부문 당선작 존재자들의 머리카락을 찾아서 ―마경덕 시인의 시 세계를 중심으로 신원석 (시인. 평론가) 우리는 매일 수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집과 직장에서, 학교. 때론 커피숍이나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스물네 시간을 보낸다. 적어도 죽음이 닥치기 전까지는 매일 아침 기상(起床)과 동시에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하루치의 세상이 주어진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최초의 사건들이 또 하루치만큼 줄지어 달려들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에게 생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지금껏 우리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내일이 버젓이 살아 있지만, 우리는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 대해 깊이 회의한다. ‘지겹다’는 푸념이 공식처럼 따라붙는 것도 다반사. 이런 반복적 일..

수필 이론 2021.07.30

수필의 미래, 그리고 강적들< #1. 르네상스 시대와 에세이> /박양근

수필의 미래, 그리고 강적들 /박양근 한국에서 말하는 수필을 달리 말하면 “인생 산문”이다. 수필은 산문체 문장으로 개인의 갖가지 인생 편력을 15매 전후로 담아낸다. 수필에 가까운 서양 장르로 흔히 에세이를 거론한다.『용재수필(容齋隨筆)』(74권 5집)의 서문에 ‘나는 버릇이 게을러 책을 많이 읽지 못하였으나 뜻하는 바를 따라 앞뒤를 가리지 않고 써 두었으므로 수필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이와 달리 프랑스어의 에세(essai)는 “시도(試圖)한다, 시험(試驗)한다, ‘계량하다’, ‘음미하다’의 뜻이라는 점에서 출발부터 차이가 있다. 프랑스의 문필가인 몽테뉴(Michel de Montaigne)가 (1580)을 발간하고 자신의 글에 ‘에세(essais)’라는 이름을 붙인..

수필 이론 2021.07.15

아직도 못다 한 종소리의 숙제/유혜자

아직도 못다 한 종소리의 숙제/유혜자 수필은 작가의 성장 과정과 삶의 도정에서 겪은 이야기와 꿈이 녹아 있거나 변용된 모습이 담긴다. 초등학교 때 나라 사랑과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선생님의 교훈적인 말씀을 많이 들었다. 그중 “종소리처럼 남의 가슴을 울려 주는 사람이 되라.”는 말씀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뽐낼 만한 글 솜씨도 없이 지내다가 여고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시가 우수작으로 뽑혀 대학은 문과로 진학했다. 졸업을 몇 달 앞둔 늦가을, 그때는 권위 있던 여성잡지 『여원』신인상 시 부분에 응모, 최종심 두 편에 올랐었고, MBC라디오에 입사하고서도 한 차례 K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했다가 원로 시인이 최종심에 올라온 두 작품 중, 내 글의 좋은 구절 몇 줄을 인용하고 ‘현대문학에 기여할 만한 ..

수필 이론 2021.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