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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론

비대면시대의 수필문학/강돈묵

에세이향기 2021. 9. 15. 19:34

비대면시대의 수필문학

 

 

 

 

강 돈 묵

dmkang892@hanmail.net

 

1. 들어가기

역사는 돌고 돈다는 말을 흔히 한다. 그리고 그것은 천고의 진리로 여기며 받아들이고 있다. 하나의 문화가 태동하여 한 시대를 풍미하다 쇠퇴하게 되면 경쟁관계에 있던 새로운 문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일찍이 인간 중심(人間中心)의 헬레니즘 문화가 한 시대를 끌고 가다가 쇠락하자 신 중심(神中心)의 헤브라이즘 문화가 그를 대신하게 되었고, 다시 인간 중심, 신 중심의 사상이 순번을 바꾸어가며 이어져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바로 역사가 돌고 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실례로 여겨졌다.

그동안 이러한 사조 내지 문화의 교체는 장기간의 세월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나, 최근에 와서는 그 패러다임마저 무너지고 있는 실정이다. 정보사회가 도래하자 그 속도도 빨라져서 전의 형태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생성‧ 발전‧ 쇠퇴‧ 대체의 주기가 너무나 짧아 학자에 따라서는 전과는 다르게 혁명적으로 바뀐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특히 인간들의 가치관이나 기호에 따라 달리하던 것이 요즘에는 인간외적 상황에 의해 초스피드하게 바뀌기도 한다. 물론 인간외적이라 해도 결국은 인간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코로나 19와 같은 감염병으로 인하여 생활의 패턴이 바뀌고 사고의 영역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은 혁명적이라 일컫기에 충분하다. 어떠한 흐름이나 징후도 없이 느닷없이 다가와서 인간의 삶을 휘젓고 지나감으로써 준비 없는 변혁에 인간들은 떨 수밖에 없다.

코로나 19는 인간 삶의 형태와 사고의 영역에 무한 제약과 무한 변혁의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또한 그 끝을 예단하기 어렵도록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가치관에 혁명적 변혁을 줌으로써 모든 면에 있어서 그동안의 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패러다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이것은 앞으로 인간 삶에 지대한 변화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 예측하면서도 확실한 비전 제시에는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혹여 감염병으로 인하여 절망에 빠지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상존하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예단이 어려운 와중에 확실한 것은 기존의 대처방법으로는 감내하기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것에서 가치를 추구하던 시절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점치기까지 한다. 접촉의 시대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찾아올 것이라는 의견에 대부분 동조한다. 서로 접촉하는 것을 피하고 기계에 의존해서 새로운 소통의 방법을 모색한다. 자연스럽게 4차산업혁명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ICT)의 지원을 받아 차세대에는 ‘초연결’, ‘초지능’, 초융합‘으로 갈 것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자율 주행차, 가상현실 등이 주도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데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2. 대면시대의 가치관

코로나 19로 인해 눈에 띄게 변한 것은 대면의 세상이 비대면의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인간은 서로 부대끼며 사는 데에서 보람과 가치를 찾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노력한다. 인간이 가장 중요하게 인식하고 유념하면서 산 것이 바로 사람간의 거리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최소 35cm는 유지하며 접촉의 의미를 새겨왔다. 이 거리는 인간관계에서 하나의 가늠자와 같이 인식되어 더 가까우면 연인과 같은 친밀한 관계로 판단하였기에 그 이상을 유지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들은 다른 사람보다 나은 자신을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어쩔 수 없이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갖은 고생을 자처했던 것이 인간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나만이 간직한 능력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능력과 나만의 목표 달성을 추구한 것이 그동안의 삶이었다.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먼저 가서 내 것으로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목표 달성을 위해 다른 이를 부리는 것이 아니고, 자신을 끝없이 부려야 했던 세월을 살았다. 뭐든지 결과물을 찾고, 그 성과에 만족하여 즐거움을 누리려했던 삶은 결국 자기 학대라는 웃지 못 할 현상을 만들었던 것이다.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은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룰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언제든 남보다 앞서서 목표 달성을 이룸으로써 만족하는 삶이려니 했지만, 그것은 우리 스스로 무덤을 판 피로에 지친 고통의 삶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욕구는 인간세계에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을 대할 때도 같은 유형으로 나타났다. 자연과 공존한다는 인식 없이 오로지 내 것으로 만들어 소유하려는 욕심만이 있었다. 그 결과 자연은 파괴되고, 인간은 피폐해져 궁지에 몰리는 악순환이 거듭되었다. 홍수와 가뭄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이번에 초래된 코로나 19 사태와 같이 인간의 욕심이 불러온 재앙도 많았다. 코로나 19가 천산갑이나 박쥐까지도 생식(生食)하겠다는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결과라는 주장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한번쯤 되새겨 볼 일임은 분명하다.

 

3. 비대면시대의 가치관

감염병의 도래로 요즘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입에 달고 산다. 거리두기의 상징물은 마스크다. 그동안 사람들은 가까운 관계에 가치를 두고 ‘입을 맞추다.’, ‘입대다.’, ‘같은 입이다’, ‘한 입이다.’와 같은 말로 가까움을 과시했는데, 여기에 마스크로 굳게 차단기를 내렸다. 그러면서 1m, 1.5m, 2m 하며 거리두기를 요구한다. 기존의 친근한 관계를 이제는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옛날처럼 사람에게 가까이 접했다가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사고의 변화를 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모두가 비대면을 요구하는 세태에 동참하지 않고서는 삶을 유지할 수 없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가까울수록 친밀하고 특별한 것으로 인식하였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다. 만나도 악수를 하지 않고 주먹의 등으로 서로를 인지한다.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인터넷을 통한다. 즉 접촉의 시대는 가고 접속의 시대가 우리 앞에 와 있다. 더 가까워지는 게 아니고, 아주 멀리 떨어져 나가고 있다. 이제 비대면으로 삶의 형태가 일대 전환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치관의 변혁도 요구되고 있다. ‘그놈의 정 때문에’ 하던 한민족의 피부 접촉의 욕구는 온데간데없고 기계에 의존해 소통하는 세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 이후 서양에서는 ‘베이비 붐’이 일어나 골칫거리라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혼’이 증가한다고 투덜대고 있다. 이는 시사(示唆)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도 피부의 접촉을 요구하며 살아온 민족이라는 것이다. 모든 감정의 교환은 피부의 접촉으로 시작하였다.

그런데 비대면 시대에서는 금물이다. 가능한 악수도 하지 말고, 사회적 거리를 두라고 주문한다. 이런 사회의 존속을 위해서는 ‘신뢰’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런데 이 신뢰의 기저에는 ‘공개적인 확실성’을 기반으로 하여야 되고, 반드시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를 소망한다. 자연스럽게 투명사회로 전환된다. 그동안 불신했던 사회를 투명하게 믿기 위해서는 소통을 가로막고 있던 사회적 차원의 부정성을 허물어뜨려야 한다. 도덕적 장막마저 걷어내고 가려짐이 전혀 없는 투명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이러한 욕구는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통제사회를 생산한다. 여기에는 과학기술이 동원되고 자연스럽게 디지털기술로 정보화시킨다. 이번 코로나 19 극복에는 ICT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기술이 인권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불안도 있다. 하나의 정치가가 이 기술을 자신의 권력 연장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엄청 무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공익에 사용하지 않고,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 정보의 확보를 위해 사용한다면 그 사회는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비대면의 시대는 ‘나는 할 수 있다.’는 성과 위주의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의 기회를 제공했다. 가족 간에도 적정한 거리가 필요하여 독립적인 인격체로 존중해 주어야 함을 알려 주었다. 앞서 가기 위해 늘 자신을 학대하고 착취했던 인간들에게 일과 삶이 균형 잡혀야 함을 깨닫게도 해 주었다. 서로와 서로의 거리 축소에 몰두해 있던 인간들에게 적정한 거리가 필요함을 깨우쳐 주었고, 자연이 끝없이 착취와 정복을 하는 대상이 아니라 공존의 상대임도 알게 해 주었다.

이러한 사고는 가치관의 변환에도 크게 기여했다. 변한 가치관 아래서의 행동은 근본적으로 다르게 마련이다. 더구나 감염병으로 인한 급작스런 변환은 혁명에 가깝게 커다란 차이를 유발하게 된다.

 

4. 비대면시대의 수필문학

인간관계에 밀착되어 있던 대면시대는 하나의 공동체 고리로 묶여 있었다. 모든 것이 이것에 기저를 두고 거대한 생명체가 되어 움직였다. 그런데 비대면의 시대가 찾아오면서 이 공동체의 고리가 해체되고 있다. 감염병으로 자유로운 행동이 불가해지자 좁은 공간에서 과학기술에 의존한 삶을 꾸리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결국 폐쇄된 공간에 유배되는 꼴이 된 셈이다. 그동안의 일상은 무너지고, 투명한 눈으로 주변의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 감염병균과 인간의 치열한 싸움을 지켜보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읽어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을 극복해 나가는 이웃과 자신을 비교해 보고, 그 속에 내재해 있는 인간의 심리도 꿰뚫어 봐야 한다. 이제 작가는 급변한 환경이 인간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살펴봐야 하고, 그것을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그동안 대면의 시대를 살면서 의식하지 못하고 스쳤던 거리도 인지하고, 그 필요성도 냉철하게 제시할 일이다. 육체적인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도 유념할 것이고, 균형의 시각으로 선을 긋는데 과감한 용기도 내야 한다. 전보다 그 거리가 멀어졌다 하여 멀어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매개가 되어 효과를 얻게 됨도 감지해야 한다.

자연과 거리를 둠도 당연하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그와 공존해야 하는 존재다. 자연의 위기는 곧 인간의 위기로 이어진다. 인간이 자연에게 횡포를 부리고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대가가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병이다. 위기의 인간이 자연 앞에서 삶을 통찰하고 깨달음을 얻는 작품을 생산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새로 정립하는 가치관에 의한 문학이 태동할 것이고, 머지않아 그 가치관으로 새로운 사조의 문학이 번성하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점쳐 본다. 대면의 시절에는 전혀 유념하지 않았던 문학세계가 도래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해 본다. 어쩌면 인간 중심의 문학사상에서 이탈하여 신 중심의 문학으로 탈바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수필은 일상 속에서 접하게 되는 사물이나 사건의 본질을 찾아 작가만의 시각으로 해석해 내고, 그것이 함유하고 있는 의미를 부여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문학 장르이다. 이때 발칙한 해석에 이은 문학적 형상화가 이루어진다면 수필은 영원한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래서 수필을 보면 작가의 삶에 대한 애정과 고뇌가 함께 어우러져 작가만의 색깔이 드러나게 된다. 작가가 삶의 현장에서 뜨겁게 자신을 사랑한 흔적이 짙게 풍김으로써 독자는 작가의 두뇌를 보는 것이 아니라 뜨거운 가슴을 읽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수필은 작가의 삶의 형태가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앞으로 비대면 시대가 지속된다면 수필문학은 그 어느 장르보다 치열한 변혁을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어느 장르보다 작가의 삶의 유형이 작품에 드러나는 문학이 수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발칙한 해석의 토대는 당시의 사상적 흐름에 민감한 관계로 엄청난 변혁을 보일 것으로 사료된다. 그동안의 가치관이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것이었기에 그 흔적의 변화는 크리라 믿는다. 특히 한국의 수필문학이 신변수필이 많았던 점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예측은 되는 일이다. 밖으로의 행동보다 폐쇄된 공간에서 검색한 정보와 사유를 통한 수필 창작은 기존의 것과는 차별화 될 것이라는 예측이 들기도 한다. 늘 가까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너그러웠던 데서 벗어나 거리의 필요성도 깨닫고, 자아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수필을 얻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가치관이 전의 것과 다르게 나타나 커다란 조류를 이룬다면 수필가 자신도 의도된 창작에 전념할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자신을 착취하는 성과 위주의 가치관에서 일과 삶을 균형 있게 유지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함께 한다면 글의 내용은 분명 기존의 것과 다른 영역을 구축할 것이다. 또한 인간의 활동이 자유롭지 못하면 체험 속에서 글감을 찾던 지난날의 창작태도에서 이탈하여 깊이 성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동원할 것이다. 발칙한 해석을 거치면서 깊이 있는 수필이 생산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해 본다. 다만 수필인구의 감소가 초래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하루 속히 백신의 개발로 감염병 사태가 종식되고 우리의 삶이 안정을 되찾기를 기대하면서도, 기왕 찾아온 비대면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나름의 좋은 수필이 얻어지기를 소망해 본다.

 

5. 나가기

비대면시대가 지금 우리 앞에 와 있어도 이것이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는 가늠하기 어렵다. 백신이 나와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면야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지만, 만에 하나 이 사태가 오래 지속된다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은 크리라 예측해 본다. 가치관의 변화로 글이 지향하는 바가 바뀌고, 이를 담기 위한 그릇이 요구될 것이다. 하지만 바로 백신이 개발된다 해도 이번의 사태가 수필문학에 끼친 영향은 작지만은 않을 것이다.

우선 체험 속에서 글감을 취한다 해도 지난날의 창작태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감염병에 불안해하던 심리가 영혼을 잠식한 경우도 보일 것이고, 그로 인하여 수필에 변화를 강요할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이번 사태가 수필문학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위 글에서 대면시대와 비대면시대의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 정리한 것은 송명희 교수의 선지적(先知的) 고견을 밝힌 <코로나 블루, 코로나 뉴월드>, <사회적 거리 두기>. <포스트 코로나 사회를 생각하며> 등의 내용을 참조하였음을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