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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이론

수필 아포리즘 / 윤재천 隨畵集

에세이향기 2022. 11. 2. 12:14

수필 아포리즘 / 윤재천 隨畵集 /
1. 수필은 인간학.


인간 내면의 심적 나상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
한 편의 수필에는 자신의 철학과 사유, 현재와 과거의 행적, 미래를 예시하기 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2. 수필은 창의 문학.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이 아님.
함축과 묘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적절한 예시를 들어 독자와의 거리를 좁히는 문학.
끊임없이 변하는 독자, 관습에 매여 있는 작가.


3. 수필은 언어 예술.


논설이나 훈계조의 직설화법이 아니라 정서가 흥건하게 배어 있는 메타포.
작가는 시대를 꿰뚫는 혜안과 통찰력이 필요.


4. 수필은 신문고(申聞鼓).


시대와 동행하는 또 하나의 캔버스.
작가는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열어 놓는 자세가 필요.
예전에 옳다고 생각한 가치가 진실이 되지 못하고 그 반대일 수 있는 것이 시대의 흐름.
그 흐름을 간파하며 독창적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가운데 나만의 신선한 것을 찾아내야.


5. 수필은 큰 그릇.


열린 사고(思考)로 세상을 읽어가는 놋쇠 그릇.
수필의 소재는 제한되지 않고 무엇이나 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거대한 그릇.
시대감각을 무시한 채 단순한 과거 회상이나 ‘나’의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면 객관성을 잃게 돼.


6. 수필은 마음 수련.


지식을 넓고 고르게 습득해야.
많은 것을 생각해야 적절하게 글을 조립할 수 있어.
세상은 상하수직관계와 상호수평관계로 이루어져 있어 자칫 잣대를 잘못 대어 위에서 내려다보는 글이 되면 자기 과시로 흐르게 되고, 지나치게 겸손하면 자기 비하가 되기 쉬워.


7. 수필은 뿌리 깊은 나무.


경제를 알아야 정치를 할 수 있고 경영인도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열어내 듯 수필도 독자 속으로 파고들 어 두발을 담글 수 있어야.
자기중심의 가치관을 뿌리 삼아 가지를 사방으로 뻗치고 서 있는 나무처럼 세상 온갖 것을 흡입하여
푸른빛을 연출해 내야.


8. 수필은 등불.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거치는 ‘진실’이라는 보석.
자기만의 빛깔과 향취를 품은 작품을 창작하기 위한 고뇌는 수필 작가의 소명.
작가는 그 시대를 선도하는 등불.


9. 수필은 은유 문학.


형용사와 부사가 넘치면 집은 없는데 방만 오밀조밀 꾸미고 있는 것처럼 허세로 보일 수도.
적절한 비유를 통해 우회작품으로 표현하면 한 문단으로 설명할 것도 간접 묘사를 통해 줄일 수 있고
그 문장은 적확한 은유 하나로 감동과 설득력을 배가(倍加)시켜.


10. 수필은 개성 문학.


권장도서의 의미는 보편적 의미가 강해.
보편적인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아도 내게 맞지 않으면 좋은 것이 될 수 없어.
내 안의 독특한 창의력과 정화 장치를 통해 자신을 분출해 낼 때 예술로서의 자양분이 될 수 있어.


11. 수필은 열린 마음.


혼자 살 수 없는 것처럼, 수필도 남의 작품을 수용함으로써 풍성한 글 세계를 이룰 수 있어.
그것이 그 사람의 교양이고 인격.
그 길만이 발전하는 길.


12. 수필은 주제 문학.


주제가 선명하고, 인간적 향기가 있어야.
수필을 ‘거울’에 비유한 것은 궁극적으로 자기 성찰을 통해 자기애(自己愛)를 바탕으로 하는 만큼 자기와 의 만남을 도모하는 작업.
다른 장르에 비해 고백적 글이라는 사실이 수필의 문학성 확보와 가치 증대에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짐.
수필은 내구성을 확보하고 주제와 면밀한 창의성을 도출해야.
주제는 언제나 문학적으로 승화시켜야.


13. 수필은 선지자.


젊은 독자를 외면할 수 없어.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현실에서 자기만의 개성과 지성을 쌓아나가야.
농익은 연륜으로 인간의 향취와 위트가 넘치는 글은 관조의 여유와 인간적 면모를 느끼게 해줘.
수필가는 시대를 앞서 가는 선지자의 모습을 갖추어야 젊은 독자가 다가와.


14. 수필은 통찰력.


통찰력이 바탕이 된 논리적 체계를 갖춰야.
서양 교육에서 보는 우리의 논술과 같은 서술형 위주의 교육을 지향하는 것은 사고 능력을 신장시키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
답이 하나면 희망이 아닌 절망.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하나의 답을 찾지 못할 경우 대열에서 낙오.
수필도 변하지 않으면 독자의 외면을 피할 수가 없어.


15. 수필은 재창조.


해체와 조립에서 발전.
문화유산에서의 해체는 다시 조립을 전제로.
백제의 문화유산 미륵사지 전탑(塼塔)은 천년의 모진 풍상을 견디는 동안 귀퉁이가 깨지고, 미래에 대한 배려 없는 보수로 시멘트를 덕지덕지 얹은 흉측한 몰골로 남아 있어.
무너진 탑의 보수를 위한 해체에는 한순간이 아니라 많은 세월과 영혼이 수반되어야.


16. 수필은 반 추상(半抽象).


반 추상은 그 의미가 다의적(多義的).
다의적 수필은 그 특색이 불투명한 메시지로 독자에게 다가가 이미지를 제공.
기존 수필의 감성과 구상적 작법에서 발아(發芽)된 글은 한계에 봉착.
수필도 새로운 영토 확장이 필요해.
반 추상 수필의 영토가 확장될 때 수필 문학이 크게 발전.


17. 수필은 탈장르.


반복적 시도에서 발전.
작가는 금기를 깨고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어야.
수필은 끊임없이 시도하며 장르의 벽을 뛰어넘어야.
글도 시대에 따라 패턴이 달라.
모두가 뛰는 시대에 혼자 꼿꼿 자세를 고집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


18. 수필은 승화.


마당 수필이 필요해.
무겁고 거친 부제라도 한바탕 춤사위를 통해 연기처럼 승화시켜야.
삶을 테마로 한 대화가 이어져 비난보다 찬사가 울려 퍼져 함께 박수 소리가 꽃처럼 피어나는 문화적 분 위기이어야 살맛나는 세상의 모습.
그것이 마당 수필의 꽃.


19. 수필은 성찰.
과일의 상큼한 맛이 나면서도 막 피어난 꽃처럼 싱그러움이 내재되어야.
성찰의 진지함으로 뼈대가 이루어져야.
논리에 함몰되어 목청을 높이면 수필의 맛과 향기를 잃게 돼.


20. 수필은 나의 외골수 행보.


수필에 대한 행보는 조용한 가운데 흐름.
도전과 시도 속에서 생명력이 왕성한 물굽이로 휘돌았으면.
이 행보가 면면히 흘러내려 수필계의 마르지 않는 강줄기로 남기를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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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내면서


‘아포리즘’이란 용어는 신념화된 확신을 대중에게 알려 계도할 목적으로 외치는 함성으로, 그 기원은 의학자 히포크라테스가 저술한 『아포리즘aphorism』에서 시작된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며 모든 일은 갑작스럽게 찾아 왔다 사라지는 것이므로, 경험이라는 것은 사람을 속이곤 하여 어떤 판단도 쉽게 내리지 못한다.’고 했다.


이 말은 후세에 ‘격언(格言)금언(金言) 잠언(箴言)’ 또는 ‘경구(驚句)’로 해석되고 있다. 간결한 표현이면서도 널리 진리로 인정되고 있어 사람들에게 묵상의 화두로 남고 있다.


‘수필 아포리즘’집(集)은 실존하고 있는 것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바뀔지 모르므로 수필에 대한 잠언을 모아 동아리 지어 보았다.


오랜 숙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이 근간이 되어 상재되는 땀방울이 가치 있는 조언(助言)이 되기를 기원한다.


삶은 누구에 의해서도 완전하게 결론 지어질 수 없어, 인류의 영원한 관심의 대상이고 반복되어 맡겨질 과제이므로, 모든 것은 시대적 추세를 무시할 수밖에 없고 무시한 상태에서는 관심의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의미에서 경기장 관중석을 가득 메운 사람이 열광하는 가운데 공을 몰고 달려가 골대에 집어넣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한 권의 ‘수필 아포리즘’집이 그런 뜰을 조성하는데 첫 밭이 되고, 수필을 발전시키는 데 자극제가 되어 귀한 텃밭으로 일궈가길 고대한다.


누군가가 선각자 역할을 하며 깃대를 들고 달리다 보면 많은 이들에 의해 이런 작업이 계속 이어져 알찬 결실을 수확될 수 있다.


전광석화 같은 화두에 고민하며 매력을 느끼자 보면 우리나라 수필은 한 단계 위로 상승하게 되어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로 전환된다.


이것이 수필인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 과제가 아닐까.
서초동 구름카페에서 윤 재 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