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5/21 3

가정식 백반/이선이

가정식 백반 ​ 나는 한때 밥집 여자이고 싶었다 순무를 곱게 절여 벌겋게 생채무칠 줄 아는 밥집 여자의 억척스런 순정을 흠모했음일까 그대의 붉은 목젖 닮은 서해 염전 갓구운 간소금을노오란 속배기에 철철철 흩뿌리며 내 갈기든 삶 조용히 절이고 싶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돈도 국경도 바닥나 좌초된 난민이었을 때 떨어진 배낭 하나 끌어안고 도나우 강변 성벽에 앉아 내가 바라본 것은 밥내 자욱한 어떤 쓸쓸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면 숙생의 연기 자욱한 밥 한그릇 올려놓고 세상의 허기든 者(자)들 모여앉아 조용히 들어올리는 수저질이 아니라면 젯상에 올려지는 밥 한그릇은 무엇을 위로한단 말인가 차림표 위엔 고흐의 감자먹는 사람들을 걸어두고 쌀통 가득 공양미 삼백석을 ..

좋은 시 2025.05.21

누룽지 / 최장순

누룽지 / 최장순 ​​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을 맹신하는 나는 한 가지 더 보탠다. 감출 수 없는 일을 보여주지 않아도 소리로 금방 알아채는 일을 바로 먹는 소리다. 물렁한 음식이야 소리를 감출 수 있지만, 오도독 발설하는 소리는 금세 무얼 먹는지 알 수 있게 하니 말이다. 요즘 취향이 되어버린 누룽지 후식에서 얻은 지론이다. 먹는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신체활동만을 담지 않는다. 정신활동을 더한다. 음식마다 고유한 맛과 냄새와 식감을 통해 잊어버리고 있던 향수를 불러일으키니 말이다. '누룽지~' 하고 되뇌면 금세 구수한 온기가 입안 가득 퍼지는 것 같다. 군것질이나 주전부리와는 다른 소박하지만 정겨운 느낌이다. 고향 집이 떠오르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보이고 가마솥과 아궁이, 그리고 ..

좋은 수필 2025.05.21

마중/김혜경

마 중 김 혜 경 난데없는 비바람에 우산을 부여잡고 현관으로 종종걸음을 옮기다가 검은 실루엣에 깜짝 놀랐다. “엄마! 비 오는데 왜 여기 나와 있어?” 나도 모르게 놀람과 안타까움에 짜증을 섞어 다그치듯 외쳤다. 엄마는 흠뻑 젖은 얼굴을 아랑곳하지 않고 “걱정이 되어서” 라고 들릴락 말락 힘없는 소리로 대답했다. 그리고 구부정하게 굽은 등을 돌려 천천히 벽을 잡고 집안으로 앞장섰다. 퇴근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왜?”라고 몇 번을 재촉한 뒤에야 언제 오냐는 희미한 목소리가 겨우 들렸다. “일 마치고 빨리 갈게” 서둘러 전화기를 내려놓으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미 퇴근 시간은 지났지만, 상담 일정이 잡혀있어서 조금 더 늦어질 듯했기 때문이다. 서둘러 일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괜히..

좋은 수필 2025.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