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린내의 시학 - 이성복, <아, 입이 없는 것들>(문학과지성사, 2003)
1. 들어가며
2000년대 이후, 가능하다면 2010년대 이후 등단해 현재 계간지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작업을 매달 성실히 따라 읽으며 리뷰를 써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처음의 결심과 달리, 자꾸만 이미 충분히 비평적으로 논의되고 검증된 중견급 이상 시인들의 시에 여전히 눈길이 가는 요즘이다. 나의 이러한 보수적이고 기성세대 편향적인 시적 취향에 대해서는 본디 옛것, 지나간 시대의 것이라면 우선 본능적으로 향수를 느끼게 되는 나의 성향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인데, 하지만 그러한 취향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순간들도 없지 않고, 가령 <현대시> 8월호에 송재학의 <습이거나 스페인> 리뷰 청탁을 받아 기쁜 마음으로 읽고 썼던 경우가 그랬다.
1977년 데뷔 이래 동년배 시인 황지우와 더불어 비루한 일상성의 영역을 한국시단의 한켠에 개진해 두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성복에 대한 나의 관심도 앞서 설명한 취향의 맥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2003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이성복의 <아, 입이 없는 것들>은 당시 시인이 10년 만에 내놓은 여섯 번째 시집이었다. 그래서일까, 통상 시집 한 권에 55편 내외의 시편이 실리는 데 반해 이 시집에는 무려 125편의 시가 실렸다. 10년 동안 쌓아두었던 할 말을 쏟아놓고 있다는 인상이다. 요컨대 댐의 방류 장면 같은 것을 지켜보는 심정으로 시집을 읽었다.
이 글은 본격적인 한 편의 리뷰가 되지 못할 것이다. 이 블로그에 공유하는 모든 리뷰가 기본적으로 그러할진대, 나는 이것을 언젠가 내가 쓰게 될지 모를 리뷰나 비평(심지어는 문학사..?)의 준비 쯤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대체가 부담스러워서 아무것도 쓰지 못할 것이다.. 아무려나 바로 그렇기에, 이성복의 여섯 번째 시집에 관한 이 글 역시 간단한 인상 메모의 차원에서 마무리될 예정이다.
내가 이 시집을 읽으며 떠올린 생각은, 이성복의 시 세계가 몇 가지 종류의 '비린내'로 분류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이 시집에 한하여 그것은 풀 비린내, 피 비린내, 생선 비린내의 세 종류인데, 꽃에 관한 시편들이 첫 번째에, 성(性)에 관한 시편들이 두 번째에, 생(生)에 관한 시편들이 세 번째에 각각 해당할 수 있겠다. 예시를 들어 살펴보자. (추후 쓰게 될지 모를 이성복론을 위해, 이 글에서 다루지 못했더라도 각 파트에 해당하는 시편의 쪽수를 그대로 적어둔다. 한 편의 글을 쓸 때 지면과 체력 둘 중 하나는 언제나 한정되어 있기에, 다루지 못하는 시란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해서는 조만간 별도의 일기를 통해 풀어내볼 수 있을 것이다.)
2. 풀 비린내
: 27, 32, 36, 40, 41, 53, 54, 56 / 2부 - 62, 63, 64, 65(67), 68, 69, 70, 71, 72, 산(92, 93, 94)
저 꽃들은 회음부로 앉아서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
어두워진다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으로
가득한 것들
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간다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 발이
이렇게 따가울 것이다
아, 입이 없는 것들
- <아, 입이 없는 것들> 전문
표제작이기도 한 위의 시에서 시인은 꽃나무의 꽃들을 보며 "살아가는 징역의 슬픔"을 감각하고, 그 슬픔을 말하지 못해 고통하는 존재를 바라본다("아, 입이 없는 것들"). 이때 "입이 없는 것들"에는 "소금밭을 종종걸음 치는 갈매기"와, 그에 비유되는, "꽃나무 앞으로 조용히 걸어나"가는 "나"가 또한 포함될 것이다. 삶을 징역으로 여기고 번뇌하는 존재로서의 꽃들을 보며, 시인은 없는 입으로 삶의 고통을 말하려 애쓰는 존재인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4연으로 된 짧은 시이지만 꽃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생에 대한 사유는 결코 얄팍하지 않다.
재밌는 것은 시인이 꽃들이 "회음부로 앉아" 있다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식물의 생식을 담당하는 기관이 꽃임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꽃의 물질성이 "스치는 잿빛 새의 그림자에도/어두워"질 만큼 여리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저 회음부라는 신체 부위를 통한 의인화가 퍽 적확하게 느껴진다. 가장 연약하고 가장 내밀한 몸의 부분을 밖으로 드러내 놓고 생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관통하며 입도 없이 신음하는 모든 존재들이, 지금 꽃의 형태로 시인의 눈앞에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꽃은 이성복이 유독 사랑하는 시어 중 하나이다. 꽃이 등장하는 시들이 이 시집에 절대적으로 많기도 하거니와 <푸른 치마 벗어 깔고>부터 <날마다 상여도 없이>, <귓속의 환청같이>, <그렇게 속삭이다가>, <하지만 뭐란 말인가>에 이르는 56-60번째의 시편들에서는 연속적으로 꽃이 주된 소재로 등장하고 있기도 하다. 여기서 꽃이 생식기의 비유이자 그 자체로 식물의 성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자연스럽게 이 시집을 통해 구체화되는 이성복의 시 세계에서 섹슈얼리티가 갖는 의미에 대해 짐직해보게 한다. 이성복의 시에서 섹슈얼리티는 단순히 표면적인 쾌락의 차원에 머물지 않고 더 본질적인 영역, 요컨대 실존의 영역에 관한 것으로 다루어진다고 하겠다. 이에 관해서는 뒤에서 조금 더 다뤄보기로 하자.
피어 있는 꽃들을 바라보다가
저 꽃들에게도 잔치를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밤늦도록 찌짐 붙이고
단술을 빚는 여인들에게
잔치는 고역이었으니.
잔치 끝나면 한 보름
호되게 앓아 눕는 여인네처럼
한창 잔치를 여느라 정신이 없는
저 꽃들에게도,
잔치를 열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나는 했다
- <잔치 여느라 정신이 없는> 전문
어렵다. 시의 해석이 어려운 게 아니라, 이 시가 동시대적 감수성과 어긋나는 지점이 있고, 그것이 이 시의 아름다움을 절하시킨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어렵게 한다. 이 시를 쓴 시인의 진심이 어리석도록 착하고, 착하도록 어리석어서 그렇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전의 감수성 안에서는 어리석음도 그 의도의 선함에 의해 '양해'되는 부분이 있었지만, 이제 어리석음은 그 의도의 선함과 별개로 악함이 된다. 동시대 감수성의 자장에서, '여성'과 '가사노동'과 '꽃'을 한 맥락 위에 두는 시 쓰기는 지혜롭지 못한 일, 지혜롭지 못하기에 악한 일이다. 위의 시가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해 감사함을 표할 때 다른 한쪽에서는 여성이 가사노동의 담당자라는 여성차별적 명제가 견고해진다. 여성혐오는 언제나 바로 이러한 두 개의 차원, 곧 '마녀 만들기'와 '성녀 만들기' 사이에서 진동한다. 이 시집이 나온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음을 감안하며, 이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이쯤에서 멈추는 것이 좋겠다.
자, 어쨌든 시인은 꽃들을 보며 또 한 번 측은한 마음을 느낀다. "고역"으로서의 생을 지속하며 종종 "호되게 앓아 눕는" 저 꽃들이 시인의 눈에는 자꾸만 밟히는 것이다. 이처럼 꽃이라는 시어를 통해 시인이 반복적으로 가져오는 이미지, 그것은 상처를 안고 전진하는 생에 관한 이미지이며, 바로 그런 점에서 시인의 시들에서는 비릿한 풀 냄새, 이른바 풀 비린내가 난다고 할 수 있다("비린내 나는 네 살과/단내 나는 네 숨결 속에서/내숭 떠는 초록의 눈길을",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한편 풀 비린내가 가장 많이 나는 곳은 아마도 산일 것이다. 시집의 중반부, 연달아 실린 세 편의 시에서 시인은 고통의 본거지로서의 산에 대해 쓴다. 생의 증거로서의 풀 비린내에 관한 사유가 '꽃'에서 출발해 '산'으로 이어지며 그 외양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비 오는 날 우산 받쳐들고 산에 오르면
산은 흘러내리는 빗물 제 혀로 핥고 있다
그리움이나 슬픔 그런 빗나간 느낌도 없이
산은 괴로움에 허리 적시며 젖고 있다
- <죽어가며 입가에 묻은 피를> 부분
그 뿔과 갑주의 등허리에 흰 눈 뒤집어쓰고
산은 쓰러져 있다 아무도 달랠 수 없고
위로할 수 없는 산, 제 굶주림과 性과 광기를
제 힘으로 못 이겨 헐떡거리는 산, 홀연히
- <경련하는 짐승의 목덜미를> 부분
퉁퉁 불은 얼굴들 켜켜이 쌓여, 그 몸 스스로
기억인 산, 그 속 통째로 통곡인 산, 전신에
신나 끼얹고 불타지 않는 산, 전신에 신나 끼얹고도
흉터만 챙기는 산, 그 흉터 그대로 칠보 문신인 산
(..)
아, 얼마나 많은 가시 네 가슴을 할퀴고
얼마나 많은 못 네 어깨에 박혀야
둥근 빛 덩어리, 빛의 소용돌이 어둔 밤을 찢을까!
- <그 흉터 그대로 생일 옷 꺼내 입고> 부분
3. 피 비린내
: 11(12, 14, 126), 13, 35, 85, 115(31), 118(119), 135
이성복의 시에서 해는 피를 흘린다. 다음의 시편들을 보자.
붉은 해가 산꼭대기에 찔려
피 흘려 하늘 적시고,
톱날 같은 암석 능선에
뱃바닥을 그으며 꿰맬 생각도 않고
-여기가 어디냐고?
-맨날 와서 피 흘려도 좋으냐고?
- <여기가 어디냐고> 전문
옥산서원 앞 냇물에 던져진 햇빛 한 덩어리
살얼음 끼어 흐르는 물에 진저리치는 핏덩이
- <저 안이 저렇게 어두워> 부분
검은 바위들 끼고 흐르는 물 위로
겹친 나무 그림자 어둡고 거기,
나뭇가지 사이로 신음하던 해가
끙 하며 선지 덩어리 쏟아 붓는다
- <나뭇가지 사이로 신음하던> 부분
오랜 문학적 문법 속에서 해가 생명력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그리고 살아있는 것만이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그 점 이성복의 시에서 피를 흘리는 존재는 모두 살아있는 존재이며, 피 흘림은 곧 살아있음의 증거가 된다. 그러나 이 피 흘림은 존재의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존재를 죽음으로 이끄는데(과다출혈에 의한 사망), 이 삶과 죽음 사이에 가로놓이는 것이 바로 성(性), 섹슈얼리티이다.
헐벗은 미루나무 꼭대기에서 겨울 해가
기어내려오고 있다 (..)
이제 미루나무 꼭대기를 완전히 벗어난 해는
돼지감자탕집 간판에 정수리가 찢기면서
뒷산 언덕에 벌건 핏국물을 터뜨린다 그 피
(..) 정액 흘러내리는 낙타표 텍스처럼
해는 풀죽어 시든 것들을 위해 눈물 흘릴 것이다
- <여리고 성 근처> 부분
정신분석에서 섹슈얼리티와 죽음이 늘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루어지는 것도 그러한 까닭일 터, 여기서 이성복의 시가 가진 두 번째 비린내, 곧 피 비린내의 시학이 발견된다. 이성복의 시에서 피는 죽음의 그림자로서뿐 아니라 섹슈얼리티의 흔적으로서 그려진다. 쾌락에 육체를 내맡긴 채 무분별한 성적 접촉을 하다 보면 머잖아 성병에 걸리게 되듯, 성과 죽음 사이의 거리는 한 뼘도 채 되지 않는다. 이 시집에 실린 여러 시편들에서 시인은 성과 죽음의 이미지를 겹쳐놓고 있다. 그 매개가 바로 피인 것이다.
피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시편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언젠가 바다는
내게 월경 주기를 알려주었지만
내 아이는 아니다
흐르는 내 흰 피는 뱀이 마셨다
서해 바다 어둡다
어떤 어두운 영혼도 내통한 것이다
- <서해 바다 어둡다> 부분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
우록에 갔다 동네 테니스회 야유회 날이었다
(..)
(..)
비누와 수건이 놓여 있는 그곳에 아직 치우지 않은
식칼과 도마가 있었고 군데군데 염소 수육이 흩어져
있었다 수육의 살점이 성기 속살처럼 거무튀튀했다
(..) 염소의 피냄새가 입 안에 그득했다
- <그날 우리는 우록에서 놀았다> 부분
‘월경’이며 ‘성기 속살’이며 하는 시어들은 역시나 섹슈얼리티를 지시하며 그것을 경유하고, 피를 마시는 장면의 이미지(“흐르는 내 흰 피는 뱀이 마셨다”, “십만 원이면 사슴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는”)는 정확하게 삶과 죽음을 연결한다. 또 한 편의 시를 보자.
매독 앓던 훈련병 맨머리처럼
희끗희끗 눈발 스쳐간 산들,
늙은 소나무 가지에서 눈 뭉텅이
떨어져 흰 떡가루 사철나무 붉은
열매를 덮고, 쌓인 눈 위에 밀린
오줌 누고 나면 순무처럼 굵게
패이는 구멍, 생각나는가 목에 뚫린
구멍으로 더운 피 쏟던 잔칫날 돼지
오, 육체가 없었으면 없었을 구멍
- <육체가 없었으면 없었을> 전문
시인은 눈 덮인 산과 사철나무의 붉은 열매를 보다가 “쌓인 눈 위에 밀린/오줌”을 누고, 그때 생겨난 구멍을 보고 피를 쏟던 돼지를 떠올린다. 마찬가지로 짧은 시이지만 이미지의 연결과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지난한 생들을 향한 어떤 처연한 표정이 절대 만만히 넘길 만하지 않은 수준이다. “눈발 스쳐간 산”을 보며 “매독 앓던 훈련병 맨머리”를 연상해내는 시인의 저 노련한 감각을 보라.. 그냥 훈련병도 아니고 매독 앓던 훈련병이라니, ‘매독’이라는 시어가 환기하는 빛 바랜 섹슈얼리티의 흔적과 더불어 거기엔 또 어떤 말해지지 않은 누군가의 남루한 속옷 같은 생의 비참이 들어앉아 있을 것인가.
이 시에서 시인이 도달하는 곳은 한마디의 탄식이다(“오, 육체가 없었으면 없었을 구멍”). 이는 생을 가진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고통을 느낀다는 불교의 일원론적 상상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이 시의 경우를 비롯해 시인이 대체로 드러내는 생에 대한 태도는 바로 이러한 생과 사의 순환, 그것의 고통에 대한 일말의 탄식에 가깝다. 그러므로 이성복의 시 세계에서 존재가 흘리는 피는 빛 바랜 섹슈얼리티의 기표로서 삶과 죽음의 뒤섞임이 만들어내는, 그것을 감싸고 흐르는 물질이다. 아래 두 편의 시에서도 섹슈얼리티는 환상화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현실의 밑바닥을 뒹군다. 그것은 모든 고결한 의미가 휘발된 밑바닥의 쾌락, 짐승의 섹슈얼리티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겨서 가쁜 숨 몰아쉬는 것에게나,
일찍이 싸워본 적 없다는 듯 나가
뻐드러진 것에게나, 못다한 분량의
섹스와 쉴 새 없이 입질해줘야 할
성마른 새끼들이 있다 (..)
- <싸움에 진 것들은> 부분
아직 어린 것들이 진흙밭에서
달리며 넘어지며 마구 올라탄다
흙투성이 털에 겨울바람 끼얹으며
훌쩍 올라타서 제 몸 일부를 끼워
넣으려고 발버둥이다 제 몸 일부를
빳빳이 세워 마구 펌프질하는 것들,
제 몸 일부가 아니라 제 몸 통째로
쑤셔 넣어야 직성 풀릴 환장할 것들,
거기 쑤셔 넣지 않으면 너희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가 무슨 까닭에 너희는
진흙 천국 속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냐
- <진밭골의 개들> 전문
4. 생선 비린내
: 16, 34, 45, 51, 52, 57, 83 / 3부 - 100, 103, 105, 106, 109, 111, 125, 127, 132, 138, 142
이성복 시의 세 번째 비린내를 생선 비린내라고 명명해두긴 했지만, 따져본다면 이는 생선 냄새에 국한되기보다 모든 삶의 냄새를 포괄하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요컨대 생선 비린내로 대표되는 어떤 삶의 밑바닥의 냄새가 이성복의 시에서는 발견된다.
기차 지날 때마다 자지러지던
아카시아 본 척도 않고
철길 따라 피는 호박꽃은
신호등도 아니다 울컥 달려가고
싶지만 몸이 없고, 곧게 뻗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어이없이
휘어지는 길, 들쥐 오줌에서
나왔다는 쓰쓰가무시 같은 병 있어
너는 또 철길 위에 선다 창턱에
올려놓은, 먹다 남은 고등어 자반처럼
- <먹다 남은 고등어 자반처럼> 전문
광주리에 씻어놓은 막창 대창처럼
세상의 길들 안개 속에 가지런하고,
보이지 않는 담낭처럼 죽음은 혹독한
즙을 흘린다 이제 해가 뜨면 꽁치 굽는
냄새, 참외 물러터지는 냄새 축농증
앓는 코를 찌르고, 햇빛은 쏟아놓은
이쑤시개처럼 피 덜 마른 뼈다귀들과
함께 종량제 쓰레기 봉투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당신은 어디로 들어가려는가?
- <쏟아놓은 이쑤시개처럼> 전문
위의 두 편의 시는 이렇다할 서사 없이 이미지들을 나열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삶의 지난함이 처연하게, 혹은 담담하게 그려진다. 첫 시의 “너”가 “먹다 남은 고등어 자반처럼” “또 철길 위에” 설 때, 두 번째 시의 “당신”은 “어디로 들어가려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청자가 직접적으로 등장하는 이 두 편의 시를 통해 시인은 먼저는 세계의 밑바닥으로서 삶의 자리에 대해, 다음으로는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는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삶의 비루함은 때로 토사물로(“누군가 잔뜩 먹고/올려낸 토사물 무더기 말라붙고 있다/물기 빠진 다음엔 토한 것도 추하지 않다”, <물기 빠진 다음엔>), 바다에 내리는 눈으로(“형은 바다에/눈 오는 거 본 적 있수?/그거 차마 못 봐요, 미쳐요//저리 넓은 바다에/빗방울 하나 앉을 데 없다니”, <차라리 댓잎이라면>),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비극으로(“삶이란 본래/시골 마을 질 나쁜 젊은 녀석들이/백치 여자 아이를 건드려/애 배게 하는 것이라고”, <찔레꽃을 따먹다 엉겁결에 당한>), 혹은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듦으로 그 비참을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그려진다(“지금까지 세상에서 내가 훔쳐낸/행복은 비참의 가상 임신 아니었던가 비참하고/싶은 비참보다 더 정교한 복수의 기술은 없다는/것을, 나는 동물병원 안 가보고도 알게 되었다”, <내 생에 복수하는 유일한 방법처럼>).
그중에서도 병원을 배경으로 하거나 몸이 아픈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시인이 등장하는 시편이 또한 적지 않다. “서울 매제가 일하는 병원에 어머니 입원시켜/드리고 차를 몰고 중부고속도로로 들어설 때/눈앞에 돌연 겨울 흰 꽃들”을 보는 시인이 나오는 <그것들 한번 보려고>, 아픈 어머니를 돌보며 “살얼음 낀 우물을 들여다보듯/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본다”고 쓰는 시인이 나오는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어느 봄/중앙병원 혈액종양외과/병동 앞에서, 초로의 어머니와/딸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는 기록을 남겨두고 있는 시인이 나오는 <또 그때처럼 구두 바닥으로> 등이 그러하다.
한편 다른 누군가의 삶이 아닌 자신이 살아내는 삶에 대한 시인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시편도 있는데, 생에 관한 보편적이고도 일반론적인 진술이 아니라 시인 개인이 삶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이 시편들은 귀하다.
당신도 없이 나를 견딥니다
묵은 베개의 메밀 속처럼
나날이 늙어도 꼭 그만큼입니다
- <좀처럼 달이 뜨지 않는> 부분
미닫이 창호마다
바랜 국화 잎 같은 기억
지울 수 없어라,
오래 살았다는 이 느낌
- <밤의 검은 초록 잎새들> 부분
다만 삭은 빨래집게의 풀어진
힘으로 우리를 이곳에 묶어두는
삶,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 <삼월의 바람은> 부분
(..) 여태 살았지만
언제 살았다는 느낌 한번 들었던가
- <추석> 부분
시인은 “나날이 늙어도 꼭 그만큼” 자신의 삶을 견디며, “오래 살았다는 이 느낌”을 가진 채로 동시에 삶을 “여러 번 살아도 다시 그리운”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또한 시인은 자신이 단 한 번도 “살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며 자신의 삶을 자조하기도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시인의 불교적 일원론이 그 자신의 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삶과 죽음은 반복되고, 그 안에서 고통은 벗어날 수 없이 수반된다.
이제 시인은 삶을 지속하는 어떤 초연함을 터득한 듯 보인다(“이제는 힘이 빠진/날벌레를 거미가 지키듯이,/나는 숨결도 없는/아내를 오래 바라보았다”, <이제는 힘이 빠진 날벌레를>). 그러나 고통이란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이라, 시인은 매번 고통을 오롯이 느끼는 수밖에 없다.
겨울 아침 아이들 숟가락
사기 밥그릇에 부딪기는 소리,
오줌 떨고 난 다음
허벅지 맨살을
스치는 오줌 방울처럼 차갑다
- <허벅지 맨살을 스치는> 부분
5. 나가며
지금까지 세 가지 종류의 비린내를 키워드 삼아 이성복의 여섯 번째 시집을 살폈다. 꽃과 성과 삶이라는 제재를 이성복은 각각 풀 비린내, 피 비린내, 그리고 생선 비린내의 모습으로 자신의 시 세계에 구체화해내고 있다. 그러나 논리의 흐름에 민감한 독자라면 이쯤에서 눈치챌 수 있을 터, 이성복 시의 비린내란 사실 모두 개별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전부 하나의 냄새다. 비린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생을 전제하는 냄새이자 생을 증거하는 냄새, 곧 생의 냄새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복은 바로 그러한 비린내의 시를 쓰며 생의 가장 날것의 모습과 그것을 지속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모든 지난하고 처절한 밑바닥의 분투, 그리고 그 주체들을 그려낸다. 이성복의 시가 가지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물론 우리 삶의 부끄러우리만치 적나라한 면면을 날카로운 통찰로 짚어내고 진단해내는 능력에서 비롯되는 것이리라.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성복은 한국시가 가진 일상성의 가장 든든한 이름 중 하나가 된다.
비린내의 시학이라는 주제에 가장 걸맞는 시 한 편을 마지막까지 아껴뒀다. 시를 전문 인용하며 글을 마친다.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잎을 핏물 들게 하는가
마라, 생각해보라
비린내 나는 네 살과
단내 나는 네 숨결 속에서
내숭 떠는 초록의 눈길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초록 잎새들이
배반하는 황톳길에서
생각해보라, 마라, 어떻게
네 붉은 댕기가 처음 나타났는지
그냥 침 한번 삼키듯이,
헛기침 한번 하듯이 네겐
쉬운 일이었던가 마라,
내게 어렵지 않은 시절은 없었다
배반 아닌 사랑은 없었다
솟구치는 것은 토하는 것이었다
마라, 나를 사랑하지 마라
- <어떻게 꽃은 잎과 섞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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