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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에피스테메(epistēmē)

에세이향기 2025. 9. 15. 10:10

에피스테메(epistēmē)

 

철학용어로서는 실천적 지식(프로네시스)과 상대적 의미에서의 이론적 지식, 또는 감성에 바탕을 둔 억견(臆見:독사)과 상대되는 의 지식을 말한다.

 

독사와 에피스테메의 구별은 이미 파트메니데스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구별한 것은 플라톤이다. 그는 에피스테메와 에이도스를 밀접하게 관련시키면서 독사와 아이스데타(감성적으로 파악된 것)에 대립시킴으로써 참된 지식의 위상(位相)을 인식론적 ·존재론적으로 규명하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필연적이고 영원한 것을 대상으로 하는 인식능력을 말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에피스테메 (두산백과)

 

 

현대철학사의 흐름을 보다가 '에피스테메'라는 단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오랜동안 외면하고 있었던 푸코가 다시 등장했습니다.

푸코의 이야기를 가만히 쳐다보면 어지럽고 복잡한 과정들과 낯선 단어들로 해서 눈이 어지럽고 속이 메슥할 지경이지만 이러한 개념의 연결과 재 창조를 통해서 스스로의 눈으로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쪽에 푸코에 관한 내용을 퍼왔습니다만 일반인으로서는 어쩌면 이 이상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을까싶군요 ㅋ

(내 눈으로 세상을 보기 위해서 이토록 깊이 들어가야 하는가 에 대한 의문이기도 합니다. ㅎㅎ;;)

 

 

"A total reabsorption of all forms of discourse into a single word, of all books into a single page, of the whole world into one book." - MF, "The Order of Things"

 

"모든 형태의 담론을 하나의 단어로, 모든 책을 하나의 페이지로, 전 세계를 하나의 책으로 완전히 재흡수하는 것." - MF, "사물의 질서"

 

                                    

 

 

  *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 - 허경(고려대학교 강사ㆍ철학)

 

 

 

“주어진 순간의 하나의 문화에는 모든 지식의 가능 조건들을 규정하는 오직 하나의 에피스테메만이 존재한다.”

 

 

 

1. 들어가면서

 

에피스테메(episteme)는 1960년대 중후반의 푸코 사유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개념이다. 푸코의 저술에서 이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1966년에 출간된 『말과 사물』인데, 에피스테메라는 용어는 모두 51회 등장한다. 이후 푸코는 이 개념을 『말과 사물』의 제 2장으로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역시 1966년에 한 잡지에 재발표된 「세계의 산문」에서 2회, 1968년의 논문 「질문에의 응답」에서 5회,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에서 13회, 1971년 메르키오르(J. G. Merquior)와의 대담 「미셸 푸코와의대담」에서 1회, 1972년 「문화의 문제. 푸코-프레티 논쟁」에서 6회, 1977년 밀레르(J.-A. Miller) 등 라캉주의자들과의 대담 「미셸 푸코의 놀이」에서 4회, 1984년 이전의 어느 시기에 『성의 역사』2권의 서문으로서 작성되었으나 이후 새로이 작성된 현재의 「서문」에 의해 대치되면서 폐기된 「『성의 역사』에 부치는 서문」에서 1회 사용한다. 이처럼 푸코는 자신의 생전에 출판된 저술ㆍ대담을 통해 에피스테메의 개념을 도합 83회 사용하는데, 그 시기는 방금 지적한 것처럼 1960년대 중후반에 집중되어 있다.

 

이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말과 사물』이 발간된 1966년에 53회, 『지식의 고고학』이 작성ㆍ발표된 1967-1969년의 시기에 16회, 이후 1971-1972년 및 1977, 1984년의 각종 대담을 통하여 간헐적으로 총 12회 사용된다.

 

따라서 우리는 푸코에 있어서의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1966년의 『말과 사물』에서 등장과 동시에 그 정점을 맞으며, 비록 그 영향력은 약화되지만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까지 일정한 지위를 유지한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에피스테메 개념의 출현을 대담이 아닌 푸코의 저술로만 한정하자면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후에 보이는 에피스테메 개념의 등장이 푸코가 인터뷰ㆍ대담 등에서 상대편의 질문에 답변하는 형식에 한정되어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사실상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지식의 고고학』 이후 푸코 자신에 의하여 ‘폐기’되었거나, 혹은 - 이러한 표현이 지나치게 강한 표현이라면 - 더 포괄적인 개념에 의해 ‘포섭’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개념의 사용 빈도수가 그 개념의 시대적 중요성과 항상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의 대략적인 중요도를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관점에 입각해 볼 때,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푸코의 사상 내에서 자신만의 일정한 독립적 역사 혹은 계보를 갖고 있으며, 여러 시기에 따르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분명히 밝히는 것은 푸코 에피스테메 연구의 기초가 된다.

 

아래에서는 연대별로 에피스테메 개념이 푸코 사상 내에서 갖는 위상의 변화를 추적해본다. 특히 국내ㆍ국외를 막론하고 푸코 자신의 저술ㆍ대담 등에 나타나는 에피스테메 개념에 대한 1차적 자료들에 입각한 엄밀한 연구가 매우 드문 실정을 감안하여, 가급적 이 개념에 대한 푸코 자신의 직접적 언급들을 중심으로 앞으로의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2. 『말과 사물』의 에피스테메

 

푸코에 따르면, 모든 문화 안에는 “우리가 질서를 부여하는 법칙들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사용 및 질서에 대한 반성 사이에, 질서와 그것의 존재양식들에 관한 벌거벗은 경험(experience nue)”이 존재하며, 『말과 사물』은 “16세기 이래 우리의 것과 같은 한 문화의 중심에” 나타난 바로서의 이러한 경험을 분석하려는 시도이다. 이러한 분석은 분명 “이념사 혹은 과학사(l'histoire des idees ou des sciences)에 속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무엇으로부터 인식과 이론이 가능하게 되었는가, 어떤 질서의 공간(espace d'ordre)에 따라 지식이 구성되었는가, 어떤 역사적 아 프리오리(a priori historique)의 기반 위에서, 어떤 실증성(positivite)의 요소 안에서, 이념들이 나타나고 과학들이 구성되었는가, 경험들이 철학 안에서 반성되고 합리성들이 형성되었으며 또 곧 해체되고 사라질 것인가를 다시금 발견하고자 하는 하나의 연구”이다. 따라서 이러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의 과학이 결국은 스스로를 인식하게 될 어떤 객관성을 향한 진보” 안에서 파악된 인식을 지향하지 않으며, 반대로 “자신의 합리적 가치 혹은 객관적 형식을 스스로 지시하는 모든 기준을 벗어나 고찰되는 인식이 자신의 실증성을 강화하며,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의 역사-자신의 점증하는 완전성의 역사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가능성의 조건들의 역사-를 드러내는 인식론적 장(le champ epistemologique)”, 즉 에피스테메를 기술하고자 한다.

 

푸코에 따르면, “주어진 순간의 하나의 문화에는 모든 지식의 가능 조건들(les conditions de possibilite de tout savoir)을 규정하는 오직 하나의 에피스테메만이 존재한다. 그것은 하나의 이론 안에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을 수도 있고 하나의 실천 안에 암시적으로 투자되어 있을 수도 있다. [...]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지식의 근본적인 필연성들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보다 일반적인 합리성”이 아니며, 오히려, 예를 들어 고전주의 시대의 경우, “이름들의 체계 안에 존재들이 표상될 수 있는 가능성에로 그것들의 인식을 질서지워주는 지식의 근본적인 배치(disposition fondamentale du savoir)”이다. 

 

한편 이와 연관하여 중요한 것이 역사적 아 프리오리(a priori historique)의 개념인데, 이는 “주어진 한 시대에 있어서의 경험 내에서 가능한 지식의 장의 윤곽을 드러내고, 그것에 나타나는 대상들의 존재 양식을 규정하며, 이론적 권력의 일상적 시선을 무장시키며, 그 안에서 우리가 사물들에 대한 하나의 담론이 임을 인식하게 되는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탐구와 분석들은 “모두 일종의 역사적 아 프리오리에 근거해” 있으며, 역으로 “탐구 및 분석의 분산과 독특하고 다양한 계획들을 승인함으로써 자신이 제공한 다양한 의견들 사이의 논쟁을 가능케 한 것” 역시 역사적 아 프리오리이다.

 

한편 이러한 에피스테메 혹은 역사적 아 프리오리의 탐구 과정에서 드러나야 하는 것은 “지식의 공간 안에서 경험적 인식의 다양한 형식들을 탄생시켰던 배열들(configurations)”로서, 이는 전통적 의미의 역사(histoire)보다는 “고고학”(archeologie)의 문제를 구성한다. 

 

푸코에 따르면, 이러한 고고학적 탐구는 16세기 이래 서양 문화(la culture occidentale)의 에피스테메에서 두 번의 거대한 불연속(discontinuites)만을 보여준다. 고전주의 시대를 연 17세기 중반 경의 불연속 및 “우리 근대성”의 문턱을 표시하는 19세기 초의 불연속이 그것으로, 이제 고고학적 수준에서 각 시기는 각기 다음과 같은 자신만의 고유한 에피스테메를 갖게 된다: 르네상스의 유사성(la ressemblance), 고전주의 시대의 표상(la representation), 근대의 역사(l'histoire). 이때 이러한 불연속의 원인은 어떤 “이성이 진보를 이룩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양식 및 그러한 사물을 지식에 분배하는 질서가 심오하게 변화한(altere) 것”이다. 예를 들면, 19세기 초 이후 이러한 인식론적 제 요소들의 배치가 변화함에 따라 탄생한 선험적-경험적 이중체로서의 인간(l'homme comme doublet empirico-transcendantal)은 근대의 특정한 인식론적 배치에 의해 생성된 하나의 ‘균열’(dechirure) 혹은 ‘주름’(pli)에 불과하며, 이는 결국 이러한 결과물 혹은 생산물로서의 근대적 ‘인간’이 또 다른 고고학적 질서상의 변화를 만나게 된다면 이내 사라지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결국 에피스테메의 이해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때 ‘변화한 것’이 - 인식론적 장 혹은 에피스테메 안의 어떤 요소가 아니라 - 인식론적 장 혹은 에피스테메 자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3. 에피스테메와 패러다임 - 푸코와 쿤

 

한편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은 과학사가 쿤(Thomas S. Kuhn, 1922-1996)의 패러다임(paradigm) 개념과 일정한 유사성을 갖고 있음이 지적되어 왔다. 쿤의 패러다임 개념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 1962)는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이 논의된 『말과 사물』(1966)보다 4년 먼저 출간되었다. 이에 따라 『말과 사물』의 출간 이후 학계에서는,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쿤의 저작을 인용했어야 했다는 지적, 혹은 적어도 푸코가 쿤의 패러다임 개념으로부터 일정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존재할 정도였다. 실제로 두 개념 사이의 일정한 유사성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인데, 메르키오르는 쿤의 패러다임과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우선, 유사성이 있다: “첫째, 에피스테메들은, 쿤의 유명한 용어를 사용한다면, 서로 ‘비교 불가능한’(不可共約的, incommensurable) 관계이다. [...] 둘째, 에피스테메는 반대되는 강력한 증거나 논의들의 존재에 의해서 사멸되지 않는다. 오히려 문화적 대격변에 의해서만 변경이 가능하다. 이것은 쿤이 말하는 과학 공동체 내의 ‘형태 전환’(Gestalt switches)과 유사한 것이다.”

 

다음으로 두 개념 사이의 차이점으로는 “첫째,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물리학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 하나의 자연과학(생물학)과 두 개의 사회과학(경제학과 언어학)에 분포되어 있다. 둘째, 그것은 의식적인 학문, 가령 뉴턴이 주장한 것처럼 문제를 구체화하고 문제해결 방법을 확립함으로써 과학적 활동의 모델을 제공하는 그런 학문과는 순리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오히려 푸코의 에피스테메는 의식적인 이론화 작업과 방법론적인 인식의 수준 아래에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쿤의 패러다임은 ‘범례(範例)’들이다. [...] 쿤의 패러다임은 그 정의상(定義上) 푸코의 에피스테메처럼 과학자에게 안 알려진 것일 수가 없다. 이에 비해 푸코의 개념적 그리드(grid, 틀)는 학문의 법칙에 의해 사유(思惟)를 제한받는 학자들의 범위를 늘 벗어난다. 셋째, 쿤의 패러다임은 과학적 집단무의식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에 소속된 것이기 때문에-이것은 쿤 자신이 강조하는 바이다-규칙이 철저히 지배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에피스테메는 규칙이 철저히 지배한다. 에피스테메는 ‘근본적 코드’이며, 인지언어를 발생시키는 생성문법인 것이다.”

 

한편 우리는 이에 덧붙여, 쿤이 저작의 유명한 1970년 제2판에 덧붙인 「후기」(Postface)를 통해 “객관적인 비교의 발판이 마련될 수 있으며, 이 발판에 힘입어 어떤 이론이 다른 이론보다 객관적으로 더 낫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이른바 ‘객관주의적 과학관’으로 이동하고 있는데 반해, 푸코에게는 마지막까지 그러한 경향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차이점을 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객관주의’(objectivism) 혹은 ‘객관성’(objectivity)이라는 용어는 푸코가, 적어도 1950년대 초의 공산당 탈당 이후, 그의 사상 전체를 통하여 일관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개념이다.

 

5. 지식의 고고학과 에피스테메

 

푸코는 1967년 8월에 작성이 완료되었으나 1969년 3월 출간된 『지식의 고고학』에서도 여전히 에피스테메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으나, 그 비중과 의미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일단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에피스테메의 개념이 모두 51회 사용되었던 『말과 사물』에 비해, 『지식의 고고학』에서는 이 용어가 단 13회만 사용되고 있으며, 더욱 중요하게는 에피스테메의 개념이 저작의 제목으로도 사용된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보다 일반적인 관점 하에 포섭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섭’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일단 1966년 『말과 사물』의 출간 이후 1969년의 『지식의 고고학』 출간까지 ‘지식의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겪어온 형성 및 변형의 과정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고고학이라는 용어는 우선 칸트의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칸트는 1793년의 소논문 「형이상학의 진보」에서 “어떤 하나의 사고 형식을 필연적으로 만드는 것의 역사”(l'histoire de ce qui rend necessaire une certaine forme de pensee)를 묘사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고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 칸트 논문의 문장은 다음이다: “철학의 철학적 역사는 그 자체로, 역사적 혹은 경험적으로가 아니라, 합리적으로 즉 아 프리오리하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러한 역사는, 그것이 ‘이성’의 사실들을 확립한다면, 역사적 이야기로부터 그러한 사실들을 빌려오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고고학의 요청에 의해 인간 ‘이성’의 본성으로부터 도출해내기(sie zieht sie aus des Natur des menschlichen Vernunft als philosophische Archaologie)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의 에피스테메를 ‘칸트적 범주(Kategorie) 개념이 거의 역사화 된 형식’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푸코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칸트적 아 프리오리를 역사라는 시간성 ‘안’에 집어넣었다는 점에서 두 개념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1972년에 있었던 이탈리아 철학자 프레티(G. Preti)와의 토론에서 직접적으로 거론되는데, 논의가 시작되자 프레티는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칸트의 범주 개념을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는데, 푸코는 물론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자신의 에피스테메와 칸트의 (역사적) 범주 개념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푸코는 에피스테메의 개념이 ‘역사의 한 시기에 과학의 상이한 영역들 사이에 존재했던 모든 관계들’, ‘과학들 혹은 과학의 다양한 분야들 내의 상이한 담론들 사이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 현상들’ 및 ‘상이한 과학들 사이의 소통 및 관계의 문제’를 지칭하기 위해 도입되었으며, 자신은 이에 입각하여 ‘수많은 상이한 학문들 내에 동시적으로 부과된 하나의 질서를 도입할 필요성’을 관찰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단적으로 푸코는 자신이 칸트와 달리 - 질서라는 범주가 아닌 - 질서의 문제(le probleme)를 다루었음을 분명히 한다. 더욱이, 푸코는 “역사의 과정에서 나타나면서, 그 안에서 상이한 주체들이 위치하게 되는 인식 기능의 - 구조들이라는 말이 부적합하다면 - 규칙들(des regles de fonctionnement de la connaissance)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신”한다는 점, 더욱이 “초험적 수준에서 주체와 생각하는 나 사이의 동일시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신은 분명 “칸트주의자도 데카르트주의자도 아니”라고 확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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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푸코의 고고학 개념을 간략히 정리해 보자. 『말과 사물』 출간 1년 후인 1967년의 한 대담에서 푸코는 이미 자신의 “[분석] 대상은 언어(langage)가 아니라 고문서(archive), 즉 담론들의 축적된 존재(l'existence accumulee des discours)”이며, 자신이 “이해하는 고고학이란 - 하층토(下層土)의 분석(l'analyse des sous-sols)으로서의 - 지질학(geologie) 혹은 - 시작 및 그 이후에 대한 기술(description des commencement et des suites)로서의 - 계보학(genealogie)도 아닌, 고문서라는 양태로 존재하는 담론의 분석(l'analyse du discours dans sa modalite d'archive)”이라고 말한다.

 

다음 해인 1968년 5월의 한 논문에서도 푸코는 자신의 작업이 ‘형식화(formalisation)도 주석학(exegese)도’ 아닌, ‘고문서에 대한 기술’(description de l'archive)로서의 ‘고고학’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때의 ‘고문서’는 - ‘하나의 주어진 시대에서 이후 소멸을 가져오는 다양한 사고들을 건너뛰어 이 시대로부터 보존되고 수집될 수 있었던 텍스트들의 덩어리’가 아니라 - 한정된 사회 및 주어진 시대에서의, 담화가능성(dicibilite), 보존(conservation), 기억(memoire), 재활성화(reactivation) 및 전유(appropriation)의 형식과 한계를 규정짓는 ‘규칙들의 집합’을 의미한다. 이어 푸코는 에피스테메의 특성을 다음처럼 정리한다:

 

(i) 한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 그 시대 지식의 총체 혹은 연구의 일반적 스타일이 아니라 - 다수의 과학적 담론들의 관계들, 차이들, 대립들, 거리들, 편차(l'ecart, les distances, les oppositions, les differences, les relations de ses multiples discours scientifiques)이다. (ii) 에피스테메는 - 어떤 감추어진 거대 이론의 일종이 아니라 - 관계들의 분명 무한히 기술 가능한 열려진 장, 분산의 공간(un espace de dispersion, [...] un champ ouvert et sans doute indefiniment descriptible de relations)이다. (iii) 에피스테메는 - 모든 과학들에 공통적인 어떤 역사의 단면이 아니라 - 특수한 잔류 효과들이 펼치는 하나의 동시적 놀이(un jeu simultane de remanences specifiques)이다. (iv) 에피스테메는 - 어떤 이성의 일반적 단계가 아니라 - 연속적인 간격들의 복합적 관계(un rapport complexe de decalages successifs)이다.

 

다시 말해 에피스테메는 다음처럼 부정적으로 정의될 수도 있다: (i) 에피스테메는 다양한 기호들로부터 ‘시대의 단일한 정신’ 및 ‘그 의식의 일반적 형식’(l'esprit unitaire d'une epoque, la forme generale de sa conscience), 즉 ‘세계관’(Weltanschauung)과 같은 어떤 것을 추출하려 하지 않는다. (ii) 에피스테메는 한 시점에 있어서의 사유의 모든 표현 작용을 지배하는 것으로서 가정되는 어떤 형식적 구조의 출현과 부식(腐蝕)을 기술하지 않는다. 즉 에피스테메는 어떤 절분(節分)된 초월적인 것의 역사(l'histoire d'un transcendantal syncope)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iii) 마지막으로, 에피스테메는, 마치 역사의 배후에서 자신의 그림자 연극을 펼치는 환상적인 위대한 영혼과도 같이, 태어나고 걸음마를 걷고 투쟁하며 사라지는 어떤 세속적 감수성 혹은 사유를 기술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에피스테메는 ‘이성의 진보’(progres de la raison) 혹은 ‘세기의 정신’(esprit d'un siecle)에 관련되는 ‘총체화 하는 역사’(l'histoire totalisante)를 복수의 ‘분화된 분석들’(des analyses differenciees)로 대치하는 것이다. 에피스테메와 관련하여 푸코는 자신이 “담론들의 집합들을 차례차례 연구해왔으며, 그 집합들을 특성 짓고, 그 규칙ㆍ변형ㆍ문턱ㆍ잔상의 놀이들을 규정했으며, 그것들을 자신들 사이에서 구성했고, 관계의 묶음들(des faisceaux des relations)을 기술해왔다”고 말한다. 이를 푸코는 자신은 다원주의자(pluralist)이며 자신이 제기했던 문제는 ‘담론들의 개별화 작용’(l'individualisation des discours)의 문제라고 요약하면서, 존재하는 것은 단일하고도 유일한 것으로 가정되는, 예를 들면, 어떤 생물학 자체(la biologie)가 아니라 오직 다수의 생물학들(les biologies)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제 한 주어진 고고학적 시대 내의 제반 요소들 사이의 배치의 중심축으로서 자리매김 되었던 『말과 사물』의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정의상 다수이자 복수인 것으로 규정된 담론 작용의 효과 안에 포섭되었다. 에피스테메는 담론 작용의 규칙들인 분산(分散, dispersion) 및 변형 작용(變形, transformation) 아래 포섭되었다. 더 이상 구조주의적 함축을 갖는 에피스테메에 대한 정태적 분석이 아니라, 그것의 내적 분산 및 그것들 사이의 역사적 외적 변형에 대한 역동적 분석이 문제이다. 이러한 담론의 분산 및 변형에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분산적 배치 및 변형이 발생시키는 효과, 단적으로 언표들의 집합으로서의 담론이 발생시키는 (정치적) 효과이다. 계보학, 권력-지식론에로의 길은 이미 준비되었다.

 

6. 『지식의 고고학』의 에피스테메

 

이미 살펴본 것처럼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이미 『말과 사물』의 출간 직후부터 적지 않은 수정을 거치기 시작하여 『지식의 고고학』의 집필이 완성되었던 67년 가을에는 이미 상당한 차이를 드러내게 된다. 1969년에 발간된 『지식의 고고학』은 이러한 변형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면서 이후 전개될 에피스테메 개념의 보다 일반적인 개념으로의 ‘포섭’ 및 ‘대치’를 예감케 해준다.

 

우선, 이미 지적한 것처럼 『지식의 고고학』에는 에피스테메라는 용어가 단 13회만 사용되는데, 결론을 제외하고 책의 마지막 장을 이루는 제 4장 ‘고고학적 기술’의 제 5절 및 제 6절에서만 나타난다. 이 부분에서 푸코는 세 가지 수준의 분석을 구분하는데, (i) 회귀적 분석(une analyse recurrentielle)을 가능케 하는 공식화(la formalisation)의 수준에서의 분석, (ii) 과학의 인식론적 과학사(une histoire epistemologique)를 가능케 하는 역사적 분석(l'analyse historique), (iii) 마지막으로 고고학적 과학사(histoire archeologique)를 가능케 하는 인식론화의 문턱(le seuil d'epistemologisation)이 그것이다.

 

물론 에피스테메는 우리의 예상처럼 ‘고고학적 과학사를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문턱’에서 등장한다. 우선 우리가 고고학적 과학사 안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지식을 발생시키는 한에 있어서의, 그리고 이 지식이 과학의 지위와 역할을 취하는 한에 있어서의 담론적 실천들”(les pratiques discursives dans la mesure ou elles donnent lieu a un savoir, et ou ce savoir prend le statut et le role de science)이다. 그런데 이러한 “그 인식론적 형상들 및 과학들의 관계들 안에서 담론적 형성들, 실증성들, 지식을 분석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과학사의 다른 가능한 형식들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에피스테메의 분석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후 푸코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또 한 번 에피스테메가 무엇이 ‘아닌가’를 명백히 하고자 시도한다: “사람들은 이 에피스테메가 모든 인식들에 공통된, 그리고 각각의 인식들에 동일한 규범들 및 요청들을 부과하는 역사의 한 단면, 하나의 세계관, 한 시대의 인간들이 피해갈 수 없는 어떤 사유 구조, 어떤 익명의 손에 의해 결정적으로 씌어진 거대한 법전, 이성의 어떤 일반적 단계와 같은 어떤 것이 아닌지 의심할 것이다.” 단적으로, 에피스테메가 부정하는 것은 당시 서구의 주도적 역사관으로서의 헤겔ㆍ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다. 헤겔ㆍ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이란 ‘이성적 주체’가 세계의 ‘객관적 운동 법칙’으로 이해되는 ‘절대적 (자기) 인식’으로서의 대문자 ‘역사’를 의미한다. 에피스테메는 하나의 절대적 ‘기원’에서 시작하여 ‘이성의 진보’를 거쳐 결국에는 ‘종말’ 혹은 ‘완성’에 이르고 마는 그러한 단선적ㆍ일직선적 역사관을 부정한다.

 

이제 다음으로 푸코는 그렇다면 에피스테메는 무엇인가라는 긍정적 정의를 시도한다: “우리는 에피스테메라는 말을 사실상 (i) 주어진 한 시대에 있어 인식론적 형상들, 과학들, 그리고 사실상 형식화된 체계들을 발생시키는 담론적 실천들을 묶어줄 수 있는 관계들의 집합으로, (ii) 이 담론적 형성들 각각에 있어, 인식론화, 과학성, 형식화에로의 이행들이, 위치지어지고 작동되는 방식으로, (iii) 동시에 나타나거나, 혹은 서로서로를 따르는, 혹은 시간 속에서 어긋나는 이 문턱들의 배분으로, (iv) 인식론적 형상들 혹은 과학들 사이에서 서로 이웃해 있으나 구분되는 담론적 실천들에 속하는 만큼 존재 가능한 측면적 관계들로서 이해한다. 에피스테메란 수많은 다양한 과학들을 관통하며 한 주체, 한 정신 혹은 한 시대의 지배적 통일성을 드러내는 합리성의 한 유형 혹은 인식의 한 형식이 아니다. 에피스테메는, 주어진 하나의 시대에서, 우리가 담론적 규칙성의 수준에서 과학들을 분석할 때 그 과학들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관계들의 집합이다.”

 

이제 푸코는 자신의 저작에서 최종적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피스테메를 다음처럼 규정한다. 이 부분은 좀 길지만 그 논의의 종합적 성격으로 인해 전문이 인용될 가치가 있다:

 

“에피스테메의 기술은 따라서 결코 고갈되지 않는 하나의 장을 연다. 그것은 결코 닫힐 수 없다. 그것의 목적은 한 시대의 모든 인식들이 그에 복종하는 어떤 요청 체계들을 재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의 무한한 장을 주파하는 것이다. 더구나 에피스테메는 어느 날 나타나서 언젠가 마찬가지로 불쑥 사라지게 될 어떤 부동의 형상이 아니다. 에피스테메는 확립되고 파괴되는 나눔들, 어긋남들, 일치들이 만들어 내는 하나의 무한히 유동적인 집합이다. 게다가 과학들, 인식론적 형상들, 실증성들, 담론적 실천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들의 집합으로서의 에피스테메는 주어진 한 순간에 있어서의 담론에 부과되는 구속과 한계의 놀이를 포착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은 인식에 대하여 무지를, 추론에 대하여 상상을, 완료된 경험에 대하여 외양에 대한 충실성을, 꿈에 대하여 추리와 연역을 대립시키는 부정적인 제한이 아니다. 에피스테메는 한 시대에 있어, 그 기술적 제한들, 정신적 습관들, 혹은 전통에 의해 설정된 경계선들을 모두 포함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에피스테메는 담론적 실천들이라는 실증성 안에서 제반 인식론적 형상들 및 과학들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에피스테메의 분석이 비판적 질문(“과학과도 같은 그 무엇인가가 주어져 있다면, 그것의 권리와 정당성은 무엇인가?”)을 다시금 취하는 하나의 방식이 아님을 이해한다. 그것은 이 과학에 있어 주어져 있는 사실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는 조건 아래에서만 과학의 소여(所與)를 받아들이는 하나의 질의 방식이다. 과학적 담론의 수수께끼 안에서, 그것이 다시금 놀이 안으로 집어넣는 것은, 하나의 과학이기 위한 그것의 권리가 아니라, 그러한 과학적 담론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인식의 철학과 갈라서는 지점은, 그것이 이러한 사실을, 초월적 주체 안에서 사실과 권리를 확립할 어떤 시원적 부여의 심급이 아닌, 하나의 역사적 실천 과정에 관계시킨다는 점이다.”

 

이제 에피스테메는 실천의 개념 아래 다시 한 번 완전히 포섭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실천의 개념이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담론적인 것은 아니라는 함축이다. 즉 모든 실천이 담론적 실천인 것은 아니다. 실천은 이후 담론적 실천과 비(非)담론적 실천으로 나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것은 이러한 담론적 형성 및 실천이 금지ㆍ분할ㆍ배제ㆍ진위 등의 제반 대립을 통해 낳게 될 - 니체적 의미의 - 정치적 함축이다.

 

한편 이러한 ‘확장’은 그 분석 대상 및 방법론에 있어서도 이제 과학사 및 고고학의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의 다음 부분에서 이러한 ‘에피스테메 혹은 과학사를 넘어선 몇몇 영역들’의 소묘를 보여준다. 우선, ‘섹슈얼리티’에 대한 고고학적 기술이 있다. 이는, 사후적으로, 즉 오늘 우리의 입장으로 보자면, 이후 『성의 역사』(L'histoire de la sexualite, 1976-1984)에서 탐구될 것이다. 이는 주지하다시피 더 이상 ‘에피스테메’가 아닌 ‘윤리(l'ethique)라 부를 수 있을 어떤 것’에 대한 분석이다. 또 우리는 ‘하나의 회화를 분석하기 위해서 화가의 잠재적인 담론을 재구성할’ 수 있다. 이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하겠지만, 푸코의 갑작스런 죽음에 의해 결국 실제로 행해지지 못한 분석이다. 다만 우리는 마그리트(R. Magritte, 1898-1967)를 분석한 1968년 1월의 논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를 통해 그 가능성의 일단을 읽을 수 있다. 다음으로 정치적 지식에 관해서도 동일한 유형의 분석을 행할 수 있다. 이때의 문제는 ‘혁명적 인간의 모범적이고 일반적인 전기를 추적하고, 그 계획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들 및 전략들 안에 축적되면서 사회 이론을 발생시키고 또 서로서로에 대한 간섭 및 변형을 가져오는 혁명적 지식 및 담론적 실천이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물론 1975년의 저작 『감시와 처벌』(Surveiller et punir) 그리고 권력-지식(pouvoir-savoir)의 이론을 통해 수행된 기획이다.

 

그리고 이러한 탐구들은, 이후 실제로 행해진 연구의 예에서 잘 드러나듯이, 더 이상 고고학의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고고학을 ‘감싸고 넘어가는’ 보다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계보학의 영역에 속한다. 이와 같은 에피스테메(l'episteme) 개념의 실천 개념으로의 ‘포섭’ 과정은 사실상 고고학(l'archeologie) 개념의 계보학으로의 ‘포섭’ 과정과 동시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의 고고학은 사실상 주어진 각 고고학적 시대 혹은 지층의 에피스테메들에 대한 학으로서의 고고학적 인식론(l'epistemologie)이었다. 이제 푸코는 이러한 인식론 자체의 형성, 혹은 새로운 의미로 이해된 (역사적) 인식론화(l'epistemologisation)를 말하며, 그것의 ‘니체적’ 역사화(l'historisation)를 강력히 추진한다. 이를 이를테면 에피스테메의 역사적 형성을 다루는 학, 역사적 인식론화의 학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계보학은 단순한 에피스테메의 역사화 이상의 무엇이다. 그것은 초역사적 시원(l'origine)이 아닌 역사적 발생(la genese)을 탐구하는 학, ‘모든 것을 역사 안에 집어넣는’ 계보학(la genealogie)이다.

 

7. 나가면서

 

아래에서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과정에서 새로이 도입되는 푸코의 몇몇 주요 관련 개념들을 간략히 살펴본다. 실천의 개념을 다루면서 이미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개념의 도입을 통해 푸코는 ‘담론적인’(discursif) 것뿐만 아니라 ‘비(非) 담론적인’(non discursif) 것마저도 포괄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하고자 시도한다.

 

1970년대 초반 이후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푸코의 저술에서 완벽히 사라진다. 에피스테메의 개념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다만 1977년 및 1984년의 인터뷰 등에서 상대 대담자가 에피스테메에 대한 질문을 하면서 푸코가 이에 답하는 방식으로만 두 차례 등장할 뿐이다. 이중 우리의 논의에 중요한 것은 1977년의 대담이다.

 

푸코는 이 대담에서 자신이 『말과 사물』에서 에피스테메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했으나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었다며, 에피스테메를 다음처럼 새롭게 정의한다: “이제 내가 하려는 것은 장치(dispositif)라 불리는 것이 에피스테메보다 훨씬 일반적인 사례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혹은 차라리 에피스테메는 특별히 담론적인 장치입니다. 이것이 에피스테메가 담론적인 동시에 비담론적인 것으로서의 장치와 다른 점이며, 따라서 장치는 훨씬 이질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어서 푸코는 에피스테메를 이제 하나의 장치, 즉 “모든 가능한 언표들 중에서 [...] 과학성의 장 내부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언표들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전략적 장치”로서 새롭게 정의하면서, 장치가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제 푸코는 “다소간에 강제된 혹은 학습된 행동들”, “하나의 사회 안에서, 언표가 아니면서, 강제의 체계로서 기능하는 모든 것”, 단적으로 “비담론적인 모든 사회적인 것”을 제도(institution)라 지칭한다.

 

이렇게 담론적인 것으로서의 에피스테메와 비담론적인 것으로서의 제도는 모두 장치라는 보다 일반적인 개념 안에 포섭된다. 한편 이후 장치의 개념은 적어도 이미 1960년대 초반 이후부터 사용되고 있었지만 점차적으로 더 큰 중요성을 갖게 되는 실천(pratique)의 개념 안에 통합되고, 다시금 푸코의 모든 개념적 방법론을 총괄하는 놀이(jeu) 혹은 진리 놀이들(jeux de verite)이라는 개념 안에 최종적으로 통섭되게 된다.

 

이 놀이 혹은 진리 놀이의 개념은 주체화(subjectivation), 대상화(objectivation), 인식론화(epistemologisation)를 통칭하는 문제화(problematisation)의 개념, 즉 자기 인식(connaissance de soi) 및 자기 배려(souci de soi)를 아우르며 수행되어 자기의 변형(transformation de soi)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행위, 즉 주어진 전제의 안팎에서 사유하는 철학 행위(activite philosophique) 자체와 다른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