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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감성과 추상의 충돌 -고경서, ≪감성어 낚시≫(에세이문학출판부, 2021)-방민

에세이향기 2025. 11. 15. 05:47

 

감성과 추상의 충돌 -고경서, ≪감성어 낚시≫(에세이문학출판부, 2021)-

1. 고경서 작가는 수필가이지만 한때 시를 썼다. 다시 수필로 복귀한 뒤 첫 수필집 ≪감성어 낚시≫를 펴냈다. 감성어感性語를 주 도구로 삼아 시를 쓰다 추상 관념어를 즐겨 쓰는 수필가로 변신하였다. 이 변신은 시와 수필의 차이를 넘어 수필은 과연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묻게 한다. 수필가는 늘 수필의 정체성을 떠올리며 의문을 품고 쓸 때 한결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점이 그녀 수필집 《감성어 낚시》를 주목하는 이유다.

 

2. 수필은 시보다 용량이 크다. 이 때문에 수필은 언어 사용 면에서 시와 달리 다소 헤픈 면이 있다. 어떤 글이든 전달하려는 의미를 압축해 표현하려면 가용성이 큰 추상 개념어를 쓰기 마련이다. 특히 감성보다 사유 세계를 다룰 땐 더욱 그런 경향이 짙다. 사유 폭이 넓을수록 추상 개념어 사용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시에선 이를 보강하고 추상성을 완화하기 위해 은유와 상징으로 압축하고 변용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시와 달리 수필은 은유보다 구체 진술에 의존한 체험 현장성을 살린 상황 묘사에 더욱 깊게 의존한다. 시는 리듬을 살린 이미지 반복 표현을 즐겨 사용하지만, 수필은 리듬을 의식하지 않는 진술로 의미 전달을 중시한다. 결국 시에선 이미지와 율동 강화를 위한 단어(의미) 반복의 병행성parallelism이 미덕이지만 수필에선 산문의 단조로움을 피하려 어휘 반복과 의미 중복을 피하는 선조성lineation이 지향하는 일반 경향이다.

3. 시는 표현 그 자체를 강조한다고 보면 수필은 전달 메시지에 더욱 주력한다고 달리 말할 수도 있다. 시는 내적 화자(시인)의 감정 독백에 기반하므로 외부 독자는 이를 엿듣는 상황에 있으나, 수필은 작가 체험 스토리를 서사화하거나 플롯 구성으로 전달해 독자와 상호 대화하는 방식에 조금 더 익숙하다. 덧붙이자면 시는 시인 화자에게 귀환하는 회귀성이 본질이라면 수필은 화자(작가)로부터 시작해 대화자(독자)와 소통하는 상호성이 특징이다. 시는 한 인간으로서 화자 내면 의식 세계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을 주로 의도한다면 수필은 대화 상대자와 더불어 삶을 공유하려는 소통성을 지향한다. 물론 이런 상대적 도식 장르 이해는 문제가 적지 않다. 시와 수필 이해를 다소 편향시키고, 양자의 교류와 융합을 방해할 수도 있다. 또한 시와 수필은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면성처럼 서로 넘나들 수 있음을 간과한 일면적 견해에 머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특성을 부각해 분별하려는 이런 비교는 때로 날카롭게 그 정체 핵심을 찌를 수 있어 다소 한계점을 인식하면 나름 유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4. 이런 면에서 시와 수필의 상호 경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글이 ≪감성어 낚시≫에 실린 글들이다. 그녀의 글을 읽으면서 바람직한 수필이 가야 할 길은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먼저 단어에 주목해보자. <동백꽃, 그대>는 “바람아!/여기저기 함부로 뛰어내리는 저 꽃들, 어쩌자고 애인아.”로 시구詩句처럼 마감한다. 시처럼 한 단어(“바람아!”)를 한 줄(행)로 수필에서 쓴다. 흔하지 않다. 이 글에서 확인하듯 수필보다 더욱 시적 감성이 두드러지는 글인 <가을도 전쟁처럼 온다>에서는 “심산유곡, 첩첩운해, 호시탐탐, 지형지물, 수수만년, 진두지휘, 만고풍상, 진퇴양난, 선제공격, 혼비백산, 사수작전, 속수무책, 형형색색, 점입가경, 만산홍엽, 발화지점, 파죽지세, 인산인해”에서 보듯 사자성어 노출이 상당하다. 관용적 클리세cliché인 사자성어와 연계된 추상 개념어 사용이 빈번하다. 알다시피 한자 사자성어는 의미 전달 면에서 가성비가 높은 단어이지만 구체적 표현보다 개성적 참신성이 떨어진다. 비유컨대 개성 언어가 사람 질병에선 느릿한 자연치유라면 관용어는 제약사 처방 약처럼 직방 효력은 있지만, 그 속도만큼 부작용이란 대가를 치르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이런 약점은 <홍옥은 시다>, <백 허그>, <바닥론(論)>에서도 이어진다. 외부대상을 지향하는 시선에는 추상 사자성어, 현란한 개념어를 애용하는데 이것은 진술 대상 사이에서 상호 이미지 간의 격차를 불러오게 되어 시만큼 상상 폭이 넓지 않다. 왜냐하면 수필에서 산문은 시와 달리 더욱 촘촘한 것(설명 진술)이며 체험 스토리에 따라 외향 시선이 더 빈번하기 때문이다. 체험적 직핍한 삶에 바탕을 굳건히 두지 않는 행동적 경험이 미약한(시적 감성 충만) 상태로는 수필 독자와 대화 소통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이럴 때 필지하는 것은 수필가 화자 나름의 자기 성찰적 시선이 부재하거나 증발 또는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동백꽃, 그대>는 대구對句를 사용하여 정반합 논리를 채용해 글을 구성하지만, 작가(화자)만의 행위형 체험 스토리를 찾기 어렵다. <바닥론>은 작가 내면을 도외시하고 외부 세계를 지향하는 시선으로만 본다면 차이성 속의 유사성으로 은유적 시선으로 볼 수도 있지만 내면 상상에서 출발해 추정까지 이어서 결합하다 보니 결국 현실성이 어디론가 휘발해 버린 느낌이 짙다. 결국 이런 글에선 추상 개념어만 시종 부유하며 주제 의식(전달 메시지)이 불명不明한 결과로 드러날 가능성이 클 뿐이다.

5. 보통 수필에서 작가 화자와 서술 대상 사이 거리가 가까울 때는 개인 서정과 주관이 두드러지고, 화자와 그 거리가 균형을 이루면 주객 합일의 조화를 얻을 수 있다. <어느 제왕의 독백>은 시적 상상력으로 쓴 수필이자 시적 산문이며 실험성이 두드러진 글이다. <힘>은 소싸움 관찰기인데, 풍경화가처럼 관람한 스케치로 작가가 표현하여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도통 찾아내기 힘들다. 독자에게는 잘 그린 풍경화식 글이지만, 작가 관찰자 시선으로 타자를 향한 외침은 있으나 작가 자아는 보이지 않는다. 즉 내 말(화자/작가 성찰)은 없고 남 말(독자/교시성)만 하는데, <농협 창고>나 <눈치 속에 앵무가 산다>에서는 타인을 의식해 사회적인 의미를 찾게 한다. 이것은 사태를 해설하고 관찰하여 구성한 글로써 전지적 시점의 글이라 작가가 독자보다 우월한 위치에서 진술하게 하는 소설적 기법을 차용한 것이다. 돌려 말하면, ‘나는 다 알고 있어’라는 방식으로 쓴 것인 셈. 문제는 좋은 수필은 작중 화자가 독자는 물론이고 제재 대상과도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글이란 점이다. <까치 호랑이>는 삶의 일상 체험 근거를 찾기 어려운 상상만으로 쓴 글이고, <스펑나무야, 더 누르면 아파!>는 작가 개인 여행 관찰기이며, <귀소(歸巢)>는 조립형 글로서 주관적 이미지를 나열하여 구성하다 보니 역시 체험 스토리는 부재한다. <파적도(破寂圖)>에 이르면 설교성 메시지는 있는데 독자와 시도하려는 상호 소통은 부족한 작가의 일방성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글들은 시처럼 작가 주관성이 두드러져 소통성 객관 시각을 만나보기 쉽지 않다. 달리 말하자면 시적 개인 주관성에 치우친 글이 되어 수필다운 상호 객관성을 찾기 쉽지 않다. 이런 결과로 독자와 소통하기 어려운 작가만의 독백으로 읽힐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보인다.

6. 시는 일방적 독백이며 독자는 몰래 다가가 엿듣는 것이라 할 수 있다면, 수필은 쌍방적 대화이고 독자를 그 자리에 함께 불러들이는 양식이다. 시를 수필 쓰기 이전에 썼던 고 작가가 제재 대상을 시적詩的 바라보기에 익숙한 방식으로 쓴 수필을 훑어보았다. 수필은 시와 달리 자가 유희遊戲식 말놀이pun만으로 쓰는 것은 적합지 않다. 수필에선 작가 삶에 바탕을 둔 체험 인자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에게 작가만의 진실하고 직핍한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통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이다. 그곳엔 나만 있는 게 아니라 너도 함께 있는 우리의 대화 자리가 수필의 바람직한 정체성이다. 마치 늑대에게 호리병 음식을 내놓는 두루미가 되어선 곤란하다는 말이다. 고경서의 ≪감성어 낚시≫는 시적 진술 방식이 수필을 만났을 때 어떤 변주를 보여주는지 확인할 수 있다. 수필이 가야 할 길은 시를 모방하거나 유사한 방식이 아니라 수필만의 길이란 걸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