둑방 옷 수선집/조미정
골목은 피고 진다. 사람들 발자국 따라 번화해진 상점가를 기웃거리다가 오래된 가게 앞에 멈춰 선다. 강둑이 마을 따라 십 리 넘게 펼쳐져 있어 이름 붙여진 ‘둑방 옷 수선집’.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다란 틈바구니에 저 혼자 키 낮은 슬레이트 지붕을 얹고 있다.
한눈에 보기에도 헙수룩하다. 알루미늄 새시 문에 광고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었다. 덜컹거리는 미닫이를 열면 말발굽 소리가 달려 나온다. 한쪽 벽에 무지개색 실패들이 큐빅처럼 박여 있고, 낡은 재봉틀은 작업대 위에서 드르륵드르륵 땀을 박는다. 맞은편 선반은 난파선이다. 여름 원피스부터 솜 잠바, 스팽글 반짝이는 무대복과 목 늘어난 스웨터, 물 빠진 작업복과 찢어진 청바지 등 각양각색의 헌 옷가지들이 좌초되어 이물부터 가라앉는다.
멀쩡한 옷이 드물다. 한때는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며 구슬땀을 흘렸고, 생의 포탄이 빗발칠 때는 죽을 각오로 동부전선을 넘었다. 겨울바람이 파고들면 턱밑까지 옷깃을 여몄고, 한여름 태양이 이글거리면 숱 많은 그늘을 드리웠다. 희로애락의 순간에도 함께 울고 웃었다. 그런데도 그럴듯한 훈장이나 명패가 없다. 그저 바닥에 뒹구는 천 쪼가리와 실보무라지만 내려다보는 아웃사이더일 뿐이다.
간혹 새 옷이 섞여 있다고 해도 구차하기는 매한가지다. 분에 넘치도록 크거나 너무 작다. 디자인이 마음에 들면 품이 문제이고, 허리가 맞으면 기장이 짧거나 길다. 숨을 참고 배를 집어넣어 봐도, 굽 높은 구두로 키를 한 뼘 늘려봐도 여전히 남의 걸 빌려 입은 듯 어정쩡하다. 반품 할 여지라도 남아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상표가 떨어져 나갔을 때는 낭패다. 되돌릴 기회가 사라져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한 채 장롱 속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다.
롤러코스터를 탄 인생들 사이에 내가 맡긴 벨벳 원피스가 쭈그리고 앉았다. 가슴에 장미꽃 모양의 금색 단추가 달렸으나 광택 잃은 지 오래다. 보들보들하던 융모는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납작 짓눌렀다. 소맷부리와 깃에 비단이 덧대어져 명품 못지않았는데 어쩌다 수선집 구석에 자리 잡았을까?
처음 만났을 때 귀티가 줄줄 흘렀다. 먼지가 잘 들러붙는 단점 정도는 개의치 않았다. 빛의 각도에 따라 피부가 반지르르 윤이 났고, 움직일 때마다 맵시가 몸의 굴곡을 따라 찰랑거렸다. 천까지 도톰해 겨울 정장으로도 안성맞춤이라는 칭찬에 멋쩍게 얼굴도 붉혔다. 어느 순간 뒷전으로 밀려났다. 아내로서,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딸로서 소임을 다하는 동안 늘어난 티셔츠와 무릎 나온 바지가 더 익숙해져 버린 탓이었다.
장롱 구석은 단절의 공간이다. 손길 닿지 않는 사이 꾸깃꾸깃해진 주름위로 퇴색한 시간이 내려앉는다. 그러다가 까마득하게 잊혀 버린다. 지난날 영화를 뒤로한 채 소멸하는 과정인지도 몰랐다.
모처럼 동기 모임에 참석하던 날이었다. 부랴부랴 장롱을 뒤졌으나 역부족이었다. 솔기가 터질 듯했다. 디자인마저 한참 유행에 뒤떨어져 앞에 나서기 부끄러웠다. 여전히 현역인 친구들이 어깨를 으쓱거릴 때는 절로 고개가 움츠러들었다. 당당하게 가슴 펴지 못할 때마다 경력이 단절된 이력서를 들고 발품을 팔았다. 하지만 다시 설 자리는 매번 마땅치 않았다.
또 한 번 퇴짜맞고도 내색 못하던 어느 날이었다.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렸다. 스팀다리미로 다림질하다 말고 내다보니 근처 대학가에서 축제 중이었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 폭죽이 팡팡 터지며 검은 하늘을 오색찬란하게 물들였다. 절로 탄성을 자아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정신이 퍼뜩 들었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원피스가 뜨거운 다리미 열기에 쪼그라들어 커다란 세모꼴로 낙인찍혀버린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있을까?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저마다 크고 작은 상처 하나쯤 품고 산다. 타인과 비교하여 열등감에 빠지거나, 자격지심으로 비하하거나, 미움과 분노로 자기 가슴에 비수를 꽂거나, 시기와 질투로 가능성마저 좀먹으며 남몰래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다고 상처 하나 때문에 전부를 버릴 수는 없다. 막막할 때 수선집만 한 해결사가 없을 듯하다.
또각또각, 뚜벅뚜벅, 겅중겅중, 살금살금. 상처투성이 발자국들이 옷 수선집을 찾아 나선다. 건드리기만 해도 툭 벌어지는 옷섶에 지퍼를 새로 단다. 쏠리는 품에는 시접을 덧대고, 상처가 너무 깊을 때는 과감하게 잘라낸다. 운 좋아 조끼나 복고풍 치마로 거듭날 수 있도록 달달거리는 재봉틀에 몸을 맡긴다.
나는 먼지 쌓였던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오래전에 손 놓았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할 참이다. 당장은 문장 한 줄 꺼내기 힘들겠지만 조급하지 않을 작정이다. 다른 사람 흉내를 내기보다 가장 나 다운 낱말들로 원고지 빈칸을 채워 나간다. 더뎌도 한 걸음씩 떼다 보면 어느덧 글 한 편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족집게 처방에 어깨가 탁 펴진다.
옷 수선집은 병원이다. 어딘가 손봐야 할 부분이 있으면 누구든 간에 활짝 문을 연다. 새 옷이든 헌 옷이든 가리지 않는다. 물론 수선한 옷은 새로 산 것보다 못하다. 구질구질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마터면 버려질 뻔했던 생을 덤으로 얻은 후 인생 2막을 연다. 턱도 없다고 손가락질해도 괘념치 않는다. 내 몸에 꼭 맞게 수선된 옷을 입고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둑방 옷 수선집은 간절하게 두 손 모은 기도이다. 넘치게 비 온 날 홍수를 막아준다. 가족이나 친구 같기도 하다. 어깨를 내주면서도 묻거나 따지지 않는다. 지금 밑줄 긋고 있는 책 한 권일 수도 있다. 삶의 보풀이 생길 때 나도 누군가의 수선집이 되고 싶다. 집으로 향하는 등 뒤로 재봉틀이 큰소리로 드르륵거린다. 상처를 깁듯, 어깨를 토닥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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