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다/가민경
무의식적으로 손이 목걸이로 향했다. 열여덟 살 생일에 처음 목에 건 후로 한 번도 빼놓은 적이 없었다. 자그마한 금색 십자가를 손끝으로 어루만지다 보면 생각은 어느새 외할아버지에게로 흘러간다. 외손녀에게 늘 무언가를 주고 싶어 했던, 그래서 깊은 염원을 담아 이 목걸이를 선물했을 외할아버지의 단단한 목소리가 자꾸만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생전 마지막 모습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사람의 인상을 좌지우지한다는 코가 외할아버지에게는 없었다. 언뜻 보면 살아있는 해골 같기도 하고, 추상화 속 인물처럼 얼굴의 중심이 텅 비어 있었다. 피부암이었다. 피부가 괴사한 자리에는 늘 하얀 거즈가 덮여 있었다. 소독약을 바르기 위해 거즈를 걷어낼 때면 적나라하게 드러난 구멍에 숨이 턱 막히곤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외할아버지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멋지지?”
나는 어정쩡하게 웃었다. 솔직하게 아니라고 말하면 마음 상하실까 봐 걱정되었고, 그렇다고 맞다 하기엔 결코 멋진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서 늘 “몰라요”라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은근슬쩍 자리를 피하곤 했다.
처음부터 그렇게 심각한 모습은 아니었다. 시작은 코에 난 커다란 점 하나였다. 암의 뿌리가 생각보다 넓게 퍼져 있었던지 수술 부위가 점점 넓어지더니 결국 코 전체를 들어내고야 말았다.
코가 없는 얼굴은 지나치게 납작해서 도리어 움푹 파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볼 때마다 낯설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던지 밖에 나가면 시선이 따라붙었다. 곁눈질로 힐끔거리는 사람도 있고, 때로는 대놓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도 외할아버지는 손을 들어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깊은 흉을 지닌 사람이 어찌 저리도 당당할 수 있을까. 의문이 계속해서 나를 따라다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외할아버지는 말수가 많다거나 표현이 다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침묵이 더 자연스러웠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내가 질문하면 답해주는 정도의 짤막한 대화만 오가곤 했다. 초등학생이 되어 처음 맞은 명절날, 안방에서 단둘이 씨름 경기를 볼 때도 그랬다. 둘 다 경기에 몰두하느라 방안은 조용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옆에서 나직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멋지다!”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온몸에 묻은 모래알이 얼마나 반짝거리던지, 땀에 젖은 채 웃고 있는 그 선수가 무척 멋있어 보였다. 곧이어 다른 체급 경기가 시작되었다. 샅바를 움켜쥔 선수들이 한참이나 힘을 겨루다가 결국 한 선수가 뒤로 넘어갔다. 패배한 선수는 얼굴 가득 아쉬움을 담은 채로 감독에게 가서 폭 안겼다. 그때 옆에서 또다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멋지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졌는데 뭐가 멋져요?”
외할아버지는 호두 두 알을 굴리던 손을 멈추고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어떤 질문이든 기꺼이 대답해 주겠다는 애정 어린 눈빛으로 말이다.
“이기고 지는 건 한순간일 뿐이야. 저 땀을 좀 봐라. 얼마나 멋지냐.”
분명 다정한 말투였는데도 왠지 모르게 그 말이 날카롭게 내 가슴에 박혔다. 나는 그날 멋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로 했다.
떠올려 보면 외할아버지는 옹이가 크게 난 가로수를 보고도, 식사 후에 먹은 계피 사탕이 달큼했을 때도 늘 멋지다고 말했다. 곁에 있다 보면 별것 아닌 일도 괜히 의미 있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어렸던 나는 할아버지의 삶이 그토록 비정했을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한때 모든 것을 가진 듯 자신만만한 청년이었다고 했다. 사대문 안 유복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였다. 절대음감과 묵직한 저음은 할아버지의 자신감이었고, 오뚝한 콧대는 할아버지를 돋보이게 하는 자랑거리였다. 성악가가 되겠다며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안은 일본인 아내를 맞으라 했다. 아마도 식민지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른들이 택한 방법이었을 터였다. 할아버지는 집안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그 대가로 집 안에 더 이상 발을 들일 수 없었다. 무대도, 관객도, 후원도 한순간에 사라졌다. 독립운동 자금을 몰래 나르는 운송책이 되었다가 6‧25가 터지고는 손에 총을 들었다. 휴전 후에 늦게라도 꽃이 피는 줄 알았지만, 암으로 부인을 떠나보내고 어린 외동딸과 단둘이 세상에 남겨졌다. 생활은 팍팍했다.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는 것만으로는 가난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다. 부인을 잃은 지 오래지 않아 본인도 대장암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말년에 다시 찾아온 피부암은 고약하게도 할아버지의 얼굴을 완전히 바꿔놓고야 말았다.
멋지다. 이 말이 과연 단순한 감탄사였을까. 어쩌면 그 세 글자는 거친 인생 가운데 자신을 다독이는 마법의 언어이자, 제멋대로 흘러가는 삶을 품어 안으려는 처절한 다짐이었을지 모른다. 노래할 무대, 사랑하는 아내, 건강과 외모까지 잃고도 끝끝내 살아갈 의미를 찾아보려 했던 외할아버지의 뜨거운 한마디가 고요하게 메아리친다.
십자가를 손끝으로 굴려본다. 오랜 시간의 체온이 스며있다. 사람들은 흔히 많은 것을 얻을수록 삶을 제대로 소유하게 된다고 믿지만, 하얀 거즈보다 강렬하게 남은 외할아버지의 긍정어가 떠오를 때면 나는 다른 생각에 이르게 된다. 몹쓸 운명이 할퀸 흉조차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라고…. 외할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입버릇처럼 읊조리던 그 말이.
삶이 아무리 거칠게 흔들어도 끝내 잃지 않았던 한마디. 그렇다. 삶은 멋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한혜경 '특별한 생을 기억하는 방식'-가민경 '멋지다'-수필미학 2025년 겨울호
많은 것을 잃고도 “끝끝내 살아갈 의미를 찾아보려” 한 자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준다. 현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용기에 마음이 흔들리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성찰하면서 비정한 현실과 삶의 의미를 응시하게 만든다.
가민경의 '멋지다'는 이러한 생을 들려주면서,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나직하지만 분명하게 밝힌 글이다. 주인공은 작가의 외할아버지로, 유복한 집안의 장남이었고 “절대음감과 묵직한 저음”, “오뚝한 콧대”, 성악가가 되기 위한 일본 유학 등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인물이다.
그러나 일본인 아내를 맞으라는 집안의 뜻을 따르지 않아 그동안 누려온 모든 것을 박탈당한다. 이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든 가운데 어린 딸을 남긴 채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뜨고 본인도 대장암 선고를 받는다. 말년에는 피부암으로 코 전체를 들어내기까지 한다.
이처럼 혹독한 상황 속에서도 할아버지가 자주 한 말은 “멋지다”였다. 이 말은 보통 ‘성공’이나 ‘승리’란 단어에 어울리는 말이지만, 그는 자신만의 언어 세계를 구축한다. 패배한 선수도 멋지며, “옹이가 크게 난 가로수”나 계피 사탕의 달큼함도 멋지다. 심지어 코가 없어 “살아있는 해골” 같기도 한 얼굴도 “멋지지?”하고 말한다.
곧 결과와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값지게 여기며, 각 존재의 고유함에 경의를 표하는 것이며, 외형과 무관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세계이다. 코가 사라진 얼굴이라 해도 신념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온 삶이므로 멋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 “멋지다”란 말은 정보 전달의 언어를 넘어서, 삶을 바라보는 시선의 표상이며 모든 존재의 본질을 투시하는 말이 된다. ‘흉’이 ‘멋’으로 승화하는 새로운 시계(視界)의 언어이다.
작가는 할아버지와 함께한 기억의 조각을 이어 붙여 할아버지의 삶을 재구성한 끝에 자신의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이기고 지는 건 한순간일 뿐이야. 저 땀을 좀 봐라. 얼마나 멋지냐.” 할아버지의 말에 “멋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기로” 한 초등학생은 어른이 되어 그 말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이 말이 단순한 감탄사가 아니라 “거친 인생 가운데 자신을 다독이는 마법의 언어이자, 제멋대로 흘러가는 삶을 품어 안으려는 처절한 다짐”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는 할아버지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고 그 철학에 공감하므로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다. 작가는 이에서 더 나아가 통념과 결별하면서 할아버지의 세계에 한 걸음 들어선다. 많은 것을 얻을수록 삶을 제대로 소유한다고 믿는 통념과 “다른 생각”, 곧 “몹쓸 운명이 할퀸 흉조차 끌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삶은 온전히 내 것이 되는 거”라는 생각에 이르는 것이다.
이처럼 이 글은 많은 것을 잃었을지 모르나 가장 중요한 것을 소유하고 있었던 할아버지의 삶을 “특별”한 것으로 재현함으로써, 재현의 윤리를 따뜻하게 완성하고 있다.
◆ 한혜경 주요 약력
△서울 출생 △명지전문대 명예교수, 계간수필 편집주간 △<계간수필> 수필 등단(1998) △<한국문학평론> 평론 등단(2002) △평론집 <상상의 지도> <시선의 각도> △글쓰기 이론서 <말 글 삶> <생각 글 말-내 안의 가능성을 보다>△수필집 <아주 오랫동안> <시간의 걸음> <이상한 곳에서 행복을 만나다>(4인 공저) 등 △제12회 윤오영수필문학상(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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