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수선집 / 박일만
골목은 늘 객관적이다
희망을 켜 놓은 듯 백열등 밝혀 둔 좁은 공간
의족을 수선실 바깥으로 길게 걸쳐놓았다
바닥까지 검정물 든 손을 탁,탁 치며, 이제 그만 해야죠
그만둬야죠,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초로의 사내
십수년인 듯 굵어진 손마디가 고집스럽다
피곤한 구두를 벗어 수선을 맡기는 저녁 무렵
내 구두는 이제 항해를 끝낸 폐선처럼 어둡다
좀처럼 광택이 살아나지 못할 거죽으로 찌그러져,
능동적이지 못한 내 성품을 비웃듯 손 빠른 사내
해진 일상을 기우고 봉긋한 광택을 생산한다
허리춤을 꾸욱 찌르고 견고한 실로 혈관을 심고
벌겋게 온몸을 지지고 닦아 환하게 빛을 복사해 낸다
속내를 보이진 않지만 손에 친친 광목을 감으며 말하겠지
자, 다시 한번 가면을 쓰고 살아 보세요
그래도 세상은 적당히 가리면 살만 하잖아요
구석에 앉아 왁스에 취해 밖을 바라본다
이 거리에서 오래오래 부대끼며 살아온 나
그만 둬야지, 이제 정말 쉬어야지 하면서도
끝내 꽃피우고 싶은 무화과나무 척박한 거리 모퉁이
천천히 아주 객관적으로 어두워 간다
이번 시는 현실적인 색채가 강한 서정시로 볼 수 있다. 원래 이 시는 연 구별이 없는 시지만,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 개 연으로 구별해 보았다.
흔히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다’라는 말처럼 몇몇 신조어의 등장이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다. 시의 강한 매력은 첫 번째 행에 있다. “골목은 늘 객관적이다”라는 부분은 정말 신선하다. 말인즉 부근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환경적으로 같은 조건이라는 말이다. 다만, 등장인물이 구두 수선공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주변 여건이 다소 열악한 것 같은 선입견을 품게 한다.
특히, 주인공은 의족(義足)을 사용하는 장애인으로 “그만둬야죠,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초로의 사내”로 소개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은퇴기가 지났지만, 늦도록 일을 하고 있다. 당연히 생활고 때문이리라. 이 부분까지를 첫 번째 연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번째 연은 서정적 자아의 등장과 함께 주인공의 인물상을 묘사하고 있다. 샐러리맨인 나는 주인공에게 구두 수선을 의뢰한다. 이 과정에서 “자, 다시 한번 가면을 쓰고 살아 보세요 / 그래도 세상은 적당히 가리면 살 만하잖아요”라고 하면서 구두를 통해 주인공의 직업의식과 함께 처세 방법을 묘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세 번째 연에서는 시의 첫 행에서 “골목은 늘 객관적이다”라는 말의 반복 형식인 ‘천천히 아주 객관적으로 어두워 간다’라는 말로 짝을 이루게 한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삶의 양식도 비슷하다. ‘노동을 하고 싶다’, ‘쉬고 싶다’의 기준은 개성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대동소이할 것이다. 다만, 생계가 걸려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충분히 은퇴 시기가 지났음에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고된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것을 문제로 삼고 있다. 그러니까, 시인은 ‘길모퉁이에 있는 구두 수선집’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히 어떤 삶의 현장을 묘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앞서 언급했듯이 객관적이어야 할 이 사회가 어떤 사람에게만 힘든 노동을 계속 연장해야 하는 구조를 밝히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이창하 시인)
출처 : 경남도민신문(http://www.gndom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