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독대 / 심은섭
한평 남짓한 저곳은 한 여인의 성황당이며, 신전이다
제단 위엔 한 자루의 촛불과 정화수 한 그릇 떠 놓고
새벽마다 허공에 박아 놓은 광두정에
나의 사주를 걸어 놓고 빈다
생의 탄식으로 내 몸이 가물어질 때면 기우제을 지냈고,
광야에서 내가 철없는 이념의 푯말로 서 있을 때
찬송가를 울음으로 대신했다
내 어깨 위에 까마귀가 내려앉아 짖어대거나
두께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이 내 손금을 기웃거릴 때
어설픈 신무神舞를 추기도 했다
폐광 속의 어둠을 닮아 내가 새벽을 잃어버린 날에도
운명의 발 문수를 맡기고 얻어온 태양을
내 정신의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신전이 사라지고 제사장도 어디론가 사라진 지금,
그 제단 위엔 그의 푸른 기억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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