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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낯설게 하기/시조

에세이향기 2025. 8. 9. 14:29
낯설게 하기(1)


낯설게 하기란 어떤 사물을 지금까지 인식해온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의미이지 난해한 시조를 지어 독자와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라는 의미는 아니다. 즉 ‘소통의 지연을 위한 시조의 미학적 장치’를 하면 더욱 좋겠지만 소통의 지연이 심한 시조가 꼭 잘 된 시조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낯설게 하기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어떤 사물에 대한 고정관념에 우리의 사고가 묶여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고는 자기가 체험한 것, 그것이 직접체험이든 간접체험이든 간에 체험한 것만을 팩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고의 틀을 벗어나려면 상상의 날개를 달아야 한다. 즉 체험+상상이 되어야 낯설게 된다.
낯설게 하기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 수는 있으나 낯설게 하기만이 현대시조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우선 시어를 참신하게 새로 구성하는 것은 바람직 한 일이나 독자와의 소통을 전제로 하면 이 낯설게 하기가 반드시 바람직한 방향의 제시는 아니라고 본다. 물 흐르듯 바람이 불 듯 자연스럽게 시조의 언어를 소통의 벽을 만들지 않고 편안하며 그 통로가 막히지 않도록 할 수 있다. 시조에서는 낯설게 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으로, 화자가 하고 싶은 말(메시지)을 던지면 된다. 다시 말하면 쉬운 언어로 독자와의 소통 통로를 열라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 ‘쉬운 언어’라 함은 일상어가 아닌 비유와 상징으로 된 언어를 사용하라는 의미이다. 시인에게 있어 모든 사물은 언어이다. 사물(시적 대상)을 내가 보는 관점에서 외형적 특성을 설명하지 않고 그 사물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묵언의 말을 글자라는 변용의 과정을 거쳐 표현하는 것이 사물의 언어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국화꽃을 보고 서정주 시인은 ‘소쩍새가 밤새 울었나보다.’라고 소쩍새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국화가 꽃을 피우기까지의 고통과 그 고통 속에 담겨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였다고 할 수 있다.
낯설게 하기는 형상화 과정에서 그려진 이미지 또는 상징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와 관련된 문제이다. 즉 형상화 한 것을 어떤 방식으로 변용할 것인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어떤 사물(시적 대상물)을 보고 감흥이 일어나 글을 쓸 때 비유를 하지 않으면 시조로서 생명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사실대로 묘사하는 것은 누구나 쉽사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비유가 이미 과거에 많은 시인들이 사용한 일상화된 시어들이라면 독자의 흥미를 끌기가 어려울 것이다. 시인들은 가슴 속에 쉬지 않고 분출되는 용암이 끓고 있어야 한다. 즉 엘랑비탈[élan vital]이 일어나고 있어야 한다.
엘랑비탈의 사전적 의미는 “생명 그 자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항상 새로운 자기를 형성해 가는 창조적인 진화”이다. 베르그송은 이것이 곧 생명의 본질이라고 하였다. 시조시인에게는 시조를 창작함에 있어 늘 내용의 창조적인 진화를 해야 한다. 독자들로부터 이런 요구를 받고 있는 것이다.


슈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를 하기 위해서
첫째 순수하게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찾아낼 것
둘째 비일상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
셋째 현미경적 시각으로 관찰할 것
넷째 인습적 인과관계를 벗어나 역전적인 발견을 할 것
다섯째 낯선 대상과 병치함으로써 낯선 인상을 줄 것 등등을 주문하고 있다.


형식론자들이 말하는 형식의 파괴는 형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지만 시조에 있어서는 틀은 놔두고 내용을 새롭게 뜯어 고치는 것이다. 즉 상투적인 표현을 하지 않음으로서 낯설게 하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시조시인들은 낯설게 하기라는 명분을 내세워 형식의 파괴(음수율)는 물론 이상한 행갈이, 이상한 은어나 속어뿐 아니라 알 수 없는 기호의 도입은 물론 외래어와 한글까지 뒤섞어 혼혈아로 만드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런 행동패턴의 변화는 낯설게 하기가 아니며 진정한 변화라고 할 수 없다. 이런 형식의 파괴는 자유시에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시조에 있어서는 내용의 파괴 즉 비유의 파괴와 언어 조립으로 낯설게 하기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비유의 파괴란 과겅의 통상적인 속담이나 격언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새로운 사고의 비유를 말한다.
고시조에서 낯설게 하기를 한 작품을 보면 당연 황진이의 시조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에는 상당히 낯선 표현으로 지금도 이처럼 낯설게 하기란 쉽지 않은 표현이다.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을 한허리 둘러내어
춘풍 니블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른 님 오신날 밤이어 든 구뷔구뷔 펴리라
-황진이-


이 시조를 보면 어려운 단어는 하나도 없다 그러나 말하는 기법은 낯설다.
밤을 한허리 둘러 낸다든지, 춘풍 니블, 서리서리 구뷔구뷔 등은 당시에 엄청난 낯설게 한 표현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예문1)
심회/김광수


적요의 한나절을 허랑히 다 보내고
마음이 허전하여 무작정 걷는다만
아쉬움 웃자란 길섶 뉘우침만 무성하다.


푸른 날빛 스치고 간 생애의 비탈에는
구름을 휘어잡은 백장미 꽃 대궁이
미망에 빠진 영혼을 추스르며 서 있고.


-이 시조 역시 어려운 낱말은 없으면서도 표현 방법이 통상적인 기법이 아니다.
낯설게 하기의 표현을 보면 -웃자란 길섶, -푸른 날빛, -생의 비탈, -구름을 휘어잡은, -백장미 꽃 대궁, 무성한 뉘우침, 미망에 빠진 영혼 등이다.


한 마디로 시에서의 낯설게 하기란 사물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프랑스 철하자 바슐라르는 “시는 순간의 형이상학이다. 우주의 비전과 영혼의 비밀과 존재와 사물을 동시에 제공해야한다.”고 말한다.


예문2)
오동꽃을 보며/박기섭


이승의 더딘 봄을 초록에 멱감으며
오마지 않은 이를 기다려 본 이는 알지
나 예서 오동꽃까지는 나절가웃 길임을


윗녘 윗녘 파일등은 하마 다 내렸는데
햇전구 갈아 끼워 불 켜든 저 오동꽃
빗장도 아니 지른 채 재넘이길 열어놨네


하현의 낮달로나 나 여기 떠 있거니
오동꽃 이운 날은 먼데 산 뻐꾸기도
헤식은 숭늉 그릇에 피를 쏟듯 울던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