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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보이지 않는 얼굴/ 김채영

에세이향기 2025. 10. 20. 09:56

 보이지 않는 얼굴/ 김채영

 

   뒷모습에 나는 애착이 많은 편이다. 친구하고 사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헤어져도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훔쳐보는 버릇이 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항상 떠나고 나만 남아있는 듯한 외로움이 엄습해온다.

뒷모습을 주로 작품에 다룬 사람이 있다. 독일의 화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약동하는 찬란한 자연의 변화보다 뒤틀리고 황폐한 풍경을 소재로 삼았고 , 아름다운 얼굴 대신 쓸쓸한 뒷모습을 주로 화폭에 담아냈다. ‘창가의 여인’ ‘달을 보는 두 남자’ 안개 바다의 방랑자` ‘교회가 있는 풍경’ 등 다수의 그림 속에 등장인물은 한결같이 등을 돌린 채 먼 곳을 바라보는 모습뿐이다. 뒷모습을 지향하는 것은 모종의 결핍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뒷모습에는 치장이나 꾸밈이 없는 진실이 그대로 배어난다. 평생을 따라다니던 우울증과 빈곤으로 삶도 작품 세계처럼 대체적으로 암울했던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그는 그림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일상과 각도가 다른 쪽으로 돌려놓고 어떤 꿈을 꾸었을까.

    어린 날 한동안 외할머니 손에서 자라났다. 무논에 황새가 내려앉고 종일 베틀 밟는 소리가 끊이지 않던 마을이었다. 아버지의 요양을 위해 몇 해 우리는 산골마을에서 살았다. 외할머니는 아버지가 병석에 계실 때부터 잔손이 많이 갈 나이의 우리 남매들을 살뜰하게 보살펴주셨다. 아버지가 세상을 등진 뒤나 자신의 생을 마감하실 때까지 우리의 곁에 의연하게 버티고 계신 분이셨다. 젊은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픔으로부터 달아나듯 일자리를 구해 도시로 훌쩍 떠나갔다.

    외할머니는 음식에 대한 손맛이 좋고 바느질 솜씨가 뛰어나서 주변의 칭송이 자자했다. 이웃마을의 혼사 집까지 불려 다닐 정도로 손끝이 야물고 재주가 많은 분이었다. 그분은 부모의 자리를 대신해서 우리 집의 살림살이를 남부럽지 않게 꾸려나갔다. 저녁 무렵이면 외할머니는 얘깃거리를 마르지 않는 샘처럼 풀어놓으셨다. 어머니의 꿈이라도 꾸는 날에 칭얼대기라도 하면 언제라도 덥석 잡아주던 따스한 손 하나. 그 밤에는 호롱불 아래에서 바느질하는 외할머니의 그림자가 벽면에 너울거렸다. 한쪽의 벽면을 다 덮고 여분이 남는 그림자는 참으로 넉넉하고 안온했었다.

   외할머니는 여름날에 손톱에 봉숭아 꽃 물을 곱게 들여주셨다. 자고 나면 뽀얗게 푸새질한 옥양목 홑이불에 손가락에서 떨어져나간 꽃잎 찧은 것이 봉숭아 꽃무늬를 찍어놓았다. 가을이면 꽃 빛이 가장 절정인 시기를 놓치지 않고 국화와 코스모스 꽃잎을 따서 창호지 사이에 넣어 문을 발라 긴 겨울을 준비하셨다. 문풍지가 조금씩 퇴색하고 봄꽃이 필 때까지 나는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 어머니의 분 냄새를 그려보며 마른 꽃의 향기를 맡아보곤 했었다.

    외할머니는 내게 잔심부름을 주로 시키셨다. 조그만 망태기를 건네주면서 냉이나 달래 같은 봄나물을 뜯어오거나, 감꽃을 주워오게 했으며 무논에서 우렁이를 잡아오게 했다. 여름 채소가 한창일 때면 남새밭에서 오이, 애호박을 따오는 것도 내 몫이었다. 감자밭이며 고구마 밭으로 설 여문 간식거리를 찾아다녔고 가을이면 호도나 알밤을 주우러 다녔다. 작은 노동으로 잡념을 잊거나 일해서 얻는 즐거움을 주려는 것 같았다. 짧은 산골 생활이지만 그로 인해 지금도 자연의 모습과 사물의 감촉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자주 그 모습을 그려보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외할머니의 잔상은 온화한 미소 띤 얼굴이 아니라 언제나 뒷모습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나마 안정된 부동 적인 자세는 없고 자박자박 논둑길을 따라 걸어가시는 것이다. 나는 뒷문 밖에서 조금씩 멀어지는 외할머니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다. 외할머니의 어깨너머로 사계절이 지나간다. 고추잠자리 떼가 날거나, 눈보라가 치고, 때로는 먼 산에 진달래가 분홍안개처럼 아스라이 번져있기도 했다. 외할머니는 곧게 뻗은 논둑길로 내려가신다. 뒤태가 고운 아담한 키에 허리가 하나도 굽지 않으셨다. 숱이 적은 머리를 빨간 댕기와 함께 길게 땋아 은비녀로 쪽을 진 단아한 모습이다. 외할머니가 한 발짝 씩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빨간 댕기가 꽃잎처럼 어른거렸다.

    외할머니는 여간해서 뒤를 돌아보는 일이 법이 없었다. 눈이 마주치면 나를 떼어놓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다. 논길이 끝나는 곳에 우뚝 선 성황나무를 돌아가서 외할머니는 산으로 흡수되었다. 산길을 따라 가면 십리 가까운 곳에 외가가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 모습이 사라진 다음에서야 나는 논길을 뛰어간다. 굽은 산길에 외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성황나무만 남아 무수히 매단 댕기를 흔들어댔다. 나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며 성황나무 돌무더기에 애꿎게 돌멩이를 던지곤 했다.

     가끔씩 외할머니를 따라 외갓집으로 갔다. 외가 마을은 높은 둔덕에 자리하고 있었다. 힘겹게 비탈길을 오르면 보이는 첫 집인데 우선 대문 밖에 키 큰 칸나와 맨드라미 봉숭아가 피어있던 기억이 난다. 외갓집은 양계장을 했었다. 닭장의 많은 닭들의 벼슬이 외할머니의 댕기처럼 칸나처럼 맨드라미처럼, 참으로 선연하게 붉었다.

     어느 겨울 날 밤이었다. 희미한 호롱의 심지를 올리고 바느질하던 할머니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다며 속내의를 훌훌 벗어 방문을 열고 힘껏 내던졌다. 하얀 눈밭에 뒹구는 엑스란 내의가 섬뜩하게 고왔다. 달이 대낮처럼 밝은 밤이었다. 외할머니는 줄곧 화병을 앓아 오신 것이다.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둔 외할머니가 솜씨가 좋으면 여자팔자 세다고 허드레한 일도 안 시키며 애지중지 키운 딸이 어머니였다. 가난에 허덕이며 평생을 살았던 자신을 빗댄 표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창 나이에 혼자의 몸이 되어있었다.

     맡아들인 큰외삼촌은 10남매의 고만고만한 어린 자식이 있었고 양계장일과 농사일로 일손이 딸려서 허둥댔다. 친손자는 거두지 않고 외손자만 감싸는 시어머니가 달가울 리 없는 외숙모의 위치였다. 화합하지 못하는 고부간의 갈등과 눈에 밟히는 혼자된 딸 사이에서 할머니의 마음고생은 얼마나 컸을까 짐작이 간다. 할머니는 외가에 다니러 갈 때면 어린아이들만 덩그라니 남겨놓고 무거운 발길을 옮겨야했다. 그 애절한 뒷모습이 나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 된 것이다.

    시골에 가면 비록 남의 소유가 되었지만 옛집이 남아있다. 논길을 따라가서 ㄴ 자로 꺾어지는 길도 그곳에 있다. 이웃마을의 둔덕 위에 외갓집도 그 자리에 있다. 다만 할머니가 사라지던 지점에 시그널처럼 서있던 성황나무는 이제 간 곳이 없다. 그러나 지금도 눈앞에 여전히 외할머니는 반듯한 논둑길로 내려가시고, 그 길 끝에 변함없이 성황나무 한 그루가 우뚝서있다. 아, 한번만 돌아보면 얼굴을 기억할텐데, 외할머니는 상상 속에서조차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나는 쪽진 머리의 빨간 댕기가 아물거리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지금껏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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