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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 색을 풀다 / 조미정

에세이향기 2021. 6. 28. 10:27

검정, 색을 풀다 / 조미정

 

마당이 바람을 탄다. 먹 염색을 하느라 오전 내내 고무 대야에서 텀벙거렸던 천들이 허공 속으로 말려 올라간다. 제 몸을 뒤집었다가 놓는다. 비바람 속 검정이 시나위 장단에 맞추어 춤추는 것 같다.

검정은 흰색이나 회색과 더불어 무채색으로 뭉뚱그려진다. 색이 없다고 해서 맹물처럼 밍밍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느 유채색보다 강렬하면서도 함께 있으면 자신보다 다른 색을 더 돋보이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평소엔 과묵하고 진중해 보이더니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걸까.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는 징검다리라도 된 듯 세차게 펄럭거릴 때마다 묵향이 후드득거린다.

싸락눈이 흩뿌려지던 회색빛 오후, 엄마가 영면에 들었다. 돌아가시는 줄도 모르고 웃는 얼굴로 병실 문을 두드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잠들 듯 평온했다 해도 예기치 않게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형광등 불빛도 천장에서 쏟아지며 망자의 앙상한 몸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간호사가 내 품에서 엄마를 떨어뜨려 놓고서는 몸속에 꽂아두었던 튜브들을 차례대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생전 엄마를 구속하던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망연자실했다. 물속처럼 투명해야 할 튜브가 진득한 검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두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던 고명딸이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것은 최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압류 딱지에 집문서가 넘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난소에서 악성 종양을 발견했다.

엄마는 몸에 좋다는 약을 구하러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다. 혹시 나쁜 마음이라도 먹었을까 봐 꿈자리가 뒤숭숭한 날에는 밤새도록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거렸다. 나를 기사회생시켜 놓고 몸의 힘이 다 빠져버렸던 모양이다. 일락서산 저문 날, 불 꺼진 방에서 엄마는 홀로 울컥 울컥 검정을 토해내며 쓰러지고 말았다.

평소에도 엄마 옷에는 자주 검정이 묻곤 했었다. 거미줄같이 다닥다닥 얽은 골목 혹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빌라 꼭대기 층까지 수백 장의 연탄을 짊어지고 날랐을 때 어김없이 따라붙던 표식이었다. 마당까지 따라 들어온 탄가루를 탁탁 털어낼 때마다 내 가슴도 낱낱이 흩어졌다가 사방으로 튀어 오르곤 했다.

감, 쪽, 홍화, 치자 등 하고많은 염색 중에서 하필 검은 먹을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엄마 위패를 모신 절집에 갈 때 입을 옷을 정성스레 짓기 위해서다.

먹을 가루가 날릴 정도로 잘게 빻아 하룻밤 따뜻한 물에 불리면 진득한 먹물이 만들어진다. 얼른 체에 밭쳐 걸러낸 후 천이 훌렁훌렁 떠다닐 정도로 충분히 물을 잡으면 얼추 준비가 다 되었다. 유품을 정리하다가 화장대 서랍에서 발견했던 먹은 제 몸을 녹여 한 필의 무명 속으로 잔잔히 스며드는 것이다.

아무리 농도를 진하게 해도 한번 만에 단박 물들지 않는 게 천연 염색이다. 언제쯤 윤기 반지르르한 색으로 거듭날까 싶어 줄줄거리는 먹의 앙금을 흘려보낸다. 다시 소금물에 풍덩 담갔다가는 햇볕에 빠닥빠닥 말린다. 천의 거친 올에도 윤기가 흐를 때까지 몇 번이고 같은 과정을 되풀이했다.

검정에 대한 오해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이즈음부터였다. 한 번 먹물에 적실 때마다 농담을 더하며 뚝뚝 떨어지는 먹빛이라니, 여태까지 검정은 돌덩이 같은 색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늦은 회한 같은 것이었다. 잊을만하면 불뚝거리더니 이제야 응어리진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듯했다.

먹 염색은 화공의 혼을 담은 수묵화이다. 달빛처럼 은은해진 검정을 볼 때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빌던 엄마의 희끗한 머리가 떠올랐고, 거듭 물들여 좀 더 짙어진 검정은 삶의 수레를 미느라 고단할 즈음 만난 너럭바위 같았다. 그 넓은 품속에서 쉬어 갈 수 있었다. 드디어 온전한 먹색이 되었다 싶었을 때는 어느 날 문득 석양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가 겹쳐졌다. 남루한 우리 집 대문에 고기반찬이며 푸성귀가 가득 든 비닐봉지를 걸어놓고는 자전거를 타고 쏜살같이 사라지던 뒷모습을 닮아서 눈물겨웠다.

어린 시절 과학시간에 크로마토그래피라는 색소 분리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수성 사인펜으로 점을 찍은 종이에 물을 적시면 점차 여러가지 색이 분리되어 나온다. 먹 속에도 그간 몰랐던 색들이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 장롱 속에 묻어 두었던 흑백 앨범을 꺼내들었다. 빛바랜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검정의 스펙트럼이 삶의 행간을 따라 서서히 번져 나왔다.

처음엔 파란색이었다. 장난꾸러기 아버지의 돌발적인 키스에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금방이라도 하늘을 튕길 듯 싱그러웠다. 회사의 부도로 앞날이 막막해지자 거침없이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중년은 빨간색이다. 연탄 수레를 미느라 흘린 땀방울이 저물녘 붉은 햇살 끝에 몽글몽글 맺히고 있었다. 말년은 노르스름한 색쯤 된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수묵화를 그리는 모습이 아이처럼 달뜨고 새뜻해 보였다.

알고 보니 단색의 외형 속에 삼원색이 다 들어있다. 여태 무겁다고만 생각한 검정이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뜨느라 맘껏 즐기지 못한 여생도 못내 속상했었다. 은연중 부귀영화를 누려야만 잘 사는 것으로 믿고 있었나 보다. 억척스럽고 고생스럽게만 보였던 모습 이면에는 소소한 일상들이 저마다의 색깔을 뽐내며 무지개 물고기처럼 반짝이고 있었던 것을.

검정의 역설은 흰색이다. 프리즘을 통과한 빛이 무지개색으로 분산되듯 오만 가지의 색이 한데 섞여야 검정이 되기 때문이다. 고해 아닌 삶이 어디 있으랴. 파도가 닥칠 때마다 맺고, 풀고, 당기다 보면 마디마디 물든 색이 점철되어 검정이 된다. 극과 극이 서로 동색이라 생각하니 삶의 대척점에 선 죽음도 이제 더 이상 섧지 않다.

검정, 색을 푼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는 마당 저편에서 엄마가 환하게 웃고 있다. 생生과 사死가 분절하는 창공을 향해 나도 뜨거운 미소로 화답을 한다.

검정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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