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깊이로 담아낸 서정의 표상
-안이숲 시집 《요즘 입술》에서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짧지 않은 생애로 다가온 이 세계를 살아오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겪어온 세월을 타자의 시선으로 다가가 만져보고 전해온 말들을 글처럼 읽는다. 시를 통해 또 다른 진정한 자아의 돌출을 본다. 그 긴 세월 안에서 기약 없이 부유하던 파편들은 시가 되기 이전까지 아무런 형상을 갖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이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아예 언급조차도 될 수 없었다. 꽃이라 불려지기 전에는 그저 하찮은 존재였던 것처럼 호명되지 못했던 세월은 참담한 것으로 묵묵히 견뎌왔을 뿐이다. 한낱 이미지로도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기에 그 어떠한 문자로도 존립할 수 없던 사물이 안이숲 시인의 시에서 유의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것들의 진정한 주체 안에 깃들어 있어야 할 고유한 사물성(본성)은 실상으로 치면 처연하였다. 도무지 기회가 될 수 없는 위기가 끝없이 이어져 그것을 들여다보는 마음은 참담하다 못해 이내 슬픔으로 번져왔다. 하지만 진전될 기미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회마저 욕망할 수 없는 현실은 어떠한 희망도 가늠할 수 없어 막연한 운명처럼 받아들여야만 했다. 시적인 것으로의 환기를 통해 드러내고자 한 시인의 직관이나 사변적 의미를 담아 질문해 온 것이 전부다. 어차피 시는 문장을 통한 상상력과 그 서사성을 감응으로 형용한 고도의 상징 언어란 것을 함의하고 있다. 이럴 때 서정적 함의에서 이탈하지 않으면서 사물로 현존하는 모든 것의 상관성을 담론적 범주로 치환해 가는 안이숲 시인의 시에서 우리는 완곡하면서도 치밀한 언어의 정제와 절제를 통한 시의 세계를 융숭깊게 구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문틈에 나비 한 마리 다소곳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날아 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이
여름을 건너뛰려 하고 있네요
종손이라는 이름에 걸린 가문 한 채 간수하느라
공중을 떠돌아 이곳에 뿌리를 내린 당신
방문이 열릴 때마다
낮은 발자국 소리에 묻은 녹슨 고백 소리 들려옵니다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 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遠行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
얘야! 시집와서 빗장을 지키는 게 평생의 일이었단다
느리게 접힌 쪽으로 아픈 고백을 쟁여든 어머니
다음 생에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소리 수없이 들었어요
빗장에 방청 윤활제를 솔솔 뿌리면
마당 한 귀퉁이의 세월에 퍼렇게 멍든 잡초가 피어오르고
당신은 눈코입이 삭아 자꾸만 떨어져 내립니다
붉은 눈물이 소리가 되어 공중을 묶어 놓고
납작하게 접힌 마음을 일으켜 이제 편안하게 쉬셔요
여닫이에 꼿꼿한 등을 붙들린 지 수십 년
뒷목부터 낡아가는 수의는 그만 벗으셔도 돼요
염습을 마친 8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겹겹이 에운 문틈 사이로 녹슨 쇠 울음소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당신의 평생 어디쯤에서 터지는 발성법을 익혀
이리도 가늘고 긴 곡비哭婢를 준비했을까요
우리 한 번은 서로를 열어야 하는데
어머니, 어느 쪽이 제가 돌아갈 입구일까요
-<나비 경첩> 전문
우리의 주거 환경이 아파트 문화로 바뀌면서 방안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가구 형태도 변화를 거듭하여 요즘은 붙박이장이 대세다. 그러기 이전에는 결혼 혼수품으로 가장 큰 살림살이 중 자개 박힌 문갑은 소중한 애장품이었다. 자개장에 나비경첩을 달아 나비장이라 불린 소중한 문갑은 안방에서 평생의 손때가 묻어 특별할 수밖에 없다. 화자가 경험한 어머니의 세월은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엄혹한 시절이어서 ‘나’를 의식할 겨를도 없었다. 아무것도 드러낼 수 없는 어머니의 존재는 스스로를 감춘 채 규방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런 시절을 살며 강요된 관습을 빌미로 자아의 해체는 숙명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어머니란 존재는 이 세상에 드러내선 안 되는 것이었다. 오직 존재한다면 어머니의 고단한 세월이 투영된 ‘나비경첩’이 있을 뿐이다. 모진 것이 세월이라 화려한 문양도 처연하리만치 퇴색해질 수밖에 없다. 방 안에 갇힌 의지는 실현 그 자체가 불가하여 아예 “문틈에 나비 한 마리 다소곳 날개를 접고 있어요/ 놋쇠 장식으로 된 나비로 태어나 제대로 날아 보지 못한 어머니의 봄”은 ‘나비경첩’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 시작은 운명처럼 ‘종손’ 집으로 시집을 온 이후부터 엄중한 가문의 강요 같은 관습을 따라야 했다. 그런 어머니가 자랐던 고향 의령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나비 같아 “솜털이 시작되는 고향에서 나비 무늬 박힌 치마저고리 입고/ 의령장에 구경 가던/ 팔랑거리는 속눈썹 사이로 가볍게 날아오르던/ 어머니의 원행遠行엔 연지곤지 찍은 꽃들마저 고개를 숙였던가요”라며 찬란했던 추억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삶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어 살지 못했던 그 시절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이제 어머니의 생애로 온전히 복원할 수 없는 그 본질은 사회문화로 견고하게 규범화된 억압적 관습에 의한 것이다. 다 지나간 세월의 이야기로 전설처럼 들리겠지만 과거 실재한 우리 어머니들의 전형적인 삶의 모습이었다. 그 시대는 가혹하리 만치 강한 가문에 대한 그 나름의 대단한 자부심이기도 했으니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뒷감당을 해야한다는 것과 같다. 당연히 엄숙한 규범에 이의 없이 따라야 했던 어머니의 시간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 긴 세월을 훔쳐본 ‘나비경첩’을 통해 어머니의 시간으로 존재한 고통을 유추할 수밖에 없다. 이 어머니의 모습은 문갑에 ‘나비경첩’으로만 만날 수 있다. 화자는 시적 환기를 통해 잊힌 어머니의 모습을 되돌려 놓으면서 말하고자 한 것의 의미는 그 엄혹한 시절 속에서 억압된 자아의 회복을 청유하며 “다음 생에는 날개를 달고 태어나지 마세요/ 몇 겹으로 박제된 풍장의 어머니/ 쇳가루 떨어지는 서러운 날갯짓 소리 수없이 들었어요”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낸다. 그 발원적 소망은 충동하는 욕망과 별개로 어머니로 상기되는 모성성의 표상적 가치의 회복에 있다. 윤리적 희생의 생애를 자아의 주체적 표출로 확인하려 한 보기 드문 생애의 긴 서사가 웅숭 깊은 서정성으로 다가왔다. 여기에서 주목할 지점은 사물성으로 상관된 ‘나비경첩’을 통해 어머니의 살아온 삶으로 상징성을 도드라지게 한 수작임은 분명하다. 아직도 화자가 익히 보아온 나비경첩에 대한 아픈 기억을 반전할 수 있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수도 없이 여닫이를 반복하며 나비경첩의 수명도 거의 다하여 더는 사용할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처럼 당신(어머니)도 궁륭의 세월 속에서 노쇠를 피해 갈 수 없었음을 이르고 있다. 긴 여름이 끝나가는 시점 “염습을 마친 8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겹겹이 에운 문틈 사이로 녹슨 쇠 울음소리 선명하게 들려오는 밤/ 당신의 평생 어디쯤에서 터지는 발성법을 익혀/ 이리도 가늘고 긴 곡비哭婢를 준비했을까요”라며 돌이킬 수 없어 더 간곡해진 비감을 심연 깊은 곳에서 애써 억누르고 있다. 그런 삶도 있지만, 보편적 가치보다 자신의 욕망을 과도하게 행사하고 있는 삶도 있다.
시속 120km로 급발진하며 달려오는 입술을
키스로 받을 때
저녁은 수심 200미터 지하에서 헤엄치는 한 쌍의 아귀가 됩니다
입술을 담보로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침마다 찾아오는 허기는 깊었고
식탁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집주인의 모습을
창문 밖으로 쳐다본 적 있습니다
네 면을 스틸, 목조, 콘크리트, 벽돌로 마감을 하였다는
저 집을 좀 압니다
외벽에 다른 질감의 디자인을 마감하느라 미장의
4번 척추가 휘었고
형광등이 노출되는 게 싫다고 천장을 파내라는 집주인의 호소에
시스타나 성당 천장화를 그리듯 매달려 있던
당신 그림자에
작은 바다 하나 들었차곤 했다는 것을요
아귀는 뜨거울 때 먹어야 돼
100T 판넬 작업을 마친 당신이 시뻘건 아귀찜을 먹으며
잘린 아귀 입 한 조각을 쓰윽 내밀 때
저 화사한 집은 우리 집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죄지은 인간들의 혼이 변하여 태어난 것이 아귀라는데
바다가 집인 우리는
비린내를 온 동네에 풍기는 한 쌍의 아귀 가족
하얀 접시 위에서 시속 120km의 과속에 급브레이크를 밟는
남자의 겨드랑이에 붙여진
키스, 라는 부적을 불살라 버릴 그날은 언제쯤 오는 걸까요?
입술이라는 질긴 짐승이 살고 있어요
-<요즘 입술> 전문
마음이 먼저 ‘입술’이 갖는 상투성을 지레 짐작했다. 그러나 자극적이거나 모호성을 일거에 전복해 버리는 시적 사유와 만나게 된다. 그런 기대는 행을 아래로 읽어가며 상당한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우선 입술 그 자체는 사람만이 갖고 있는 신체 구조의 한 부분이다. 그 입술을 통해 고도한 욕망을 탐하다 세상을 혼란스럽게 빠트린 일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입술’의 상징성을 통해 벌어지고 있는 일탈적인 삶의 유형에 다가가 보자. “시속 120km로 급발진하며 달려오는 입술을/ 키스로 받을 때/ 저녁은 수심 200미터 지하에서 헤엄치는 한 쌍의 아귀가 됩니다”라며 보편적 사회 질서와 생존하는 방법이 전혀 상이한 것을 말하려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도로에서의 차량 속도는 고속도로라 해도 120km로 달리는 곳은 없다. 그렇게 무법 질주하는 차량을 운전하는 사람은 분명 난폭 운전자가 맞다. 여기에서 그들만의 비밀한 삶의 서식지는 지하 200미터라면 그 또한 일반적이지 않아 외부에 노출을 꺼리는 별종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자신들의 이기적인 삶에 몰입하지만 매번 찾아오는 배고픔은 크다고 할 때 그것 또한 필요 이상의 탐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의 에두른 표현이다. 입술로 살림을 차린 가족이 있다. 그들에게 입술은 뜨거운 사랑의 전주와는 무관하게 오직 자신들만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였다. 그들만의 성공적인 삶을 살며 그토록 이루려던 것의 소망처럼 “식탁 위에서 환하게 웃으며 스파게티를 먹고 있는 집주인의 모습을/ 창문 밖으로 쳐다본 적 있습니다/ 네 면을 스틸, 목조, 콘크리트, 벽돌로 마감을 하였다는/ 저 집을 좀 압니다” 라고 말 한다. 문제는 그 화려한 집을 지으면서 미장이와 실내 인테리어를 했던 사람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였고 그로 인해 그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살고 있다는 그들이 활용한 입술은 마치 아귀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죄지은 인간들의 혼이 변하여 태어난 것이 아귀라는데/ 바다가 집인 우리는/ 비린내를 온 동네에 풍기는 한 쌍의 아귀 가족”이어서 감언이설을 쉼 없이 쏟아냈을 것이다. 화자가 바라본 ‘요즘 입술’의 유형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있는 부도덕한 사람들을 일컬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참 불공평한 곳이다.
행과 불행이든 그렇다고 아예 세상을 포기하고 등져버릴 수도 없는 요지경을 우린 본다. “사업을 손절하고/ 친구를 손절하고/ 창고 방 벽에 폐기된 A4 이면지를 바르고 이사하던 날/ 푸른 꿈을 손절한 적 있었지// 움겨쥔 손바닥을 펴보면/ 노랗게 엉겨 붙던 늦은 꽃술의 내력”, “날 일하는 목수의 억센 팔뚝 위로/ 노란 알 등이 켜지면/ 문을 열고 들어가 조용히 하루쯤 쉬어가도 되겠다” (<겨울에 핀 민들레>)에서 처럼 상대적 박탈감으로 알 수 없는 자조감에 빠져들 땐 생이 금방 끝날 것 같지만, 옅게 번져오는 작은 불빛으로 우린 새로운 희망을 얻곤 한다. 다행스럽게 화자는 그런 위기를 순간으로 잘 넘긴 듯하다. 거칠고 황량하게 닥쳐오는 세류를 담담하게 흘러 보내야 하는 것이 세상살이의 지혜다. 주식으로 돈을 억수로 벌었다는 친구와의 만남 이후 찾아오는 자괴감은 클 것이다. 행운의 여신은 공평하지 않은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다양한 추구가 예상 밖의 성공으로 다가오는 수가 있다. 그것 또한 그 사람의 몫일뿐이다. 우리에게 다가올 행운이란 것은 또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 찾아가야만 한다.
안이숲 시에서는 삶의 곡절들이 발효제처럼 시적인 것으로 절묘하게 활용되곤 한다. 그것의 형상은 고통으로 각인된 것이어서 시가 지녀야 할 영감이나 상상력과는 별개로 감성적 소구성을 띠고 있다. 더 근원적인 것은 성장한 시간 속에 배태된 삶의 부분들이 시적 상관성으로 현재화한 것이다. 다양하게 체화된 요소들이 가슴 깊은 곳에서 응어리져 있다 때론 슬픔이거나 연민이 되었다가 필연처럼 사랑의 모습으로 재현된다. “돼지껍질보다 두꺼운 질감은/ 너무 환한 빛깔이어서/ 구름이 피부를 가졌을 거란 생각을 했죠”, “땀구멍 하나에/ 마음 한 채를 가진/ 역마살 낀 목수”, “줄자와 쥐꼬리톱이 들어있는 가방이라는 얼굴”(<유자라는 집>)을 떠올린다. 노랗게 익은 유자는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그 안 가득히 들어찬 향내도 그렇지만, 왠지 껍질의 질감은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 유자 껍질을 보면서 낯익은 모습은 바로 평생 거친 목수 일로 거칠어진 아버지의 얼굴과 닮은 꼴이다. 시가 어차피 직, 간접의 체험에 의한 것이라면 시의 근본에 가장 충실한 시작의 모범이 아닐까 싶다.
“우리 집 구멍에는 다섯 개의 손가락이 살아요”, “아픈 손가락은 모두 목수가 되었어요/ 벽마다 구멍을 내었죠/ 못이 있는 자국은 손가락의 후손들”(<새끼손가락>)은 시가 출현하는 지점을 명료하게 보여 준다.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사물(대상)에 꽂힌 시선은 멈추면 그만이다. 그 호기심이나 충동의 감응이 보이지 않는 지점을 뛰어넘어야만 그곳이 시가 존재하는 곳이다. 첫 행에서 ‘다섯 개의 손가락’을 올려놓았지만, 그 시적 출현은 벽에 못 자국으로 남은 성근 형상이 눈에 밟힌 것이다. 화자는 그 경이로운 지점을 용케도 포착한 것이다. 예전의 집 방 안에는 가족의 수만큼 못이 벽에 박혀 옷가지를 걸어놓곤 했다. 그런 집을 수없이 성축했을 아버지 따라 다섯 아들도 대를 이어 목수일을 했을 것이다. 세월을 이길 수 없어서였을까 현재는 다섯 번째 오빠만 목수를 하고 있단다.
삶의 모습을 이토록 시적으로 재현할 수 있을까? 낯설지 않은 삶의 무게가 쉽게 휘발성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직진해 들어오는 시적인 문장 앞에서 숙연한 진정성을 만나게 된다. “백일 갓 지난 딸아이를 둘러업고 덤프트럭을 타고/ 배달을 나설 때/ 나의 바다는 일 단과 이 단 사이에서/ 태풍주의보”, “어린 딸은 조수석 등받이에서/ 염소 울음만큼 작고 가늘게 울었고/ 여기서 시동을 끄면 집은 난파다”,(<여름 한낮의 배달>) 배달이 생명인 업종이 있다. 그런 업종의 일을 하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면 그 모든 것은 절박한 것이다. 한 번의 배달도 소중한 것이어서 실행해야만 한다. 거기에 어린아이까지 딸려있다면 불안한 마음은 배가 된다. 치열한 삶 이상으로 생존적인 시어의 선택도 긴박하게 다가왔다. 그 모든 것이 뼈대 있는 아버지의 유산임을 화자는 성장하면서 몸에 새겼을 것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쉽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각오에도 간혹 황당한 일을 당하고 만다. 어쩌다 보면 사랑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한때 그놈에게 사랑이라는 현금을 빌린 적이 있었지/ 현금은 달콤했지”, “사랑이라는 두 단어의 이자는 원금보다 늘어났지”, “일수를 함부로 쓰면 큰일 나!/ 나를 앉혀 두고 경고를 하던 엄마는/ 무덤 속에 들어가서야 겨우 채무를 면했지”(<겁 없이 덜컥 일수를>)라며 엄마가 그토록 주의를 당부했지만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결은 다르지만, 안이숲 시인만의 변별적인 상상력으로 발현된 문장의 형용과 형상을 만나게 된다. “꿈은 걸어 다니지 않는다/ 한자리에 서 있다”, “한번 찔리면 전갈보다 위험한 말/ 몇 년 전 생각에 찔린 상처가 다 아물지 못한 채/ 옆구리에 붙어 수분 없이 살아남았다”(<선인장>)는 문장을 보며 연금술사적인 현란한 언어의 화용話用을 눈여겨 봐야 한다.
무슨 소리 하고 있노?
디스크라니 말도 안 된다
아직 시멘트 한 포대는 손가락에 힘만 까닥 줘도 들 수 있다니깐
실비집 아지매 마음 벗기는 거보다 더 쉽다니깐
어젯밤 용당 아지매 함 봐라
내가 고마 탁자 위에 이만 원을 탁, 던져 놓으니까
하루 종일 웃음보따리를 풀어 놓는 거
눈가가 실밥 터진 거 맨치로 실실 풀어지더라 아이가
그라고 보니 돈도 든든한 뼈가 되는 기제
그런 소릴랑 하지도 마라
밤 되면 사지가 오그라지는 거는
빳빳한 종이도 똥 눌 때면 막 구겨야 되는 거이니까
돈은 또 일 나가모 버니끼네
니는 인자
내 걱정일랑 탁, 붙들어 매라니까
-<아버지> 부분
누구에게나 아버지가 계신다. 이미 생을 달리했다 해도 면전에서 하신 말씀은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화자도 아버지의 시간을 돌이켜본다. 다들 먹고살자고 세상에 나서지만, 마음대로 안 되는 것도 세상사다. 그에 굴하지 않고 올바로 사는 법을 고집하신 아버지였다. 몸이 거칠고 힘든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어도 생업을 놓을 수 없는 아버지다. 자식의 성화에도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그것은 에두른 핑계란 것을 아들은 뻔히 알고 있다. 무거운 등짐을 져 나르면서 고질병이 된 디스크라면 일을 그만둬야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된 일을 그만 둘 의향이 조금도 없다. 그것은 아버지가 일을 더 해야 한다는 절박한 “그라고 보니 돈도 든든한 뼈가 되는 기제”라며 말씀하신 이유일 것이다. 그러면서 “니도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니 몸속에 뼈가 있다는 걸 꼭 기억해야 된다이/ 세상이 니한테 이단 옆차기를 해도/ 발등에 말목을 박고 딱, 버티고 있으면 되는 기라/ 세월 가면 다 맷집이 되는 기라” 라며 자식에 당부도 잊지 않는다. 당신 몸은 망가져도 오직 당신이 사는 목적은 자식 건사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토록 속 깊은 아버지의 마음을 쉽게 잊는 것은 아닌가 반문해 본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은 마음을 슬프게 한다. 잊으려 해도 잊힐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은 세월이 깊어질수록 가슴을 멍하게 치고 들어와 그리움처럼 애잔해진다. 딱 그날이 그랬다. “트럭에 시멘트를 싣고/ 사천 읍내를 지나 삼천포 쪽으로 엑셀을 밟을 때마다/ 에어콘이 고장난 당신의 등판은 염전이 되었다”, “염전을 등에 지고 건축 현장으로 가는/ 당신 뒤 꼭지를 열어보면/ 땀의 사리가 하얗게 붙어있다”(<소금꽃이 피는 하루>)라며 아버지의 시간을 회상하고 있다. 인근에서 건축용 자재를 필요한 곳까지 배달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일상을 보고 자랐을 것이다. 작은 등으로 흘러내렸을 땀이 시간이 지나면서 하얗게 말라 얼룩처럼 흔적으로 밴 아버지를 기억한다. 바쁘다 보면 끼니도 대충 때울 수밖에 없는 현실도 그랬을까? “하루를 딱딱한 골조로 세운 날엔” 유난히 힘들어 보였을 마음이 화자에게 각인되어 한 편의 시속에서 아버지의 시간을 호명하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채화한 시어들이 요동을 친다. 안이숲 시인은 화자를 통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사는 공간이 비좁다는 것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살이를 의미한다. 저녁을 깍뚝설기한 국물로 때운 뒤 서로를 오롯이 살피다 아픈 곳의 “옷을 걷어 팔뚝을 보면/ 리모델링 현장에서 온종일 모자이크 타일을 붙이느라 멍든 자리는 / 아침에 끓인 푸른 감자”, “임종 전에 외할머니가 장롱 밑에서 꺼내 주신/ 곰팡이 핀 지폐 한 다발은 모두 감자가 되었”(<모자이크 타일>)다며 그런 가계의 연원은 현재에도 지속된다.
거미가 방충망 사이의 공간을 활용해 집을 짓는다. 그 촘촘한 얼개 속에 숨겨둔 “깜깜할수록 우는 소리가 더 깊다”, “도망갈 곳 없는 방사형의 통증”, “퍽/ 퍽”, “바람 닿는 목수의 집이/ 부위를 가리지 않고 아프다”(<목수의 집>)라며 표제와 시행의 전개는 허공에 갇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통증으로 극대화되어 절묘한 교집합을 이뤄낸다.
안이숲 시의 유형은 흔하지 않아 매 시를 읽으면서 의외성에 놀라곤 했다. 시어의 선택과 전개는 시인의 고유한 개성이라고 보았을 때 시집 전체가 상당한 수작이라고 해도 과하지 않다. 그것의 단정은 시의 대상이 사물에 한정한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체험한 삶과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실제적 연계를 이뤄낸다. 그뿐만이 아니라 시의 상징이나 비유에서 기존의 시에서처럼 유사 변용이 아니라 의외의 전복적인 사유로 선입견을 일시에 무너뜨려 반전을 촉발한다. 거기에 더해 상상력의 분방함도 그렇거니와 현실 속에서 언제든지 유착이 가능한 실재적 사유로 환기하여 반복을 통한 친근감은 안이숲 시인만의 장점이다. 시의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진정성과 궁극으로 다가가려 한 문학에서의 심정적 노정은 사랑할 만한 삶의 세계를 희망하는 곳에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 시의 근원인 서정성에서 일탈하지 않고 서정시가 갖는 범주의 확장을 보여 주었다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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