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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수필의 공간구조가 지니는 의미

에세이향기 2025. 12. 6. 23:21

수필의 공간구조가 지니는 의미 

 

                                                                                                                                                       허상문

 

  공간 의식은 시간 의식과도 밀접한 관련성을 지닌다.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동시적으로 발생하고 소멸한다. 넓은 의미에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삶에서 시간과 공간을 분리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주에서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어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흐르는 연속체라는 의미를 지녔을 때 문학에서도 이들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분리되는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면서 다루어진다. 이때 한쪽에는 시간의 공간화 현상이 이루어지고, 또 다른 한쪽에는 공간의 시간화 현상이 각각 놓이게 된다. 그간 문학적으로 시간 의식과 공간 의식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어 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대상들을 재현하는 체계의 변화가 아니라 공간개념의 내용 자체의 변화를 이루면서 문학의 본질은 공간화에 대한 지향이 이루어지게 된다. 문학적 공간화란 단순한 시각적 재생이라는 뜻보다는 언어에 내재하고 있는 시간적 지속성에서뿐만 아니라 한순간에 총체성을 드러내는 것으로 파악하려는 시도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바슐라르가 우리의 기억을 생생하게 잡아둔다는 의미로 공간 의식이란 일종의 '귀향 의식'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개념과도 유사한 것이다. 이는 베르그송적인 지속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들이 어느 장소에 '머무름'에 의해 구체화된 공간의 의미와 같은 것이다. 삶에서 흔히 시간적 계기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의 양상은 공간화 되어 제시되며 이런 점에서 시간의 공간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따라서 공간지각이야말로 실천적이면서 동시에 정신적인 인식의 총체와 관련된 것으로 시간과 공간은 양가성의 차원의 의미를 지닌다. 

 

   미국의 인문주의 지리학자인 이-푸 투안(Yi-Fu Tuan)은 <<공간과 장소>>에서 토포필리아topophilia'라는 용어를 창안하여 인간이 장소에 대해 가지는 특별한 정서에 관하여 폭넓은 이해를 제공한다. 투안에 따르면 '토포필리아'란 그리스어로 '장소'를 뜻하는 'topos'와 '병적 애호'를 뜻하는 'philia'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장소애場所愛'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토포필리아는 그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가보거나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정서적 교감 속에서 형성되는 인간과 장소 사이의 유기적 관계의 의미망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토포필리아는 삶에서 장소에 대한 공간적 해석과 사랑의 표현인 셈이다.

 

   이렇게 공간 의식이란 작가의 주체적 인식만으로는 생기지 않으며, 주체의 지향을 일으키는 객관적 대상과 맺는 상호작용이 공간을 이룬다. 결국 공간이란 몸과 상상력과 환경들이 얽혀 이루는 실재적 상호 작용인 셈이다. 공간은 형태가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고 또 직접 묘사하거나 분석할 수 있는 실체가 아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공간을 느끼고 알고 또 설명하더라도, 거기에는 항상 장소감이나 장소 개념이 관련된다. 일반적으로 공간이 장소에 맥락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간은 그 의미를 특정한 장소의 이미지로부터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작품에서 공간 의식은 주로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미지 그 자체의 현상은 상상력을 통해 의식의 지향성을 지니게 되며, 이러한 상상력과 이미지가 하나되는 지점에서 문학적 공간의 의미는 형성된다. 상상력이란 외부 대상들의 이미지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며, 비결정적이고 자유로운 창조력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상상력을 통해 변형되고 재창조된이미지는 단순한 시각적 재생이 아니라 포괄적 의미에서의 공간이 된다. 

 

        -<<수필과 비평>> 2025년 1월호 게재 <문제작 작품론>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