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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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어語시장 / 권다원

에세이향기 2026. 1. 2. 09:35

어語시장 / 권다원 

 

얼음을 쪼개는 둔탁한 소리가 어魚시장을 깨운다. 수조의 물결은 울음처럼 퍼져 골목에 번지고 외침은 안개를 갈라 길목마다 스민다. 물기 도는 바닥 틈에서 막 태어난 언어의 알맹이가 꿈틀거린다. 바닷내가 코끝을 스치면 차양살이 두터운 바람에 미세하게 떨린다. 고요히 번지는 새벽이 그 위에 내려앉아 오늘의 말을 시작한다.

손짓 하나에도 파도가 갈라진다. 짧게 던진 목청은 미끼처럼 허공에 걸린다. 구경꾼들은 음성에 낚이듯 따라 붙는다. 호응은 얕게 스치기도 하고 깊게 파고들기도 한다. 경매사의 노련한 목소리는 세월이 켜켜이 쌓인 패각처럼 두터워 말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물밑의 고기가 방향을 바꾸듯 울림은 때를 보아 흩어졌다가 다시 몰려든다. 튀어나온 호명이 곧 숫자로 변한다. 손끝에서 오르내린 수치는 기류를 타고 퍼져 나간다. 호가가 끊기자 자릿수가 곧 오르내린다. 손가락 각도와 턱짓이 문장을 대신하고 눈빛이 잠시 마침표를 찍는다. 숫자는 공중에 튀어올랐다가 바로 땅에 내려앉는다. 형광등의 칼날빛 아래로 판 위에 새 숫자가 더해진다. 낙찰 신호와 함께 숨 한 줄기가 스친다. 그 순간 모두가 그 값에 묶인다.

활어 수조 앞에 섰다. 입보다 앞서 손이 움직인다. 값을 묻자 상인은 손바닥에 숫자를 그린다. 깎으려 드니 굳은살 밴 손끝을 들어 올려 자릿수를 더한다. 칼등으로 광택을 쓸어 보이며 아가미와 꼬리지느러미로 생기를 증명한다. 오래 온 손님일수록 단어는 줄어든다. 눈빛과 고개 각도가 약속처럼 포개진다. 묵직한 봉지가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면 짧은 끄덕임이 마지막 줄을 대신한다.

장터의 대화는 리듬으로 흐른다. 북소리처럼 몰아치거나 낮은 현처럼 길게 울린다. ‘오늘 것’이라는 한마디에 배어 있는 계절의 물빛, ‘맹하다’는 표현에 숨어 있는 미묘한 불만이 음계처럼 섞바뀐다. 값이 맞아떨어지면 저울이 잠시 멎지만 무산된 흥정은 물살처럼 다른 자리로 흘러간다. 재단 칼과 발소리가 장단을 이어받는다. 사람과 물건이 맞닿는 순간 어시장에는 한 편의 합주가 울린다.

사투리도 혀를 타고 흐른다. 횟집 앞에서 붉은 앞치마 차림이 ‘징하게 좋다, 달다’를 번갈아 부른다. 끝소리가 살을 스쳐 떨림을 남긴다. 부엌에서 어머니가 회를 뜨던 손이 떠오른다. 뜻을 다 몰랐던 탯말이 오늘은 입안에서 먼저 풀어진다. 낱말에 손맛이 배어 억양을 만든다. 같은 뜻을 표준어로 말해도 맛이 다르다. 방언은 맥을 다시 튼다. 여기서만 살아 있는 말은 시장을 벗어나면 금세 힘을 잃는다. “싱싱하네” 보다 “팔팔하다 아이가”라는 말이 더 힘이 있다. 같은 생선이라도 그 말이 따라붙으면 값이 달라진다. 어린 시절 귓가에 맴돌던 말소리들이 다시 불려 나와 지금은 사라져가는 말씨에 살을 붙인다.

노인의 언어는 오래 묵은 항아리 같다. 손바닥 감각과 가격 글씨가 맞닿는 찰나 노점상 할머니가 고개를 든다. 바늘저울이 가라앉고 손의 기억이 금액을 확정한다. 셈은 입 밖으로 새지 않지만 주름진 손끝이 이미 결과를 말하고 있다. 한마디가 오랜 파도 끝에 남은 돌처럼 부서지지 않는다. 골판지 위에는 ‘활광어 선민어 왕고등어 중멸’ 같은 글자가 굵은 매직으로 눌러 적혔다. 비린내와 습기가 깃든 글판은 물기를 머금고 가장자리가 들떠 있다. 물기에 번진 획은 힘을 잃고 퍼석하게 갈라져 귀퉁이마다 소금기가 얼룩처럼 맺혔다. 글자는 자리를 지키지만 더는 펄떡이지 못하고 말라붙은 비늘처럼 남아 있다. 얼음기운을 머금은 듯 적힌 흔적은 숨결이 차갑게 굳었다. 살아 있는 말과 달리 움직이지 않는다.

비린 궤짝을 부려 싣고 오토바이가 곧장 샛길을 파고든다. 어깨에 남은 기운이 바퀴를 눌러 속도를 재촉한다. 웅덩이가 터지며 물보라가 허벅지까지 튀었다가 흩어진다. 상자는 덜컥거리며 경매장의 빠른 박자에서 골목의 느린 호흡으로 옮겨 탄다. 환한 얼굴과 손짓이 기다리는 어귀에 닿기 전 차가운 바람이 따라와 남은 메아리를 오래 붙든다.

정오가 지나면 풍경은 생활의 빛깔로 달라진다. 새벽의 긴장은 걷히고 주부들이 아이 손을 잡고 나타난다. 수조를 들여다보던 아이가 짧은 울음을 터뜨리면 옆에 선 이들의 해맑음이 번져 나간다. 가게에서 어머니가 손님과 안부를 주고받던 오후의 장면과 겹쳐진다. 분주하던 거리가 온기로 물들 때 입말도 누그러진다.

장판의 움직임이 늦어지면서 상인들은 종이컵을 두 손에 감싼 채 김을 불어 날려 보낸다. 곁에 쌓아둔 생선을 가리키며 봉지를 흔든다. 곁들인 한 마디에 손님이 멈춰 서면 값 대신 정과 손길이 흥정의 막줄을 메운다. 갓 튀긴 꽈배기를 나눠 씹는 소리 사이로 북적임이 쉼 없이 이어진다. 커피 향과 비린내, 웃음과 덤의 말투가 뒤섞여 오후의 장터가 한층 무겁게 익어간다.

마감이 오면 언어는 껍질만 남는다. 얼음물은 홈을 타고 흘러 배수구로 스러지고 젖은 표찰은 굽어가다 손에서 떨어진다. 빗자루가 물을 모아 긴 선으로 하루를 밀어낸다. 남은 음성들은 얼음처럼 녹아 사라지지만 빈 스티로폼은 좁은 길을 맴돌다 벽에 기대 숨을 죽인다. 마지막 트럭이 빠져나가면 공기가 한결 가벼워진다. 정적이 가장자리에 머물고 저녁빛이 흙바탕에 덮인다. 오늘의 단어는 시장 바닥에 자국으로만 박혀 있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며 더듬는다. 생선보다 언어다. 팔려간 말과 남겨둔 이름, 얼려 둘 문장이 서로 얽혀 그물코를 만든다. 느린 것은 깊은 층으로 잠기고 빠른 것은 수면에 닿아 반짝인다. 방문 앞에 서면 시장의 웅성거림이 거둬지고 손바닥 위로 글 한 줄 내려앉는다. 그 여운은 마르지 않은 채 귓속에 남아 내일의 운율을 부른다. 한때는 값표 하나가 집안 살림의 무게로 내려앉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 말들이 문장으로 살아나 나를 붙든다. 살아 있는 말과 얼어붙은 말이 함께 어울려 내 안에서 퍼덕인다.

아이 입에서 무심히 흘러나온 줄임말이 오늘 시장에서 들었던 방언과 맞부딪친다. 낯선 말끝은 장난처럼 비껴가며 가느다란 잔상을 남기고 기척이 방 안 한쪽에 오래 맺힌다. 짧은 소리가 묵직한 음가와 얽히며 뜻밖의 무늬를 드러낸다. 서로 다른 말들이 맞닿으며 생긴 가락은 글줄 속으로 옮겨 붙는다. 남김은 내일의 글귀가 된다. 저녁 식탁 위에선 대화가 꽃게탕처럼 끓어오르고 웃음 속에서 던져진 말들이 하루의 피로를 풀어낸다. 그때의 어투는 기록된 구절과 달리 이내 흘러가지만 남은 소리는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며 되살아난다. 언어는 남겨진 자리에서 여전히 숨을 고르고 아직 쓰이지 않은 글결을 향해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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