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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 밥 / 이숙

에세이향기 2025. 12. 28. 08:59

사투리 밥 / 이숙

 
 

 

“민이가 사투리를 많이 쓰든가아? 어제 일한 총각이 사투리를 많이 써서 아주 재밌게 일했다던데?”

퇴근한 남편이 작업복을 벗다 말고 아들의 말씨에 대해 물었다. 평소 낯가림을 하는 아이다. 처음 본 사람들과 더펄대며 일했다는 것도 의아한데 사투리까지 썼다니 귀가 쫑긋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석연찮은 기색이 스쳤다. 그 표정 속에서 앳되고 붉은 얼굴 하나가 서서히 돋아나왔다.

스무 살 무렵 새내기 부부였던 남편과 나는 거리에서 포장마차를 했다. 중고 트럭을 하나 사서 짐칸에 천막을 씌우고 큰 수조와 버너를 설치했다. 해가 질 무렵이면 트럭을 몰고 나가 대림역 고가 밑에 차를 세웠다. 차체의 날개를 테이블로 만들고, 그 밑으로 플라스틱 의자를 놓았다. 산낙지와 통골뱅이, 멍게 같은 해산물을 진열하고 손님을 기다렸다.

처음 며칠은 좀처럼 손님이 붙지 않았다. 남편이 호객에 나섰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뒤쫓으며 귀에 대고 모깃소리로 말을 걸었다.

“낙지 있어라우…, 산낙지. 성성한 멍게도 있어라우….”

그러면 사람들은 성가신 듯한 표정을 짓고는 도망치듯 걸음을 재촉했다.

“아따, 골뱅이 궁물에 한잔하고 가쇼나.”

손님이 없는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인 양 목소리에 서운한 기색이 가득했다. 거부당한 일이 속상하기라도 했을까. 따라가다 말고 돌아오는 그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서 오셔라우. 반갑소잉.”

남편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면, 포장마차에 전구가 탁 켜지듯 손님들 얼굴이 환해졌다. 사람들은 남편의 사투리를 따라 하며 웃기도 하고, 고향의 들풀이라도 만난 듯 선뜻 손을 내밀기도 했다. 자리가 부족해지면 신문지나 종이상자를 내주었는데, 그것이라도 좋다며 여기저기 길바닥에 깔고 앉았다. 멀찍이 서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사투리에 코가 꿰어 슬금슬금 다가오곤 했다.

남편의 말은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작은 섬에서 왔다. 섬사람의 말이라서 그럴까. 그가 말하면 푸른 파도가 출렁이고 짜디짠 바닷바람이 부는 듯했다. 친정에서도 “해버렸당께요오.”, “으째 근다요이?”, “하쇼나.”같은 사투리를 하면 식구들이 웃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호남 사람이라고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을지 걱정되었던가 보다. 누군가 말투를 고쳐 보는 게 어떻겠냐고 귀띔했다.

남편에게 사투리는 허리춤에 꽂아 두고 수시로 쓸 수 있는 고향의 호미 같은 것이다. 호미는 달리 배움도 기술도 없는 남편이 가장 자신 있게 쓸 수 있는 연장이다. 그걸 버리고 나면 무엇으로 빈 목구멍들을 채울 수 있을까? 나는 남편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밥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호미질을 했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호미 날이 쉬 먹힐 리 없지만, 힘을 다해 도시의 밭을 조금씩 일궈 나갔다. 이제는 공사 현장에서 크레인이라는 번듯한 연장을 다룬다. 하지만 딱딱한 아스팔트를 일구기엔 크레인으로도 어림없는 일인가 보다. 전화벨이 울리자 재빠르게 호미 자루를 손에 잡았다.

“오메, 소장님. 오랜만이여라우. 잘 지냈소? 아따, 굶어 죽겄소. 우리 차 좀 자주 불러 줘라우.”

집에서 쉬는 날에도 남편은 거래처 사람들과 사투리로 말문을 튼다.

하루 벌어 하루를 먹고 사는 사람에게 뻣뻣한 말이 가당키나 할까. 허리를 숙이고 말의 흐름결을 타야 다음 약속을 받을 수 있다. 때로는 움츠러들어 옴짝달싹 못하는 순간도 많았을 거다. 그럴 때마다 단전에 힘을 모으며 스스로에게 들려줬을 고향의 추임새, “아따!” 이 한마디를 뱉고 나면, 크게 한 발을 내디딜 용기도 생겼을 거다.

아들은 제대 후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자 아버지 일을 배우겠다고 했다. 스스로 내린 결정이 반갑기도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지 염려도 되었다. 남편은 아들에게 일당을 주면서 일을 가르쳤다. 그건 혹독한 훈련을 잘 견뎌내고 하루도 빠지지 말라는 말 없는 격려였다. 그 덕분인지 아들은 꼬박 석 달간 따라다니며 장비 조종뿐 아니라 여러 돌발 상황에도 능숙히 대처할 줄 알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저녁 식사 자리가 불편한 날이 더러 있었다. 그런 날은 아들이 실수를 해, 호되게 혼이 난 날이었다. 둘이 뚱하고 앉아 있으면 집안 공기가 살얼음을 딛듯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다음 날 새벽에 어슬어슬 따라나서는 아들을 보면서 적잖이 안도했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는 서로 다른 공사장에서 독립 운전을 한다. 남편은 어제 아들이 일했던 현장에 들렀다가 아들의 사투리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나는 “사투리 영업술까지 배웠네.” 하고 웃었지만, 남편의 표정은 어두웠다. 사투리까지 쓰게 한 것이 미안했을까. 말씨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이라도 떠올랐을까. 가끔은 말보다 불편한 눈빛에 더 마음이 베이기도 했을 것이다. 사투리를 써서 얻게 되는 이익보다 어둠 한 조각을 물려줄까 봐 걱정했던 건 아니었는지….

이번 겨울은 아들이 한데서 일하는 첫 겨울이다. 허허벌판 공사장에서 일하다 보면 몸 녹일 데도 마땅치 않다. 겨울 나목처럼, 오롯이 제 힘으로 견뎌야 한다. 훗날 봄이 오면 아들도 가정을 꾸리게 될 텐데, 그때가 되면 아들의 사투리는 얼마나 구뜰해질까.

저녁 밥상에 우렁이 된장찌개를 올렸다. 아들 입속에 한입 가득 밥이 들어간다. 아직은 제 아버지가 벌어온 사투리 밥이다. 물끄러미 아들을 보던 남편이 우렁이 한 국자를 떠서 건넨다.

“아나, 싸득싸득 머꺼라이이.”

젊은 날, 거리에서 손님을 부르던 그의 소리가 말끝에 묻어난다. 시간이 흘러도 남편의 언어는 늘 현장 속에 머물러있나 보다. 짜디짠 바다 내음이 밥상에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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