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각화水刻畵1.2.3 / 이산
수각화1
앵두나무 그늘, 처음의 꽃이 지고 있다. 후후 숨을 뱉는 것들이 동그랗게 자란다. 오래도록 피어있는 그늘 밑에서 여러 생이 높고 낮은 음音으로 몸을 바꾼다. 절로 외진 앵두나무가 붉어진다.
저 물속에는 모래밭을 핥아가는 수많은 입이 있다. 재첩은 편애하는 물의 색과 빛을 가지고 있다. 색의 기미를 한 올 한 올 제 껍질의 무늬로 새긴다. 저 강이 깊은 것은 재첩들이 푸른 낮의 공기를 내뱉고 있는 까닭이다.
재첩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는 돌확에 물비린내마저 갈고 있다. 돌과 껍질이 매끄럽게 갈린다. 파랗게 생긴 살이 흩어진다. 햇빛을 갉아먹은 것들의 살이 새까맣게 윤기를 뱉는다. 나는 미끄러지듯 돌확 쪽으로 귀를 바짝 세운다. 반쯤 몸만 남은 아버지, 닦아도 닦이지 않는 검버섯이 하루아침에 늘어났다. 덩달아 아버지의 잔기침소리가 슬금슬금 어두워진다. 초여름인데 아직도 산골은 서늘하고 물줄기는 침묵으로 더 깊어진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침을 달래는 방법이 재첩국에 있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재첩을 돌확에 갈 때마다 수백 번 왔다 갔다하는 정신으로 앵두 익는 소리를 엿듣는다.
놋주발엔 새파랗게 빛나는 것이 수북하다. 여울에서 자란 것들이다. 달이 뜨는 밤, 모래톱은 재첩을 살찌우고 구름이 이동하는 쪽으로 밀어둔다. 물살이 어긋나는 곳에서 군락을 이루게 해줬다. 불거지 옆구리에 박힌 무지개빛은 재첩의 작은 등불이었으리라.
돌확에 갈린 재첩은 제 안의 소리들을 몽땅 토해놓고 죽는다. 그때 어머니는 팔꿈치 저린지도 모르게 정지 쪽으로 간다. 강에 나가 들어오면서 텃밭에서 뜯어놓은 부추를 잘게 썬다. 냄비에서 끓어 넘치는 재첩국에 넣고 숨만 죽여 내온다.
몸과 정신이 다른 쪽을 응시할 때, 병이 온다고 했다. 손톱을 자꾸 깨무는 아버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저승 문턱을 내다보는 걸까? 아버지의 옆구리는 수렁보다 깊게 파여 있으니, 핏빛 그림자를 지울 수 없다. 저 몸의 징후를 따라가면 밥풀로 문풍지 붙이는 저녁과 첫밤 보내는 신혼일기를 훔쳐볼 수도 있겠다.
반쪽의 폐허를 위해 재첩국을 끓여 내오는 어머니가 있어 오늘도 아버지는 더운 숨을 뱉는다. 물이끼 짙은 처마 밑에서 아버지는 한여름을 마신다. 후후 불면서 국을 후루루 마시는 한낮도 낮달같이 휜 허리를 잠시 펴본다. 아버지는 고난이란 말과 후회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본 적이 없다. 몸이 어지러웠지만 숨만 잘 쉬어도 삼십년을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어머니는 미수를 앞둔 아버지를 방에 두고, 이제는 논과 밭일도 시키지 않는다. 불평과 불만을 앞세우고 살 수 있겠지만 어머니 역시 죽은 발톱을 오래 바라보면서 죽음은 아무리 불어도 쉽게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머니는 열아홉에 시집와서 지금까지 섬진강을 떠나본 적이 없다. 물소리 짙은 강가에 줄곧 재첩을 잡는 일만 해왔다. 살가죽과 눈꺼풀이 주는 잠을 이겨내면서, 어머니는 물속에서 침묵하는 법으로 아이를 낳았다. 봄빛이 자리를 그늘 쪽으로 옮겨 앉듯 어머니는 세상에 나가는 법을 강물 속에서 익혔다.
재첩은 침묵이란 전류를 곡선으로 키우고 있어 껍질도 반달모양일까? 혈액을 펌프질하는 심장을 기이한 존재로 바꿔놓은 힘도 지녔을까? 잠이 가려운 아버지의 몸이 달라지고 있는 초여름, 내 몸도 이미 재첩 냄새로 뻥하고 뚫린다.
초록빛 재첩 국물을 한 대접 마시는 아버지, 칼칼하게 뜨거워지는 걸까? 더 갈데없는 시원함과 조우하게 되었다. 한꺼번에 찾아드는 피들이 얼음장의 살갗을 내상으로 뚫는다. 죽음이나 비애는 얼룩으로 남지만 재첩국은 아버지의 몸에 난 저승꽃을 지운다.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속에서 녹아 없어지고, 숨을 쉬는 것들은 저렇게 온갖 에너지의 파편으로 되살아난다. 아버지의 머리카락이 아직도 검은빛을 띈 이유다. 아버지 역시 폐허에 대한 편견도 없이 살아왔으니, 이미 죽은 옆구리로 삶이 헛되지 않도록 꼿꼿이 서고자 했다. 산에서 자란 아버지와 물소리로 자란 어머니는 눈길 자주 닿는 곳에서 운명이 정한 자식을 아홉이나 두었다. 속이 다비치지는 않지만 새파랗게 투명해서 침묵을 편애하는 자식을 두었다.
앵두나무 그늘 평상에 아버지가 잠시 눕는다. 바람이 물소리를 베갯머리에 실어다주고 산 그림자를 잠자리로 옮겨주*는 소리가 들린다. 차고 맑은 북쪽 산그늘이 강줄기에 제 그림자를 담는다. 물속을 걷고 또 걷는 재첩들, 모래톱과 함께 자란다. 폐 한쪽으로 살아가는 아버지, 저 물속 세상에 빛을 처바르고 있는 노을빛처럼 끓는 잔기침을 뱉는다. 손톱과 발톱이 흙빛 실금으로 갈라진다. 어머니의 몸엔 서럽고 가난한 생활이 물비늘로 피어 오르고, 아버지 몸엔 세상 마지막인 듯 윤슬이 반짝거린다. 나는 그것을 저물면서 빛나는 수각화水刻畵라고 부른다.
*『벽암록』에서 인용
수각화2
소나무 그늘에 새소리가 걸리는 초저녁이다.
강물 속에서 낯을 씻는 하늘이 출렁했다. 물소리를 붓끝 삼아 꼬리에 감아둔 것들이 헐렁한 시월에 잠긴다. 저 달의 언덕에서 바다의 그늘로 살던 것들이 왔다. 아무도 오지 않는 물의 골목으로, 아무도 찾지 않는 물의 골목으로 가을빛을 물고 왔다. 여름의 서늘한 물이끼는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햇볕만 가득한 시월이 물속 조약돌까지 내려와 있다. 저 햇볕을 쫓아가는 연어는 죽음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을 것만 같다.
오늘도 차고 비린 물소리가 지리산을 돌아나온다. 섬진강의 윤슬이 잔잔한 아침이다. 섬진강은 곁가지로 물길을 내고 새파랗게 물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물비늘이 산길 내려오는 비탈길마저 잘 비춰준다. <회귀연어자원량조사>를 위해 아버지는 쇄골까지 끈이 올라오는 물장화 옷을 입고 그물을 치는 중이다. 연어는 지리산 천황봉에 첫서리가 내리면 돌아온다고 했다. 여울목에서 연어는 물비늘 숨을 내쉰다.
아버지는 연어일지를 쓰는 물결을 집까지 데리고 온다. 잠시 방이 물결무늬로 찰랑거린다. 나는 섬진강에서 태어난 갈대바람이다. 물소리는 물을 밀어내고 물은 바람을 쓸어내리는 계절, 외려 등줄기는 맑아진다. 하루살이 떼가 사라지고 없으니 습기 찬 아궁이에 군불이 들어온다. 훅,훅, 화염을 내뿜는 아궁이, 굴뚝의 꽃잠을 흔들어 깨우기 시작한다.
나무냄새가 나는 연기는 집의 영혼을 떠메고 날아간다. 그때 나는 아버지가 데리고 온 물결을 읽는다. 그 물결은 날이 어두워지면서 피리소리를 낸다. 수평선에서 멀어진 피리소리, 낮은 처마 밑에서 숨을 고른다. 민물자국이 눈동자에 번진다. 오밤중인데, 물줄기를 찢는 연어의 아가미들이 으쓱해지는 걸까? 나는 산 너머 벼랑의 가을빛이 연어로 돌아오는 물길을 갈라지게 한다고 믿었다. 연어는 물소리를 꼬리에 키우고 살고 나는 갈대바람을 목청에 키우고 산다. 데미샘*이 고향인 나는 물소리에 어둔 몸을 녹인다. 물의 영혼이 머무는 자리에 연어를 가두는 꿈을 떠올린다. 연어가 한 가닥 물길을 왜 찾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연어는 영혼이 비치지 않는 물소리인데, 가을빛 몇 번 건너가면서 어미를 그리워한 죄로 지느러미를 씻는다. 물 위의 별자리이지만 땅기운 아른거리는 지리산에서 어미로 다시 환생한 거다.
오늘도 물줄기를 찢으면서 연어들이 북회귀선을 벗어면서 밀물을 탄다. 날짜변경선을 찢으며 그물망을 뚫어본다. 그러나 이빨이 새까맣게 빛나는 수컷은 수컷끼리 옆구리 벌겋게 아름다운 암컷은 암컷끼리 수족관으로 들어간다. 저 연어들이 아버지의 주름살을 접는다. 주름살 하나 또 접히듯이 연어마저 물비늘 냄새만으로 물길을 훤히 알고 간다. 아버지도 일 년에 딱 한번 눈을 감고 연어를 잡는다. 보석으로 결정되지 않는 아가미에 쩍쩍 금이 가 있는 연어들, 제 고향에 가 닿을 때까지 먹이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새까만 이빨마저 깨지고 없었다.
아버지가 자고 일어나면 산그늘이 더 깊이 내려와 있고, 또 연어들이 팔랑팔랑 물결을 젓는 소리가 들린다. 연어는 자꾸자꾸 산그늘 속으로 들어가고 돌 속으로 들어간다. 아상과 아집도 없이 아버지의 힘줄은 도드라지고, 아버지를 앞지르고 있는 것들은 서리 머금은 단풍 밖에 없다. 아버지는 지리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죽으면 물비늘이 된다고 믿었다. 또 그 물비늘이 연어의 몸에 들어가면 다시 모질고 독한 생명붙이로 태어난다고 믿었다. 나의 가계家系는 저 지리산 물줄기에 떠내려가지 않는 구름에 숨어있다. 할아버지는 구불구불한 강가를 떠도는 누더기 구름이 되었고, 할머니는 물비린내 야금야금 갉는 먹장구름이 되었다고 했다.
요 며칠 사이 바람신과 짐승과 사람이 좋아하는 빗소리가 다녀갔다. 빗소리는 구름바다를 떠나와서 집으로 가는 것들의 발자국인데, 아버지의 연어보고서에 짧은 편지를 적어두었다. <얘야, 아직은 물길 막지 말아라 오늘은 옛집까지 다녀와야 한단다, 거기 외면할 수 없는 데미샘이 있단다.>
아버지는 가을비 지나간 냇가의 차돌덩어리에 앉아 흐르다가 엉키는 것들을 생각한다. 점성술사도 아닌데 연어와 물비늘과 지리산 아래의 세상을 내다본다. 밑바닥이 잘 보이는 섬진강, 모래와 자갈과 잡초뿌리와 나무그늘이 엉켜서 살고 있지만 뜨내기 생명붙이들은 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강줄기에 붙어사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리산은 사람이 그리운 골짜기에 물불의 아름다움으로 찰랑거리고 있으니, 바위틈에 엉키는 잔뿌리로 아버지의 수각화를 엿듣고 있겠다.
*섬진강 발원지
수각화3 --무덤
무덤과 무덤 사이엔 헛묘가 있다. 무덤 속을 쉽게 드나드는 것은 화사나 능구렁이 밖에 없다. 지금은 삘기가 피는 계절, 햇볕이 주름살 깊이 파고든다. 아버지는 농사일이 한가 할 때마다 무덤을 깎는 일을 했다. 무덤은 원래 고봉밥 높이로 떠 있었지만, 폭풍과 눈보라와 빗줄기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뗏장의 삼 할이 낮춰져있어 민달팽이같이 편편하다. 아버지는 수렁논 세마지기를 짓고 싶어 무덤을 깎고 산을 돌보는 일을 했다.
메뚜기들이 튄다. 방아깨비는 구시렁대듯 속치마 날개를 편다. 잡풀들이 예초기에 깎여나간다. 외려 바짓단을 감는 풀냄새는 더 짙어진다. 무덤 사이 조심조심 걷고 있는 아버지 모습이 꼭 죽음의 주소를 찾고 있는 저승사자 같다. 바람의 색깔이 된 초목들은 영혼 따위는 없다고 자랐지만 아버지는 산골짜기를 날아온 삘기 꽃씨들이 무덤을 키운다고 믿는다.
아버지는 아홉 빈상의 무덤을 깎았다. 눈에 밟히는 것은 멧돼지가 파놓은 구덩이가 아니다. 졸참나무 그림자에 숨긴 헛묘 두 개다. 선산이 없어 이쪽 산과 저쪽 산의 경계에 써놓은 묘라고 했다. 죽어서도 맘 편하게 갈 곳이 없는 아버지, 자식들 몰래 흙덩어리 오두막을 지어놓았다.
햇빛에 잘 마르고 바람이 잘 통하는 헛묘, 아직 그 속이 비었으므로 구멍을 치고 새순을 밀어 올리는 것들이 산다. 차고 푸른 비늘로 대가리 꼿꼿하게 세우고 있는 것은 화사다. ‘꽃막대기’ 같지만 목을 길게 빼고 자주 울어서 ‘꽃피리’라고 부른다. 들쥐와 참개구리를 잡아먹었는지 흰 껍질이 찢겨 있다. 땅땅했던 것들이 쉬이 꺼지는 계절이지만 화사는 노을빛에 제 영혼을 맑게 개어본다. 물방울 소리로 눈을 떴다가 사라지는 별빛이 무논에 비친 무덤 속으로 떨어진다. 그래서 밥그릇모양 저승 한 채를 끌어들이는 무덤을 깎는 일은 숭고하다. 아버지가 한숨 돌리던 자리, 영원히 해갈되지 않는 죽음의 언어들이 고사리나 삘기로 피어난 느낌이다.
한번은 무덤 깎는 일이 힘들어서 들불을 놓은 적이 있다. 그때 새까맣게 탄 것은 무덤이 아니라 아버지였다. 해가 들지 않는 땅속 그늘과 산그늘마저 다 태워먹었다. 그때 아버지는 저승 문턱 두드리다가 돌아왔는지, 무덤가에서 참숯 몸뚱이로 발견되었다. 죽었다가 되살아났지만 꿈에서 본 풍경을 잘 기억했다. 숭늉 한 그릇 마시면서 꿈 이야기를 했다. 주막집 아그배나무 밑에 노새를 매어두고, 저녁밥을 먹고, 책보에 쌓아둔 족보를 읽다가 그만 졸았는데, 깨어나 보니 마른 번데기처럼 딱딱한 씨앗으로 몸이 바뀌어 있었다고 했다. 눈썹과 정수리가 눈물자리 굽어보듯 아버지는 서리 꺼지는 극락강의 새벽을 시나브로 건너왔다고 말했다.
그날 이후 아버지의 눈빛은 저승사자마저 쓸쓸한 헛것으로 여겼다. 여전히 무덤 열리는 소리가 영정사진 속으로 숨어든다는 미신을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무덤에도 급이 있고 명맥도 있어 묫자리를 쓰지 못하고, 끼어들지도 못하겠다고 말했다. 산뽕나무처럼 곧게 말라가는 다리와 눈물샘에 고인 눈곱이나 떼면서 이끼 낀 성곽에 사는 누이나 친구들이 자주 꿈에 비친다고 했다. 이따금 뒷간과 뒤주 잘 있냐고 물어보는 할미가 아직 올 때가 아니라고 퉁박만 놓고 사라지곤 했다. 죽음이란 두꺼비집 퓨즈 나가듯 빛이란 정신을 잃는 것인데, 아버지는 무덤을 깎고 귀신들과 대화하고 돌아온 밤이면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느라고 끙끙 앓는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벌써부터 귀신들의 보행법을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얼굴과 손등엔 반전과 저승꽃이 많아졌다. 그러나 눈물샘은 고단한 일생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아랫도리가 잠시 헐거워진 아버지! 오늘도 한사코 맨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어두운 지층 속에 길을 만들고 있는 무덤의 안부를 살피러간다.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덤과 가까워지는 법을 배우러 가는 것이다.
그런 날에는 아버지가 태워먹은 산으로 어머니가 간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고사리를 꺾는 어머니, 분주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한날한시 이렇게 대가리 새파랗게 내밀고 있던 것들이 많았던가. 어머니 얼굴에 핀 반점이 검버섯으로 묽어지면서 더 이상 콧노래를 들을 수가 없다. 이제 저승 건너갈 힘으로 육개장에 넣을 고사리 관冠을 찾는다. 봄볕처럼 사흘이 멀다 하고 고사리와 사랑에 빠진다. 이 봄날을 견디기 위해, 어머니 간식으로 싸온 주먹밥을 꼭꼭 씹어 드신다. 그리고 돌밭의 눈과 귀가 심심해하지 말라고 고들빼기 씨앗을 뿌려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숨 쉬는 것마저 힘든 아버지는 죽음만은 양보할 수 없다고, 어머니 몰래 무덤가에 가 먼저 누워본다. 하늘 쪽으로 흘러가는 저 낮달이 눈꺼풀을 열고 들어온다. 가뭇없이 사라져도 좋겠다고 늑골 사이로 밀쳐두었던 기침 몇 개가 솟구친다. 송장메뚜기처럼 일어서니 틀니로 웃는 아버지의 잇몸이 촉촉해 보인다. 저 북망산천이 있는 곳에서 쌀 씻어안치는 소리가 들린다. 무덤은 처음부터 알 까는 것들이 살고 있어 이승과 저승이 한통속이겠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지상에 유감없이 출현하는 잉잉대는 벌떼소리에 귀를 내어준다. 그때 두꺼비메뚜기가 무덤을 등지고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