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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잇잠 / 조이섭

에세이향기 2025. 12. 28. 08:57

잇잠 / 조이섭

 

금오산 자락 철화백자 달항아리 전시장이다. 하늘에 걸린 둥근 달의 여신들이 강림한 크고 작은 달항아리는 제각기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는다.

특별히 높이가 50cm 이상 되는 대호大壺, 달항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순백이나 우윳빛 피부에 그린 산과 굽이친 소나무 철화 그림은 무릎에 난 상처 딱지처럼 거칠고 투박하다. 산과 소나무에 자리를 내어주고, 여백으로 존재하는 고요한 선과 면을 따라 가면 누님의 무명 치맛자락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대호는 크기가 커서 두 반구의 입술 부분을 아래위로 이어 붙이는데, 그 이음매를 ‘잇잠’이라고 한다. 도공이 손수 이어 붙이고 다듬느라 생긴 옅은 선이 부드러운 울림으로 남는다. 흙이 가진 원초적인 힘과 뜨거운 불이 결합한 흔적인 잇잠은 흠집이 아니다. 서양 도자기의 완벽한 대칭과 달리, 불균형을 드러내는 멋이 담겨 있다.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연잎 하나의 여유가 미적 절정을 보여 주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달항아리에서 왠지 모를 충만함을 느낀다. 조명의 방향에 따라 달무리 지는듯한 환상 속에 드러나는 흙의 결과 색감이 인상 깊다. 달항아리의 자태에 흠뻑 반해 있을 즈음, 달포 전에 있었던 이별이 겹치면서 돌연 숙연함에 빠져든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자형이 오늘을 못 넘길 것 같으니, 영결 인사라도 나누라는 연락이었다. 병실에서 두 손을 붙잡고 인사를 드려도 초췌한 얼굴에 감은 눈은 요지부동이다. 평시에 앙다물어 강인한 인상을 주었던 입도 ‘아’ 하고 크게 벌린 채다.

이승의 끈을 놓기가 저리 어려운 걸까, 수년째 신장과 당뇨가 좋지 않아 고생하는 터였다. 죽어도 신장 투석은 하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누님이 십수 년간 집에서 혼자 수발을 들었다. 누님도 적지 않은 나이에다 뇌출혈로 쓰러진 적까지 있어 자식들 걱정이 또 하나 겹쳤다. 노인이 노인 수발 하다가 둘 다 놓칠까, 노심초사다. 집과 요양원을 오가기 몇 차례 하다가 병원으로 모신 지 열흘 만에 이렇게 불시에 집합한 것이 벌써 여러 번째라고 했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만 깊은 게 아니라, 이별의 두려움도 깊어지는가 보다.

누님이 자형의 이마와 볼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한 손으로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보, 당신이 사랑하는 나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안 떨어 지지.”

미동도 없던 눈을 살짝 뜨는 듯하다가 도로 감겼다. 듣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당신과 내가 철없을 때 만나 결혼하고 이날 이때까지 원 없이 사랑하면서 살았잖아. 당신이 나를 사랑한 만큼 나도 당신을 많이 사랑했어.”

환자의 입언저리가 움찔하는 것 같았다.

“이제 아이들 다 제 밥벌이하고, 손자 손녀들도 하나 같이 착하잖아… 나도 아직 건강하고, 당신과 내가 그토록 힘들게 벌고 아껴 둔 노후 자금이 있어 아무 걱정 없다… 이제 한 평생 고생하면서 살았던 이승을 그만 떠나도 된다… 나도 곧 따라갈 테니, 부처님 옆에 참한 자리 하나 잡아 놔… 여보 사랑해, 행복했었어….”

흐느끼며 한 마디, 목이 메어 두 마디. 토막토막 이어가던 말을 마치자, 핏기 없는 입술에 누님의 입술을 살포시 포갰다. 순간, 자형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마지막 남은 의지와 힘으로 만들어 낸 눈물 한 방울, 사위어가는 영육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바치는 진주 한 알이었다. 그러고는 이내 편안한 얼굴로 자는 듯이 세상 끈을 놓았다. 젊은 남녀의 만남조차 흉이 되던 시절에 연애 결혼하여 60년 가까이 함께 이어온 삶을 마감했다.

달항아리의 반구 두 개가 잇잠으로 하나 된 부부다. 물에 갠 흙으로 잇는 듯 마는 듯 해둔 달항아리 잇잠이 1,000℃의 불길을 견디고, 긴 세월 지지고 볶으며 단단해졌으니 떼어내고 돌아서기가 어디 쉬우랴. 자형은 지난한 삶 속에서 가없이 채워 낸 사랑을 눈물 한 방울로 완성하고 떠났다. 달빛 드는 창가에 놓아둔 달항아리 어깨에 달이 내려앉으면, 누님의 그리움은 옥양목 손수건으로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하늘의 달을 두고, 붓으로 그리는 화가가 있는가 하면, 흙으로 달항아리를 빚는 도공이 있고, 그 달항아리를 그리는 화가가 있다. 수천 개의 달항아리를 펼쳐 놓은 설치미술가도 있다. 달을 사랑하고, 거기 숨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인(藝人)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우리도 제각기 물레를 돌려 빚고 굽는다. 달항아리의 표면에는 산과 강, 소나무를 그려 넣고 저마다의 이야기를 새긴다.

나는 하염없이 허공에 떠다니는 마음 한쪽을 글로 새겨 세상에 내보인다. 또 다른 마음 한쪽은 달항아리의 넉넉한 품에 숨기고 숙성하기를 기다린다. 바깥에 새긴 마음이야 바람결에도 흔들리지 않겠지만, 달항아리에 담은 마음은 작은 바람에도 잔물결이 인다. 마음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고 했는데…….*

 

* 강익중. 『마음에 담긴 물이 잔잔해야 내가 보인다』. 송송책방. 202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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