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담을 수 있을까 / 김수우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서자, 흙냄새가 내 안으로 밀려들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땅속 깊은 세계의 체취. 석고 가루가 공중에 떠돌고 있었다. 하얀 먼지 너머로 선반 위 그릇들이 품은 곡선에 시선이 머물렀다. 청자 유약이 흘러내린 자국, 내 얼굴을 비추는 백자의 투명함, 철유가 한밤처럼 깃든 몸체들. 나는 그 완벽한 곡선들 사이를 지나 작업대 앞에 섰다.
도예 공방 선생님이 내민 흙덩이는 예상보다 더 차가웠다. 손바닥에 올려놓자 내 체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러나 그 온도로 흙을 덥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불은 아직 멀었다. 먼저 손끝으로 흙을 납작하게 밀어 올려야 했다.
내가 속한 초급반 목표는 단출했다. 손빌딩으로 그릇을 만들 것. 석고 표본의 몸뚱이를 따라 흙으로 모양을 잡고, 가장자리를 다듬은 다음에 해무리굽을 붙이면 끝이다. 선생님 시범을 눈대중으로 따라갈 때는 만만해 보였건만 막상 내 손 아래에서 흙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릇 벽이 어느 부분은 두껍고 어느 부분은 종잇장처럼 얇았다. 힘 조절에 능숙하지 못한 탓이리라. 이러면 굽는 과정에서 모양이 일그러질 게 뻔했다. 설사 멀쩡히 완성된다 하더라도 사용하면서 쉽게 깨질 터였다. 해무리굽은 또 어떠한가. 위치를 잘못 잡는 바람에 한 번 붙였다가 떼어내 자리를 옮겼더니 이음새가 영 엉망이었다.
옆자리 수강생은 나보다 한참 어려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손끝에서 나온 그릇은 놀랍도록 단정했다. 균일한 두께, 매끄러운 곡선, 마무리까지 흠잡을 데 없었다. 나는 감탄과 동시에 씁쓸한 심정으로 내 손 아래에서 뭉개진 흙덩이를 내려다보았다. 도대체 이런 그릇에 무얼 담을 수 있을까. 밥을 푸면 기울고, 국을 부으면 새어 나올 것이다. 참으로 쓸모없는 그릇을 빚었단 생각에 입안이 쓰게 메말랐다. 손에 묻은 흙을 씻어내며 싱크대 위, 거울처럼 맑은 수전을 들여다보았다. 반사된 내 얼굴이 내 그릇처럼 뒤틀려 보였다.
작년 이맘때, 오래 다닌 회사가 문을 닫았다. 코로나 이후 휘청거리던 회사는 한순간 폐업 처리되었고 나는 마흔을 앞두고 거리로 내던져졌다. 곧장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시장은 냉혹했다. 신입 자리는 나이에서 막혔고 경력직 공고는 드물었다. 겨우 빈자리를 찾아 이력서를 넣을 때마다 ‘연령 초과’와 ‘경력 부족’이라는 문구가 번갈아 가며 되돌아왔다. 내 쓸모란 참 애매했다. 도예 공방에 등록한 건 어쩌면 그런 질문들로부터 잠시나마 도망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결과는 가마에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어요. 어떤 그릇은 휘어지거나 깨지기도 할 거예요. 1200도 불길을 견뎌야 하니까요.” 나는 그 말씀을 오래 되뇌었다. 내 그릇은 어떨까.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이미 뒤틀린 형태가 불 속에서 더 일그러지진 않을까.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그릇들을 가마 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꺼운 문이 닫히며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금방이라도 지상의 모든 숨소리를 삼킬 듯한 정적 속에서, 사흘 동안 그릇들은 불을 견딜 것이다. 단단해지거나, 혹은 산산이 부서지거나.
그사이 나는 매일 구직 사이트를 켜고, 또 껐다. 한 통의 메일이 도착했다. ‘귀하의 역량을 높이 평가하나…….’ 그 뒤는 읽지 않아도 알았다. 머릿속에서 가마의 열기가 맴돌았다. 천도를 훌쩍 넘는 열기. 나는 지금 어떤 온도 속에 있는가. 이 열기를 견디고 나면, 어떤 형태로 남을 수 있을까. 밤마다 뒤척였다. 그럴 때마다 희미한 파열음이 들렸다. 마치 내 안 어딘가에서 금 가는 소리가 나는 듯했다. 그 소리는 두려웠지만, 동시에 살아 있다는 증거 같기도 했다. 미처 식지 않은 불의 온기가 나를 완성으로 이끌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 다시 도예 공방을 찾았다. 선반 위 그릇들 사이에서 내 작품은 단번에 눈에 들어왔다. 몸체가 비스듬히 기울고 가장자리는 잔물결처럼 일렁였다. 유약이 흘러내리다 멈춘 자리에 검은 점이 박혔다. 뒤틀린 형태, 고르지 못한 두께, 어긋난 곡선. 모두 내가 서투른 탓이었다. 불은 그것을 감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선명히 드러냈다. 가마 속 뜨거운 열기는 내 결점을 태우거나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굳혀 단단한 형태로 남겨두었다.
과연 이것을 그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선생님, 여기에 뭘 담을 수 있을까요?”
내 물음에 선생님은 그릇을 한참 들여다보시더니, 조용히 웃으셨다.
“박물관에 있는 그릇들은 아무것도 담지 않아요. 그 안엔 시간이 담겨 있거든요. 견뎌낸 시간이요. 그 자체로 예술품이죠.”
견뎌낸 시간. 그 말이 가슴을 쳤다. 나는 늘 ‘무엇을 담을 수 있는가?’로 그릇의 쓸모를 판단했다. 사람의 쓸모도 다르지 않다고 믿었다.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야만 존재 이유가 증명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릇을 들어 손바닥에 올려보았다. 차가웠다. 그러나 그 차가움은 흙을 처음 만졌을 때 느낀 냉기와는 달랐다. 불을 통과한 사물만이 지닐 수 있는 기품이 차분하게 깃든 온도였다. 1200도 불길을 견디느라 온몸이 뒤틀렸지만, 끝내 부서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그릇을 창가에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비스듬히 쏟아진 햇살 아래에서 그릇이 달리 보였다. 유약이 녹아 흐르며 만들어낸 빛깔을 처음엔 지나치게 푸르다고 여겼다. 하지만 빛의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청색은 묘하게 마음을 붙잡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아름다움의 근원은 균열이었다. 표면에 남은 미세한 틈마다 태양빛이 머물러 알알이 반짝였다.
그렇다, 내가 만든 그릇은 빛을 담았다. 비로소 ‘담는다’라는 말이 품은 의미가 내게도 스며들었다. 담는다는 건 단순히 무엇을 채워 넣는 행위가 아니라, 그 안을 지나간 시간은 비우고 오늘 떠오른 태양을 머금는 일이라는 걸. 나는 구직 사이트를 끄고, 커튼을 활짝 열었다. 빛이 방 안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그 빛 속에서 나는 내가 견뎌온 시간을 보았다. 뒤틀리고 금 가고 일그러졌으나, 끝내 부서지지 않은 시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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