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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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가시오이 / 김분홍

에세이향기 2026. 3. 26. 09:04

가시오이 / 김분홍

 

골목이 깨어난다 넝쿨을 뻗는다 야생이 꿈틀거리는 골목, 일용직을 전전하는 내가 갉아먹을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골목에서 입구가 출구를 복사한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지지대에 매달려 성장하는 가시오이는 여름을 구부리기도 펴기도 하는 그늘막이다 매달리는 일이 직업이라서 기둥 없는 기둥서방에 매달리고 햇살 없는 햇살론에 매달린다 그늘막이지만 그늘이 성겨서 저만 더위를 견딘다 가을 풀벌레가 유일한 MP3인 이 골목에 풀벌레들이 음원을 튼다 넝쿨은 위로도 밑으로도 뻗는다 마이너스 통장의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뻗는다 매달릴 일이 까마득한 사람들은 바닥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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