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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요강송 / 정장영

에세이향기 2026. 4. 3. 09:12

요강송 / 정장영

 

 

나이 지긋한 사람들은 밤중에 윗목에 놓인 요강에 시원하게 방뇨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요강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그나마 그것이 없었다면 요즈음같이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자다 말고 소변이 마려우면 뒷간까지 가야 한다. 그러니 깜깜하기도 하고, 겨울이면 춥기도 할뿐더러, 무섭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여 더러는 참기도 했었다.

배설排泄은 흔히들 건강을 위한 삼쾌(쾌식快食, 快眠, 快泄)의 하나다. 지금 생각하니 요강이란 걸 만들어 사용한 조상님들의 지혜가 참으로 훌륭했음을 느끼게 된다. 혹자는 비위생적이라고 했다지만 그건 속을 모르는 소리다. 날마다 정성껏 닦으니 안팎이 번쩍거려 그 이상 깨끗할 수 없고, 이름 그대로 요강일 뿐이다. 마음속으로 꺼림칙함을 일컫는 '요강 뚜껑으로 물 떠먹는 셈'이란 속언이 남아 있을 정도다.

어렸을 때 밤에 귀신 이야기를 듣고 나서 요강을 가지러 마루로 나가는 일은 참으로 무서웠다. 마당에 함박눈이 쌓이던 그 춥고 긴 칠흑 같은 겨울밤이면 더욱 요긴하고 자기 전에 꼭 챙겨야 할 침구였다. 서양식 화장실이 집안으로 들어온 뒤로 요강은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요강은 전통한옥에서는 우리 특유의 이동용 실내 변기로 안성맞춤이었다.

예로부터 뒷간과 처갓집은 멀리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시대 환경이 변했다. 요즘이야 오강인지 요강인지조차 모르고 살지만 1790년대까지만 해도 시집갈 때 놋요강이 빠지면 '반쪽 혼수'라고 실쭉거릴 정도로 요긴한 품목이었다. 아내의 혼수용 '요강과 대야'는 빛을 못 보고 골동품 신세로 전락한 지 오래다. 가끔 사 가겠다는 골동품 수집상들의 성화에 계속 간직할까 말까 다시 한번 생각 중이다.

옛날엔 신행길에 새 각시의 가마 속에는 으레 요강이 들어있었다. 친정어머니가 몰래 요강 속에 앉혀둔 목화씨는 창으로 그윽한 모정의 징표였다. 가마 탄 색시가 밖에는 가마꾼들이 있는데 '좔좔' 소리를 내며 오줌을 눌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요강 속에 넣어 둔 그 목화씨는 그 소리를 죽이는 역할을 해냈다고 한다.

안방에 들여놓은 요강은 어린이는 물론 환자나 노약자들의 배뇨에 필수품이었다. 밤새 뒷간 드나드는 수고와 가족의 수면방해를 덜어주니 그 얼마나 은근하고 천연덕스러운 지혜인가? 깜깜한 밤 고의춤을 비집고 요강 단지를 달랑 드시는 아버지, 궁둥이 까고 앉는 어머니의 '좔좔' 소리가 애들에게는 꿈결에 듣는 소리였지만 거기에는 격식 없는 진솔한 믿음과 신뢰가 배어있는 혈육의 호패가 됐던 것이다.

요강만큼 우리 삶의 흔적을 많이 함축한 것도 흔치 않다. 염치가 중했던지라 낮에는 딴전 부리듯 마루 한 쪽에 눈에 띄지 않게 엎어두지만 저녁에 부엌일을 마친 어머니는 요강 단지를 방구석에 들여놓아야 비로소 일과가 끝났다. 바로 뼈 빠지는 노동의 끝에 요강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길가의 쇠똥 개똥 말똥, 지푸라기 하나라도 주워 모아야 하는 세상에 오줌 한 방울이야말로 가장 좋고 아끼는 거름이 아닐 수 없었다. 옛 속담에 '제 똥(배설물) 3년 안 먹으면 죽는다'했다. 자식들과 부모의 것이 뒤섞여 농작물이 잘 자라게 거름이 되는 오줌, 이 요강이야말로 농경시대의 소매 독(큰 오줌 저장용기), 장군(운반 용기) 다음가는 농사도구의 하나였다고 할까?

요강은 주로 놋쇠나 사기로 만들었다. 보기도 좋거니와 만들기 편하도록 둥글게 고안되었다. 세계 도처의 변기에 견주어도 뛰어나니 민속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옛날 양반들은 유기에 백자, 청자는 물론 오동나무 통에 옻칠까지 해서 썼다. 따로 전담 머슴까지 두었다지만 지린 오줌 누기는 매한가지였으니 양반 상놈이 따로 없는 게 바로 요강이었다.

정력이 센 사람이 사기요강에 오줌을 주면 요강이 깨진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요강 없는 사랑방에서 한 잔 마시고 잠을 자다가 달빛에 반짝이는 대머리를 안방의 놋요강인 줄 착각하고 실례를 했다는 이야기도 떠돌았다. 30W 요강, 60W 요강 등 대머리를 놀리는 농담弄淡도 있었다. 이제 민속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귀물이 되었다. 조선시대 무덤에 묻어 주었던 작은 명기冥器로 요강이 있다. 일상의 그릇들도 이 소꿉장난 도구처럼 껴묻거리 (부장품副葬品)로 무덤에 넣어준 뜻은 저승에 가서도 현세와 같이 편리한 삶을 누리라는 애틋한 정성일 것이다.

반상班商구분 없는 요강이었다지만 임금과 왕비는 요강과 뒷간 아닌 침전의 방 하나에 매화틀梅花을 놓고 똥오줌을 누었다. 매화틀은 매우틀이라고도 했는데 굽 없는 나막신 모양과 비슷하며, 도자기로 굽고, 푸른 물감으로 그림을 그렸다. 임금의 똥은 그냥 똥이 아니라 매화꽃이라고 거룩하게 표현해야 했다. 매화틀 속에는 재를 담아 똥오줌이 튀지 않도록 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내의원으로 가져가 왕의 건강을 살피기 위해 똥 색깔과 맛을 보았다고 한다.

뒷간(측간)은 이제 물러갔다. 이름마저도 바꿔 멀리 있어야 할 화장실이 가장 가까이 있는 게 현대식 건물이다. 집에 따라 하나 둘, 심지어는 세 개 이상 있는 집도 있어 아침마다 요강을 닦는 일도, 오줌 버릴 일도 없다. 세면장洗面場을 겸한 요즘의 화장실은 수세식 변기와 비데 등 부대시설에서 빈부차를 나타내기도 한다.

오랜 세월 사랑받던 요강을 당장 쓸모없다고 버릴 것이냐 그냥 간직할 것이냐 그게 내가 결정해야 할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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