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어를 졸이며 / 남태희
칼을 들었다. 바다의 물결이 새겨진 등 푸른 두 마리의 고등어를 봉지에서 꺼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을 풀어주듯 싱크 볼에 놓아준다. 유선형의 몸체는 다소곳하게 제 배 반쪽을 내보이며 살짝 미끄러진다. 무심을 가장하고 한 마리를 머리 쪽에서 등뼈 가운데 어디쯤을 눌러 잡고 한 손으로 오래 묵은 칼자루를 단단히 잡는다. 미끄럽고 단단한 부드러운 주검을 앞에 두고 심호흡을 한다.
파닥이던 생명이든 누워 있는 주검이든 한때 살아있던 것들에 칼을 겨누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배꼽에 칼끝을 꽂으며 살짝 들어 일자로 죽 긋는다. 가두어진 내장들이 스르르 힘을 잃고 삐져나온다. 살아생전 배에 힘을 주며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을 고등어는 목 끝까지 도달한 칼날에 완전한 항복을 할복으로 보인다. 죽은피와 내장들이 힘없이 스러지는 순간, 목 밑까지 깨끗이 비우리라 다짐하며 검붉은 것들을 냉정하게 긁어낸다. 자신 속의 무언가 바글거리던 오물이 게워져 나오듯 개운하고 시원한 것이 살 것만 같아서 수도꼭지를 틀어 속을 씻어낸다. 한 마리, 두 마리, 순하게 싱크 볼에 누운 고등어, 이제 머리를 따야한다.
펼쳐 말린 우유갑을 상판에 놓고 고등어를 얌전히 올린다. 칼끝을 힘주어 목의 가장 두꺼운 부분에 대고 누르듯 힘을 일시에 준다. 버티다 끊어지는 목뼈의 소리를 내 속 비명으로 듣는다. 상대를 시원스레 넘어뜨리고 싶어 한방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서니 가슴이 갑갑해지는 일처럼 목을 따는 일은 언제나 조금의 찝찝함이 있다. 연이어 마저 한 마리를 작업한다.
한 마리는 굽고 한 마리는 지져먹을까. 한 마리는 어슷하니 토막 내어 조리고 한 마리는 저며 펼쳐 소금 뿌려 구울까. 아니 두 마리 다 저며 펼쳐 조림이나 해야겠다. 통으로 어슷하니 하는 조림보다 펼쳐진 살 속으로 마늘을 듬뿍 넣은 빨간 양념이 속속 배는 게 맛있지. 뱃속 잔뼈 사이 어디쯤에 칼끝을 옆으로 뉘여 등 쪽을 향해 조금씩 그어간다. 한 몸이 두 쪽이 되어 펼쳐지니 나비의 날개처럼 한 쌍이 된다. 하지만 공정치 못한 세상처럼 한쪽으로 살점이 기울어 있으니 덜한 쪽이 어차피 내 차지이다. 그것이 서운하다 했다면 관계는 어떻게 진행이 되었을까. 물로 한번 씻어낸 고등어를 납작한 소쿠리에 널어 물기를 잠시 빼둔다.
이제 부재료의 시간이다. 고구마 줄기를 깔든 묵은지를 깔든 시래기를 깔든 그때그때 있는 재료들을 찾으면 된다. 없다고 주눅들 필요 없다. 집안 서늘한 곳 하나쯤은 있는 재료들, 감자 양파, 호박을 적당히 듬성듬성 썰어 냄비 바닥에 깔면 그만이다. 오늘은 감자와 늙어가는 호박을 넣고 붉은 국물이 자박한 고등어조림을 하면 되겠다. 베란다 뒤쪽에서 껍질이 두꺼워지고 있는 감자 두 알을 꺼내 호박과 다듬어 굵직하니 쓸어본다. 감자를 쓸 때 들어간 힘에 비하면 어중간하게 늙어가는 호박은 만만치가 않다. 군데군데 푸른 기가 아직 있고 한쪽은 누렇게 물들어가는 중늙은이 호박 한 덩이. 물렁해 보이던 사람이 어느 날 보이던 단호함과 단단함에 놀라게 될 때가 있듯이 순해빠진 호박에 비켜가는 엇칼질이 의외로 반갑다. 가끔은 누구나 한번쯤 세상에 어깃장을 놓고 싶은 적이 있지 않은가.
양념장을 만들어볼까. 진간장, 고추장, 고춧가루, 매실 액, 설탕 조금, 물 약간 부어 고춧가루를 불린다. 그동안 칼 손잡이를 뒤집어 마늘을 찧는다. 간단한 양념조차 비율에 맞게 잘 섞어 조화를 맞추어야 하듯 맵고 짜고 시고 떫은 삶을 잘 버무리다 보면 인생의 단맛이 의외의 곳에 숨어 있음을 발견할지 모를 일이다. 어느 쪽이 과하거나 부족하면 전체적인 맛을 망치게 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적절한 말과 행동의 농도와 조절이 필요한 법이다.
불에 앉힌 냄비에 감자와 호박을 깐다. 그 위에 고등어를 펼친다. 반대쪽에 퍼즐을 맞추듯 한 마리를 마저 펼치니 맞춤하다. 마음이 맞으면 좁은 침대도 크게 느껴지던 한 쌍처럼 다소곳이 몸을 맞대니 펼쳐진 속살이 부끄러워 양파 이불을 덮어준다. 한때는 서로에게 열중했으나 가끔은 삐걱대는 부부사이, 하지만 차츰 그 소리가 잦아들듯, 어느 인간관계인들 그렇지 아니할까. 부드러워진다는 건 조금씩 자신을 깎아간다는 것, 서로 불편하지 않을 만큼 양보한다는 게 아닐까.
자작하니 졸이는 요리에는 중년의 여인을 닮은 품 넓은 냄비가 제격이다. 깊은 냄비에 음식이 완성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지막한 높이는 숟가락으로 양념국물을 끼얹어야 하는 요리에 안성맞춤이다. 냄비 하나, 그릇 하나의 쓰임새도 이러할 진데 사람의 쓰임이야 오죽할까. 타고난 성품대로 재주대로 알맞은 자신의 길을 찾기가 어디 쉬울까마는 그 길을 찾는다면 좀 더 신명나는 삶이 되지 않을까. 칼끝으로 홍고추, 초록 대파 하나씩을 어슷하니 썰어 삶의 고명처럼 얹어보니 붉고 푸른 한 냄비의 세상이 조화로워 흐뭇하다.
자글거리는 냄비에 불을 더 낮춘다. 뭉근히 감자와 호박을 익혀야 한다. 깊은 맛이 우러나고 적당한 감미가 배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고등어의 육즙은 밖으로 나오고 양념은 고등어와 호박, 감자에 은근 스며야하니 두 합이 맞아야 참맛이 된다. 조급히 마음만 앞서 불을 높이면 설익어 깊은 맛은 달아나고 수분은 졸아 냄비아래는 눌어붙게 된다. 시간과의 싸움이 어디 요리에만 있을까. 살아가는 내내 칼춤 추듯 무엇을 좇아갔는지 모르고 자신을 잃고 살아온 적이 있다. 단박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이제야 알게 되니 늦되고 늦되었다.
집안 가득 맛있는 냄새가 후드 돌아가는 소리로 고조된다. 뒷정리를 하며 도마를 보니 온통 상처로 가득하다. 도마에 난 칼침의 흔적처럼 서로에게 자잘한 상처를 주고받으며, 그 틈새로 배어든 홍고추의 흔적처럼 가끔 눈시울 붉혀가며 살아온 세월이다. 처음 쥐어본 칼처럼 조심스러웠던 시간, 도려내고만 싶던 삶의 흔적들, 자근자근 다져내며 곱씹어 보던 다사다난. 자르지 못하고 버티어 온 시간 속에 녹아들어 한 몸이 된 칼날과 손잡이처럼 한사람의 일부가 되었다. 등 푸른 한 마리의 생선처럼 푸르고 비렸던 젊은 날을 지나 겁 없이 무어라도 해낼 수 있는, 없으면 있는 재료로 뚝딱 한 냄비의 요리를 해내듯 삶의 담금질 속에 단단해졌으니 그것조차 인생의 메달처럼 감사하다.
자박한 국물과 감자를 조금 떠서 맛본다. 적절한 단맛과 매콤함, 짭쪼름한 맛이 포슬한 감자에 배어 입 안 가득 충만하다. 주재료인 고등어, 부재료인 감자와 호박이 맛의 합일을 이루니 어느 것이 주인공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세상사 살다보면 주연도 되고 조연도 되듯 역할의 크고 작음보다는 필요한 위치에, 필요한 순간 제 역할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매사 작은 일이라도 진심을 다하고 고마움을 느끼며 산다면 날 선 눈빛보다는 따스한 눈길로 세상을 보게 될 터이다.
고등어를 졸이며 생각이 참으로 많다. 찬거리를 준비하는 일이나 세상 살아가는 이치나 별반 다르지 않다.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냉정히 끊어내야 하는 일도 있으며 감자의 싹을 파내듯 도려내야 하는 아픔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어중간한 호박의 단호함처럼 소심히 세상에 어깃장을 부리고 대거리한 적도 있지만 결국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 지는 것처럼 그것조차 무언가를 향한 간절한 몸짓이 아니었을까. 도마 위 잔잔한 칼침의 흔적처럼 누군가를 아프게도 상처 주기도 했을 우리들을 위로하고 싶다. 따스한 이 한 그릇의 음식을 앞에 두고 당신, 그리고 나를 초대한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우리의 인생을 완성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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