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강돈묵
굳이 걸찬 흙이 아니라도 좋다. 발길을 붙잡는 돌멩이만 없다면 어떠한 흙이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저 햇볕이 머무는 곳이면 뿌리내려 둥지를 튼다.
제 고향이 남미의 고산지대 멕시코로 알았는데, 요즘 어떤 이가 남아시아, 인도의 화석에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았다고 떠들어대도 별로 관심 둘 바 없다. 기원전 6천6백만 년의 화석을 들이밀며, 제 조상도 모르며 사느냐 구박해도 시큰둥하다. 그냥 현재의 삶에 충실할 뿐이다.
어느 누군들 고향이 그립지 않겠는가. 저녁노을이 산기슭을 타고 내려오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음습한 그림자가 가슴을 뒤덮고 청승맞게 쪼그리고 앉기를 강요한다. 언덕배기 밭에서는 꽃이 진 수숫대가 그리움을 쓸어내듯 실바람에 가슴을 드러낸다. 초가집 부엌 궁둥이에는 갓 시집온 새댁이 두고 온 홀어미를 그리며 옷소매를 적신다.
그러나 노지의 고구마 덩굴은 조금 다르다. 슬퍼할 겨를 없이 하루를 살아내야 한다. 주인이 ‘니는 혼자서도 잘하지?’ 믿어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이리저리 사방팔방 줄기를 뻗으며 왕성한 하루를 꾸린다. 아무리 고향이 그리워도 감성의 나락에 떨어질 우려는 없다. 지금, 이 순간 고향이나 그리는 건 사치라고 치부한다.
조상이 이곳에 둥지를 튼 건 18세기라 들었다. 영조 39년(1763) 조선통신사 조엄이 쓰시마에서 군고구마 가게를 보고 돌아와서 임금에게 보고하자 영조가 ‘종자를 가져다 심어 보라.’하여 부산 영도지방에 터를 잡은 게 그들의 입향 기록이다. 따뜻한 남쪽에서 이곳까지 끌려온 그들의 여정은 절대로 수월하지 않았을 터. 비록 자리를 잡아 삶터를 일구었다고 해도 제 고향 마을만이야 하겠는가.
처음 영도에 닿아서 터를 잡을 때의 기억은 너무도 아프다. 남들이 터 잡고 난 빈자리를 찾다 보니 비옥한 땅일 리 없다. 긴 세월 단단하게 다져지기만 한 곳에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거다. 거친 땅심 속 자갈돌은 뻗어나가려는 길목마다 버티고 앞길을 막아섰다. 덩이뿌리를 키우기엔 힘에 부쳤다. 가을걷이하여 바라본 고구마는 알이 잘고, 기괴스럽기 짝이 없었다. 몸에는 거친 섬유조직만이 가득하고, 씨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웠다. 그 후 하적토(河積土)로 옮겨진 뒤에야 비로소 살 만했다.그러나 태풍이 데리고 온 장맛비가 고랑에 괴니 숨쉬기가 어려웠다. 이럴 때면 으레 진흙 속에 처박히고 마는 신세가 되었다.
고향에선 따뜻한 계절을 만나 별 수고로움 없이 싹을 틔웠을 것이다. 적당한 습기와 풍족한 볕을 즐기며 남은 영양소를 덩이에 저장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타향에서는 다가올 날을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야 자식을 위한 어미로서의 노릇도 다하게 된다.
뒷산 숲정이에 잔설이 녹기 전 주인은 머슴방 윗목에 흙을 들이고 씨고구마를 묻는다. 형편이 어려워 제집을 떠나와 남의집살이하는 머슴은 음침한 방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어두컴컴한 방에 만족하며 사는 건 고구마나 머슴이나 매일반이었다. 봄갈이로 바쁜 일손이 어쩌다 한 번씩 물을 끼얹어 줄 뿐이지만, 목마르다고 투정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두고 온 가족이 그리워 들창문을 열면 날이 새기를 기다리는 하현달이 나뭇가지에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한 주에 너덧 번 던져주는 물을 받아먹으며 무강은 기어이 새순을 밀어 올려야 했다. 현실이 너무 버거워 고향 타령은 입 밖으로 내지 못한다. 골방에 갇혀서 창 너머 세상을 알지 못하니, 어두침침한 현실을 견디는 게 전부다. 열린 문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낄 때쯤, 바소쿠리에 가득 담긴 새순은 밭으로 옮겨진다. 머슴은 미리 쳐놓은 두둑에 고구마 순을 정성 들여 깊이 꽂는다.
한순간도 게으름 피우지 않고 최선의 노력으로 삶의 줄기를 뻗는다. 그 지독한 잡풀도 얼씬하지 못한다. 이주해 왔다고 벌레들이 얕잡아 보지만 꿋꿋하게 살아낸다. 하루가 다르게 줄기는 쭉쭉 뻗어 이랑을 덮고 이파리는 볕을 즐긴다. 흙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가뭄이 밀려와 흙이 메말라도 볕을 가려 준다.
타향살이에 온갖 것들이 달려들어 괴롭혀도 개의치 않는 고구마처럼 머슴 역시 대견스럽다. 외로우면 자기 몸을 무섭게 부리는 게 고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길임을 잘 안다. 주책스럽게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은 막중한 노동으로 잊는 게 상책이다.
흔히들 감자와 고구마를 이웃사촌이라 부른다. 허나 그 성질은 전혀 다르다. 감자는 온몸에 독소를 뿜어 들짐승들이 덩이줄기 외에는 입을 대지 못하게 하지만, 고구마는 제 몸을 요구하면 뭐든 가리지 않고 내어준다. 독을 품기는커녕 덩이뿌리든 줄기든 이파리든 기꺼이 내준다. 그렇다고 개성도 없이 휩쓸려 사는 것은 아니다. 감자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은 있어도 고구마를 주식으로 하는 사람은 드물다. 본래 주식은 쌀이나 감자처럼 담백하거나 밍밍해야 반찬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법이다. 고구마는 저만의 특이한 단맛 때문에 주식으로 오를 수 없다. 그래도 밥과 어울려 ‘고구마밥’이 될 때면 지그시 눈을 감고 어울릴 줄도 안다.
이제 타향살이에 이골이 났다. 이곳으로 이주한 지도 오래되었다. 그간 몇 해의 머슴살이로 새경을 모아 논밭을 사고 집도 마련하여 가정도 꾸렸다. 이 동네 사람이라 작심하니 마음이 편안하다. 타향살이가 별거든가, 발붙이고 살면 그곳이 고향이지.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서로 이해하고 다독이며 견디는 것이다. 아쉬워도 마음 달래며 사는 게 타향살이다. 가끔 고향이 그리워 잠을 설치는 밤은 있어도 현실은 잊을 수 없다. 타향에 살면서 그리워할 고향 하나쯤 품고 산다는 건 어쩌면 행복일지도 모른다.
자식을 위해 무강이 되는 삶이지만 아쉬움은 없다. 고구마 이파리가 무성하다. 새봄에도 씨고구마는 또 그렇게 흙에 묻히고, 새순을 밀어 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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