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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달팽이 뒷간/노혜숙

에세이향기 2021. 8. 12. 05:56

달팽이 뒷간/노혜숙
                           





  ‘달팽이 뒷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지붕 대신 한 평 하늘을 들였고, 문 대신 서원 뜰 한 자락을 들였다. 이끼 낀 진흙돌담은 달팽이처럼 안으로 휘었고, 풍화의 흔적이 스민 잿빛 이엉은 서원 지붕과 어우러져 한 풍경을 이루었다. 그 옛날 머슴들의 배설과 애환이 질펀하게 부려지던 ‘통시’의 공간. 뒷간 옆엔 배롱나무 꽃이 천연스럽게 붉었다.

 10리 길을 걸어 들어가야 진면목을 알게 된다던가. 팔월의 병산서원(屛山書院)은 몽환적이었다. 염천의 농익은 볕처럼 붉은 꽃들이 서원 안팎에 흐드러져 피었다. 풍경 속에 건물이 있고 건물 속에 풍경이 들어와 한통속이 된 듯 조화로운 전경이었다. 입교당(立敎堂)에 올라 바라보는 만대루 풍광은 서원의 백미였다. 시선을 들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우뚝 선 병산(屛山)을 한차례 더듬다, 만대루(晩對樓) 기둥 사이로 유장하게 굽이쳐 흐르는 물살을 보노라면 왜 병산서원을 으뜸으로 치는지 알 만 했다. 게다가 누각 사이로 아른대는 배롱나무 꽃빛에 시선이 머물면 그만 현기증이 일 지경이었다.
  
 나는 하필 병산서원 밖 ‘달팽이 뒷간’에 꽂혀 주변을 기웃거렸다. 유생들이 드나들던 번듯한 기와 뒷간에 비하면 허접하기 이를 데 없었다. 400년 세월이 무색하게 뒷간은 멀쩡히 제 구실을 하고 있었다. 분뇨와 빗물이 섞여 흥건한 똥항아리엔 구더기가 오글거렸다. 그것들은 염천 가뭄에도 말라죽지 않고 비상을 위해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미물들에게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욕망이란 게 있을 터였다. 똥파리든 날파리든 생애 한 번 기어이 날아 보겠다는 일념이야말로 생존의 동력 아니겠는가.

 옛적 이 뒷간에 앉아 뒤를 보던 머슴들도 그랬을 것이다. 만대루에 앉아 낭랑한 목소리로 책을 읽는 유생들을 보면서, 끝내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아득함으로 불우한 똥을 싸기도 했을 테다. 드난살이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순간순간 치밀어 오르는 원망과 한이 왜 없었을까. 배설되지 않는 욕망을 숨죽이느라 열린 하늘 우러러 뜨겁게 하소연도 했으리.

 생존은 오욕보다 질긴 것, 그들은 ‘머슴뒷간’이 상징하는 비루한 삶에 주저앉아 있지만은 않았다. 서당 수발 몇 삼 년의 들은풍월 때문만은 아니었으리라. 더럽다고 외면 받는 똥이 거름이 되고, 그 거름이 사람을 기르는 바탕이 되는 순환의 이치를 일찌감치 몸으로 깨달은 그들이 아니던가. 지금은 인분이 배제와 처리의 대상일 뿐이지만 옛날엔 돈 주고 사야 했던 최상급 거름이었다. 똥(糞:똥 분)에 관한 어원을 보면 ‘한자가 처음 만들어진 고대사회에서는 똥을 '손으로 치워야 하는 쓰레기'로 보았다. 훗날 “똥을 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매우 귀중한 비료로 인식하면서 〈똥 → 거름 → 쌀〉로 순환되는 이치에 맞게 글자가 변화해, 똥(糞)을 '쌀(米)의 또 다른(異) 형태'로 파악”하게 되었다고 한다. 거름더미처럼 비천한 처지나마 운명의 불우를 삶의 지혜로 역전시키는 ‘통시’의 긍정성! 물찌똥을 쌀망정 사람답게 사는 꿈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민초들의 결의 아니었을까.

 배앓이가 잦았던 나는 뒷간을 자주 들랑거렸다. 멧부엉이 울어대는 칠흑 같은 밤, 뒷간에 갈라치면 머리끝이 쭈뼛 섰다. 희미한 호롱불 아래 똥항아리에 놓인 부출 두 쪽에 발을 디디는 일은 쉽지 않았다. 대낮 뒷간에서 끊임없이 기어오르는 구더기를 보는 일은 더 역겨웠다. 어떤 녀석은 바깥으로 기어 나와 발밑에서 꿈틀거렸다. 녀석을 피하기 위해 나는 자꾸 다리를 움직여야 했다. 그럴 때마다 널빤지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고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린 내게 뒷간은 피치 못해 가야 하는 괴로운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한 사발 밥은 남에게 주어도 한 삼태기 재는 주지 않는 법’이라며 똥오줌은 반드시 뒷간에 가 누어야 한다고 일렀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엄 냄새에 적응하지 못하던 내게 아버지는 한 말씀 하셨다. ‘똥냄새가 구수해져야 인생의 참맛을 아는 법’이라고. 쉰이 넘어서야 아버지의 말뜻을 이해했다. 더러운 건 똥이 아니었다. 정말 더러운 건 형체도 냄새도 없는 욕심이었다. 잘 발효된 똥은 거름이 되지만 부풀수록 사나워지는 욕심은 해독제도 없는 독약이었다. 산전수전 겪어가며 인간사 냄새 나는 모순 속에서도 굳건히 제 삶의 뿌리를 내릴 수 있어야 제대로 똥의 가치를 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개똥철학의 겉멋으로 산 세월이 길었다. 실존은 몸의 한가운데를 관통하며 성립되는 것임을 너무 늦게 알았다. 살면서 수도 없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몸으로 체득하지 않은 허상 위에 실존을 세우려 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내 욕망에는 아직 발효되지 않은 날탕의 냄새가 물씬했다. 머슴 근성을 버리지 못했다는 반증일 터였다. ‘달팽이 뒷간’에 대한 내 알량한 연민도 결국 자신을 향한 것에 다름 아니었으리. 불행은 타인의 예속이 아니라 스스로 씌우는 욕심의 굴레에 있었다는 자각이 사무쳤다. 그래, 목표는 몸으로 뚫고 가는 내 삶의 정상이어야 한다. 비로소 수직의 가파름 대신 완만한 구릉의 편안함이 기꺼웠다.

 굴하지 않는 삶의 투지, 끈덕짐으로 기어이 이루어내는 욕망의 발효, 구린내 나는 그것조차 인생의 거름으로 역전시켰던 민초들의 지혜와 ‘통시’의 해학을 ‘달팽이 뒷간’에서 배운다. 꽃뫼(花山) 자락 병산서원의 배롱나무 꽃그늘이 저 옛날 머슴의 염원인 양 뜨겁다.



 * 통시: 뒷간의 방언(여러 해석 중 ‘통쾌하고 시원하다’는 뜻의 준말인 통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