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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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수필

겨울소리/문경희

에세이향기 2021. 10. 29. 11:19

겨울 소리

문경희

사방 바람의 우범지대다. 홀로로는 결코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부조리에 맞서듯 바람은 닿아지는 모든 것들을 다그쳐 소리를 만들어낸다. 소리를 앞세워 자신을 과시하고, 소리를 채찍 삼아 세상을 평정하려 든다.

뒷산 능선을 넘어오는 북풍 역시 을씨년스러운 소리부터 앞세운다. 수척해진 나무들의 등짝에 냉랭冷冷한 문신을 새기고 있는지, 바람의 손이 스칠 때마다 구성없는 비명이 쏟아진다. 바람의 소리인지, 소리의 바람인지, 오늘따라 집 뒤 굴참나무 숲정이는 귀곡산장이 따로 없다.

얼음장 같은 바람이 헤살을 놓는 날엔 무조건 퇴각의 외쳐야 한다. 바람에 항거하는 방법이란 고작 문이란 문을 꽁꽁 닫아걸고 보일러의 온도를 높이는 것뿐이다. 그러나 철옹성 같은 문도 소리의 출입까지는 막을 수 없나니, 휘잉, 바람이 흩뿌린 소리의 단검이 귓전으로 싸늘하게 내리꽂힌다. 잔뜩 버려진 위세를 코앞에다 부려놓는 친절한 바람 씨氏들이다.

불시에 허虛를 찔린 듯, 팔다리가 욱신거린다. 구멍이란 구멍으로는 냉기가 들이친다. 어깨를 추스르고 허리를 곧추세워 보지만, 먹은 것마저 명치끝에 묵직하게 얹히고 만다. 하여, 문 안의 무풍지대에 소심하게 움츠린 채 빼꼼 문밖을 정탐하는 일로 시간을 뭉갠다. 곰처럼 챙겨 입고도 소리의 피난처를 찾아 귀를 펄럭이는 몰골이라니.

바야흐로 소멸의 계절, 겨울이다. 산도, 들도, 나무도 거머쥔 것들을 발밑으로 내려놓는다. 세상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월동이라는 가풀막을 넘지 못한 자에게 봄은 없다. 한 점 토르소처럼, 손발을 내어주더라도 숨줄만은 거머쥐고 있어야 하는 것이 겨울이ㅔ 임하는 그들의 생존법이다.

봄을 위한 전초일 뿐이라고 아무리 긍정의 주문을 걸어도, 뼈만 남은 풍경이 송곳처럼 마음을 후비고 든다. 남편은 귀촌 후 맞는 첫 겨울의 소회를 콧날이 시큰해질 정도의 스산함이라 한다.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때때로 가슴 밑바닥을 할퀴고 가는 얄궂은 심사는 눈이 아니라 귀가 초래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툭, 투둑, 귀로 들어와 몸과 마음을 죄 쓸쓸함으로 탈색해버리는 조락의 소리들 말이다. 언 땅을 딛고 선 나무처럼, 악착같이 봄의 약속을 되새기는 것만이 겨울과, 겨울의 소리에 무너지지 않는 자구책이랄까.

팔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에게도 문밖은 오로지 위험한 곳일지니, 느지막이 아침상을 물린 어머니께서 주섬주섬 리모컨을 챙겨든다. 작년 겨울, 감기 때문에 한 달여를 고생한 전적이 있어서인지 선뜻 바깥을 엄두 내지 않으신다. 덕분에 연일 죄 없는 TV만 등짝이 뜨끈해지도록 고군분투를 한다.

화면이 열리자 아침 드라마를 예고하는 자막이 뜬다. 어정뜬 나이로 치매에 걸려 버린 아버지와, 그런 가장을 향한 애틋한 가족애를 그려내는 드라마다. 어제는 그간 숨겨오던 아버지의 와병 사실이 들통나면서 끝났으니 오늘은 분명 집안이 발칵 뒤집히는 장면으로 시작을 할 것이다.

"저기 참 더러븐 병이라, 저거한테는 안 붙들리고 가야 될 낀데 ···."

드라마를 볼 때마다 같은 말씀을 되풀이하지만 인생의 겨울에 발목을 적시고 계신 어머니가 아닌가. 이미 노老하고 쇠衰함의 비명으로 오라를 지고 사시는 처지니 무엇엔들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마당을 장악한 고추바람처럼, 세월도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소리를 동원한다. 당신의 계절에도 삭풍이 부는 건지, 다섯 자식의 발원지인 어머니의 몸에서는 최근 들어 겨울의 소리가 잦아졌다. 앉고 일어설 때마다 '끙', '아이쿠'의 신음을 지팡이처럼 짚으신다. 육신의 마디마디에 소리의 집이 들앉은 듯, 소리로 눕고, 소리로 뒤척이신다. 낡고 초라해졌으나마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이 느슨해지는 순간, 꽁꽁 단속을 해둔 소리들이 활개를 치는가 보았다. 흡사 소멸의 예고장 같다는 방정맞은 생각 때문일까. 의식의 결여된 상태에서 터져 나오는 어머니의 소리에 머리끝이 주뼛 일어서는 때가 많다.

하긴, 당신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 게다. 제 속을 깡그리 내어준 무광처럼, 거죽만 남아 흐느적거리는 것이 어머니의 신체지수인지도 모른다. '이건 이리해라, 저건 저리해라.' 종종 이순 문턱의 나를 진두지휘하시는 모습을 보면 느슨해지다가도 기침처럼 툭툭 당신을 불거져 나오는 소리는 긴장의 끈을 바투 쥐게 만든다. 몇 마디 담소를 나누다가 감쪽같이 단잠에 빠지거나, 주무시겠거니 TV 음량을 낮추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시시콜콜 드라마를 생중계하시는 천연덕스러움에 가슴 한쪽이 무지근해진다.

한때는 카랑카랑 목청을 세우며 우리를 잡도리하던 당신이다. 아들 하나에 딸 넷, 고만고만한 자식들은 단 하루도 고요히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뺏고 뺏기고, 울고불고, 육탄전까지 불사하는 천방지축 우리들을 단 숨에 진압한 것은 어머니였다. '버럭' 전법이 통하지 않으면 시커먼 부지깽이가 춤을 추고, 빗자루가 일순 몽둥이로 용도 변경되기도 했다. 자식들을 오금 박던 쓴소리의 진원지는 늘 어머니였으니, 그저 허허실실, 따끔한 말의 회초리 한 번 들지 않는 아버지를 대신해 악역을 자처하셨던 셈이다.

악역에 흔쾌한 이가 있으랴.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악역이라는 것도 세상에는 존재한다. 저마다의 고집으로 제 목소리만 낼 줄 아는 자식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당신의 데시벨도 점점 높아질 수박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언제쯤 어머니의 소리에서 해방되었을까. 몇 번인가 당신을 향해 앙칼진 소리로 대거리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불편한 심사를 있는 대로 표출하며 고집스레 방문을 걸어 잠갔던 적도 없지 않다. 돌아보면, 고함도, 회초리도 먹혀들지 않는 자식들이 당신으로 하여금 기세등등하던 소리의 지휘봉을 내려놓도록 만들었지 싶다. 이제 와서 사무치게 그리워질 줄은 생각지도 못한 채.

재작년 봄,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고 나자 어머니는 소리 없는 여인이 되었다. 더러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생긴다 한들 따따부따할 의욕이 없으신가 보았다. 뜬금없는 입의 파업으로 포식자를 잃어버린 소리들이 노쇠한 육신을 공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토록 사사건건 당신의 행보를 간섭하고 드는 걸 보면.

어머니의 겨울을 겨울보다 더 황량하게 만드는 소리들. 다섯 자식에 이어, 저 난만한 소리마저 헐렁해진 노구에 공명을 일으키고 있으니 어찌 분답지 않으랴. 이따금 전설이 되어버린 청춘의 한때를 추억으로 환기시키지만, 잔고가 바닥나 버린 계좌처럼 남루해진 세월만 도드라질 뿐이다. 늙어가는 일이란 절로 고요해지는 것이 아니라, 홀로 감내하고 홀로 삭여야 하는 소리가 점점 많아지는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설거지를 하고 찻물을 올리는 사이 나지막이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의 출구가 열리는 모양이다. 아무리 세월의 옷으로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침묵만으로는 갈앉힐 수 없는 것들이 사방에 널렸을 터. 저렇게라도 응어리진 소리들을 배출하고 나면 남모르게 견뎌야 하는 당신의 몫이 조금은 줄어드는 것인지.

존재와 소멸의 경계에 어머니의 소리가 있다. 시곗바늘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 당신께 더 이상 청춘이 소생하는 봄은 없을 것이다. 머잖아 겨울이 물러가고 어머니께서 부재한 계절이 오면, 저 뚝뚝한 소리 나마 얼마나 간절해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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