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반/류재홍 나는 아름드리 느티나무에서 왔다. 모태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한 의지와 묵직함을 자랑으로 여긴다. 더러 모질다는 소리도 듣는다. 산다는 일이 그리 만만한 일이던가. 내 안의 나보다 더 독해져야 할 때도 있느니, 이것이 4대째 쇠심줄처럼 살아남은 생의 비밀일지도 모르겠다. 소반(小盤)이란 이름으로 태어나던 날이 까마득하다. 보리가 제법 파랗게 살이 올랐을 때였다. 한 부인이 맏아들 혼사 때 쓸 것이라며 공방에 들렀다. 그 공방은 근방에서 꽤 소문난 집이었다. 목공은 다른 것들보다 달포나 더 씨름한 끝에 나를 완성했다. “백 년 묵은 귀목 통판을 그대로 쓴 놈이니 요긴하게 쓰일 것이오.” 그는 내가 아까운 듯 몇 번이나 쓰다듬다 건네주었다. 주인을 따라 집에 오던 날은 내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앙증맞고 귀엽다, 진중하고 튼실하게 생겼다는 등 제각각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 얼굴은 열두 모서리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다. 옻칠한 것이라 Tm면 쓸수록 반들거리며 붉은빛을 띤다고 했다. 특별한 외모 탓이었을까. 나는 주로 사랑방 술상 구실을 했다. 덕분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주워들었다. 자연히 시류에 밝은 놈으로 통했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모두 나를 붙들고 한 가지라도 더 들으려 안달했다. 그즈음 사랑채에서 농주를 앞에 놓고 울분을 터트리는 일이 잦아졌다. 내 얼굴은 수시로 눈물범벅이 되었다. 사람들은 을사늑약이 맺어졌다고 했다. 몇 년 후에는 주인도 바뀌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시집온 사람으로 여장부였다. 일꾼 부리는 솜씨가 훌륭했다. 기업을 운영했더라면 큰 성공을 거두었으리라. 반면에 위아래는 철저히 따지셨다. 세월 따라 사는 모습도 변하기 마련이다. 근엄한 사랑채 어른도 큰 두레상이나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드시는 집이 늘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은 끝까지 독상(獨床)을 고집했다. 내가 오랫동안 대접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그 어른 덕분이라 하겠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을까. 바람막이였던 분이 돌아가시자 나의 생도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새 며느리가 가지고 온 자개 상이 부엌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별 수 없이 어두컴컴한 창고에 처박혔다. 일 년 내내 햇빛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어 냉기와 곰팡내가 득시글거렸다. 그곳에서 나와 비슷한 처지의 가재도구를 만났다. 우리는 힘든 나날 속에서도 서로 사랑하며 위로하고 의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창고 문이 활짝 열렸다. 낯설고 억센 손아귀가 우리를 마당으로 내몰았다.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부시었다. 잠시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 꾸려진 이삿짐이 눈에 들어왔다. 영영 버려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이삿짐보다 더 크게 가슴을 덮쳤다. 목숨은 하늘에 매인 것. 나는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 햇살에 몸을 맡겼다. 대문을 나서려던 젊은 주인이 발길을 돌렸다. 아쉬운 듯 집 안을 휘둘러보다 나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켰을까. 나는 힘껏 그녀와 눈 맞춤했다. 그녀는 나를 들어 올려 이리저리 살펴보고 두들겨보더니 이삿짐 귀퉁이에 쑥 밀어 넣었다. 하고 기뻐서 내 다리가 부러지는 줄도 몰랐다. 젊은 시절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덜렁거리던 다리를 고친 나는 더욱 말간 얼굴로 새집 부엌을 차지하고 앉았다.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세상이 온통 내 것인 양 의기양양했다. 안방의 다과상 역할이 전부였지만, 섭섭하지도 않았다. 진즉 불쏘시개감이 되었을 친구에게 비하면 얼마나 호사냐. 내가 주인 눈에 띈 것이 한낱 우연이었는지 내 의지의 표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신바람이 났다. 흐르는 세월을 누가 막으랴. 아무리 닦고 닦아도 깊게 팬 주름살은 감출 수 없었으니. 나도 모르게 뒷방 늙은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제삿날이었다. 모처럼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오다 생선 소쿠리를 이고 있는 자개 상을 만났다. 얼락배락하는 게 세상살이라더니, 그토록 오만하던 기개는 어디다 두고 비린내를 풍기며 졸고 있는지. 칠이 벗겨지고 모서리가 떨어져 나간 모습은 나와 다를 게 없어 보였다. 누가 볼세라 알른 내 안의 옹이를 감싸 안았다. 골동품이라는 이름에 갇힌 나를 본다. 여태 뿌리로 돌아가지 못한 생이 무지근하다. 언제쯤 깃털처럼 가벼워질까. 날마다 새롭게 열리는 하늘 위 구름처럼, 아니면 바람이 되고 싶은데, 하지만 어쩌랴. 아직도 나를 찾는 이 있으니. 그것은 때로 외로움을 덜어주는 위안이자 삶의 의지처가 아니던가. 하여, 오늘도 살아있음에 머리를 조아린다. 빗소리가 요란한 걸 보니 소나기 한 줄금 뿌리는 모양이다. 자식들 대처로 나가버린 적막한 집. 백발의 노부부가 댓속처럼 텅 빈 봄에 빗물 들세라 창문을 꼭꼭 여며 닫는다. 행여 내 몸도 허물어질세라 힘줄을 팽팽하게 곧추세운다. 나도 어느새 이 집 주인을 닮아가는가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