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귿’과 돌고 돌아 / 민명자
디귿, 너를 생각하면 ‘돌고 돌다’가 먼저 떠올라.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라 했던가. 그런데 돌고 도는 게 어디 인생뿐이겠니? 지구도 돌고, 굴렁쇠도 돌지. 수레나 자전거나 자동차 바퀴도 돌고 돌아야 제구실을 하지. 가만, 생각해 보니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세월 따라 인심도 돌고 돌아. 디귿이 없으면 ‘돌다’도 없지. 오늘은 디귿, 너와 더불어 디귿의 나라를 돌고 돌아볼까?
# 다
‘다’, 모으고 흩트리며 마치는 힘이 있지. ‘다’는 ‘우리, 모두, 함께’와 친해. 이것도 모으고 저것도 다 모아. 아니, 모두 다 버리기도 해. 오늘은 우리, 모두, 다,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눠볼까? 노래나 한바탕 불러볼까? 놀이동산에라도 가볼까? 아니야, 모두 다 흩어져서 제 할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나는 혼자 심심이와 놀 때도 있어. 내가 부르면 언제든 “방가, 방가” 맞이해 주지. ‘다’는 뒤에서 마치는 힘도 있어. 만일 ‘다’가 없다면? ‘이렇습니/저렇습니/그랬습니/수고하셨습니/사랑합니/미워합니/…’로 끝내야 한다면? 영원히 미완의 언어로 남게 되겠지. 아휴, 답답해.
# 더
‘더’는 어떨까? 하나 더 더하고 하나 더 빼고, 두 개 더 얹고 두 개 더 덜고, ‘더’는 보태거나 뺄 때 요긴한 단어야. ‘더’가 붙으면 더 많거나 더 적어져. 사랑은 더할수록 좋고 미움은 덜할수록 좋겠지. 더없이 다함 없는 부모님의 사랑이 있는가 하면 더없이 애절한 연인의 이별도 있어. ‘더’는 더불어 가기에도 더없이 요긴한 말의 씨앗이야. 더불어 가는 존재들에겐 아름답고 강한 힘이 있지. 매사가 그저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면 정말 행복할까.
# 도
‘도’는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모두 다 껴안아. 품이 넓어. 그러나 이것도, 저것도, 그것도, 모두 버릴 때는 매정해. ‘도 아니면 모’라는 말도 있지. 윷판은 도에서 출발해. 그래야 ‘개, 걸, 윷’ 거쳐 ‘모’까지 도착할 수 있어. 나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도를 좋아해. 도는 첫 음계를 받쳐주지. 도가 있어야 ‘레미파솔라시도’ 변주가 가능해. 인생은 노래야. ‘도레미파솔라시도, 도시라솔파미레도’ 음의 고저장단(高低長短) 따라 높은 듯 낮은 듯 긴 듯 짧은 듯 강한 듯 여린 듯 흘러 흘러가는 게 인생이지. 그중엔 기쁜 곡조도 슬픈 곡조도 있고 가끔 엇박자가 날 때도 있어. 인생은 변주곡의 연속이야. 그 중에도 도는 기본 중의 기본바탕이니 어쩌면 도(道)와도 통할는지 몰라.
# 달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 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초승달은 신생의 달이고 보름달은 풍요의 달이고 그믐달은 소멸의 달이라고도 하던가. 그런데 우리가 눈으로 보는 달은 다만 형상이 그러할 뿐, 해와 달그림자가 빚어내는 마술이야. 달의 몸은 늘 둥글어. 언제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달은 이리저리 몸을 옮기기도 해. 남산 위에서도 아파트 옥상에서도 얼굴을 내밀지. 아니, 경포 호수에도 몸을 담가. 천 개의 강에 천 개의 달이 뜬다고 했던가. 만인에게 평등한 달, 자비의 빛이야. 시인은 달을 보며 시를 짓고 늙으신 어머니는 정화수 떠놓고 달을 보며 가족의 무사 안녕을 빌지.
달이 사는 집은 허공이야. 그 동네엔 계수나무도 살고 토끼가 방아도 찧어. 달을 사랑한 이태백도 빼놓을 수 없지. 술에 취해 시에 취해 장강(長江)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잡으려다가 익사했다는 설화를 남긴 시선(詩仙) 이태백, 지금쯤 달나라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시 한 수 짓고 있지 않을까. 노랫말에도 자주 불려 나와.
어떤 이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부르면서 달 속에 박힌 계수나무를 “옥도끼로 찍어내어 금도끼로 다듬어서 초가삼간 집을 짓고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만년 살고지고” 싶다며 효심을 다진다네. 또 다른 이는 이태백이 불러내서 ‘달 타령’ 부르며 일 년 열두 달을 기려. 정월엔 새 희망으로 살고, 이월엔 동동주 마시며, 오월 단오, 유월 유두, 칠월 칠석 즐기다가 한 해가 저무는 십이월엔 달님 바라보며 님 그리워한다네.
달, 월(月), 월광(月光)은 한 몸으로 움직여.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에선 호수에 비치는 달빛이 보이는 듯, 잘박거리는 물결 소리가 들리는 듯해. 달은 만인의 벗이야. 달 노래도 많고 또 많고 아이들과도 친해. 아이들은 뒷동산에 올라가 “장대로 달을 따서 망태에” 담아다가 “순이 엄마 방에다가 달아 드리자”라고 해. 불을 못 켜서 밤에는 바느질도 못 한다는 순이네 걱정하는 마음이 따듯해. 동요는 아름다운 상상력으로 꿈을 꾸게 하지. 낮에 나온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이나 “신짝”이나 “면빗”이 되기도 해. 이쪽과 저쪽에서 뜨는 반달을 합치면 온달이 될까?
달은 밤의 제국에서 지상을 굽어봐. 어둠이 깊을수록 그 눈은 더욱 빛나. 그런데 달이 혹시 지상으로 내려오고픈 꿈을 꾸는 건 아닐까. 달동네에서부터 도심의 어두운 뒷골목까지 샅샅이 비추는 걸 보면 만상이 잠든 밤에 지상에 몰래 내려앉아 그 꿈을 실현하고 가는지도 몰라.
달, 문(Moon), 어둠을 여는 문(門)이고 글 문을 여는 문(文)이야. 요즘엔 문씨(文氏) 성을 가진 나라님도 달님으로 변신하여 설왕설래. 달도 차면 기우나니…. 인간이 달나라를 가고 인공 달을 띄우는 세상이지만 정취로 치자면 달구경이나 달맞이가 으뜸이지. 정월 대보름날 동산에 올라 둥실 떠오른 둥근 달 바라보며 쥐불놀이하면서 기원하던 일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었어. 대보름이나 한가위에 둥글둥글 손잡고 도는 강강술래는 또 어떻고. 도심의 달은 휘황찬란한 조명에 가려져 눈을 크게 떠야 간신히 보여. 나가서 달 찾아봐야겠네. 달밤에 문워크나 체조라도 해볼까. 아니면 ‘영암 아리랑’이라도 한 소절 뽑아볼까.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 돌
돌은 흙과 함께 땅을 지키는 파수꾼이야. 돌이야말로 지상의 군주일지도 몰라. 돌이 없으면 집도 짓지 못해. 하늘로 치솟는 빌딩도 돌이 없으면 서 있지 못해. ‘돌대가리’라고 함부로 비웃지 마시게.
그런데 말이야, 돌, 혹시 너도 새처럼 달처럼 하늘로 오르고 싶어 하는 건 아니니? 그렇다 한들, 혹여 돌이 달이 되고픈 꿈을 가졌다 한들, 함부로 탐하지 마시게. 모든 건 제 자리가 있거든. 돌은 땅에 살면서 굳건한 초석이 되는 게 제격이야.
하긴 돌도 주어진 자리가 각기 다르지. 거대한 암석으로 살면서 큰 산을 지키는가 하면 돌계단이나 댓돌 같은 디딤돌로도 살고 파편처럼 부서져서 이리저리 굴러다니기도 하지. 그래도 헛된 꿈은 삼가야 해. 혹여 제 욕망에 취해 돌이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면, 그 순간 하늘을 나는 새나 가지 끝에 달린 열매나 누군가의 뒤통수를 치는 돌팔매가 될 수도 있어. 제 몸집이 무겁고 클수록 추락은 금물이야. 그 아래 깔린 존재들을 위협해. 그러니까 높은 곳에 있을수록, 허우대가 클수록, 몸을 함부로 굴리면 안 돼.
버려진 노인처럼 깨어지고 마모되어 폐허에 뒹구는 돌덩이에는 영화롭던 한때와 시련의 세월이 새겨져 있어. 바닷가 백사장에서 밟히는 모래알도, 골목길에서 사람들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며 굴러다니는 돌멩이도, 세상 만물은 존재 가치가 있어. 인생(人生) 못지않게 석생(石生)도 소중해. 진흙땅에서 지렁이가 살고 수목은 생명의 뿌리를 키우지. 돌의 분신인 흙, 가볍게 부서져 제 몸 바치는 흙이 없다면 우리가 딛고 설 대지는커녕 지구도 존립이 불가하겠지.
처음에 태어날 땐 인간도 원석이야. 차츰 갈고 다듬으면서 제각각 다른 보석이 되어가는 게지. 여하튼 달은 달대로, 돌은 돌대로 제 자리에서 제 할 일 해야 세상의 빛이 되고 반석이 되겠지.
# 돈
돌고 도는 것과 제일 친한 것은 뭐니 뭐니해도 돈이 아닐까. 돈은 서커스단의 단장처럼 돌고 도는 재주를 가진 명수(名手) 중의 명수(命數)야. 돈이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 인간 운명과 재수가 달라지지. 코도 입도 없는 돈이 냄새도 잘 맡고 꿀꺽 삼키기도 잘해. 손도 발도 없는 돈이 큰 손 노릇을 하면서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면 세상이 흔들흔들 뒤뚱뒤뚱해.
돈은 자본주의의 꽃이자 우상이야. 잘 쓰면 아름다운 꽃이 되지만 잘 못 쓰면 괴물이 되거든. 약도 되고 독도 되는 파르마콘처럼 돈은 두 얼굴을 가졌어. 돈이 탄생한 본적지는 물질교환구역이지만, 그 마을에서 노는 사람에 따라 악기도 되고 흉기도 되지. 돈은 너무 세게 쥐면 숨통 끊어진다고 발버둥 치고, 너무 느슨하게 쥐면 손아귀에서 빠져 달아나버려. 적당히, 적당한 힘주기가 필요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까 탈이지. 인간이 돈을 만들어냈건만 그 돈이 되레 인간을 쥐락펴락한다네. 그래도 돈의 노예가 되어 굴신을 거듭하는 건 슬프잖아. 다다익선이라고? 아니, 다다화근(多多禍根)이 될 수도 있어. 군침 삼키며 담장을 몰래 넘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거든.
돈은 긴 인생길에서 운명처럼 만나 백년해로해야 할 당신(當身), 때로는 신당에 모시고 섬겨야 할 당신(堂神)이 되기도 하지. 무당춤을 추듯 돌고 돌면서 신의 자리를 넘보기도 하지. 팜파탈, 옴파탈처럼 치명적인 매력으로 유혹하는 돈은 우리 목숨줄을 쥐고 몸도 마음도 관장해. 돈이 없으면 밥도 없고 정(情)도 비껴가기 일쑤야. 그러니까 다독다독 등 두드리며 손잡고 가야 불화가 없겠지. 멀고도 험한 인생길, 미운 정 고운 정 함께 나누며 백년해로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돈은 주인 없이 세상을 떠돌다가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오거나, 아예 답신 없이 무한정 기다리게 하는 편지일 때도 있어.
돈은 성공과 패배의 갈림길에서 왼발 오른발을 내딛게 하지. 마치 나무에 부는 바람과도 같아. 나무는 훈풍에 가지를 키우지만, 광풍엔 가지가 꺾이고 뿌리도 뽑혀. 돈은 가뭄에 단비가 되기도 하고 개도 멍첨지로 만드는 재주가 있어.
그런데 분명하고 평등한 게 하나 있네.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든, 황금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헤매든, 평생 애면글면해도 이승 하직할 땐 왕후장상일지라도 노잣돈 단돈 한 푼 가져갈 수 없다네.
지금까지 디귿 나라를 돌면서 디귿을 초성 삼아 둥지 튼 친구들을 만나보았어. 하긴 그런 친구들이 하나둘이겠어. 책 한 권으로도 담을 수 없을 만큼 부지기수야. 나는 달빛 아래 다소곳이 서 있는 달맞이꽃도, 달빛 타고 돌담을 기어오르는 담쟁이덩굴도 사랑해. 디귿의 추억 속엔 동네방네 싸돌아다니며 도깨비 놀이하던 동갑내기 단짝 친구도 있고, 뒤꼍 낮은 토담을 사이에 두고 담북장 건네던 어머니와 이웃의 도타운 정도 있어. 긴 담뱃대 입에 물고 대청마루에 앉아 큰기침하시던 할아버지의 당당하신 모습도 보여. ‘담바귀타령’도 생각나네. ‘담다디’ 노래도, 그리고 더더더…. 그런 중에도 하필 달과 돌과 돈을 불러온 건 그들이 천상과 지상에서 인간 생존과 끈끈한 유대를 맺는 디귿의 기표들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야. 그들은 천·지·인의 영역에서 큰 축을 담당하지. ‘디귿과 만나기’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좌표 위에서 더듬더듬 물으며 가는 삶의 답 찾기요, 거칠고 어두운 인생 대해에서 돛단배 타고 등대 찾아가는 여정의 하나지. 다른 친구들은 다음에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지. 디귿이 달곰하고 멋진 영감(靈感)님과 더불어 와준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 두근두근 기다려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