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6/19 3

호미, 그 의미를 읽다/허정진

호미, 그 의미를 읽다/허정진 비탈진 뙈기밭에 아낙들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한낮도 아랑곳없이 김매기에 열심이다. 시간도, 공간도 흐름을 멈춘 듯 바르비종파의 어느 화가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둥글게 몸을 말아 바닥에 웅크리고 호미 쥔 손으로 후비적후비적 땅을 긁으며 늙은 오리걸음을 한다. 호미놀림이 날래고 능수능란하다. 몸의 일부분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러워 천의무봉의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 잡다한 풀뿌리들은 흙투성이 맨손으로 뒷정리하느라 덩달아 바쁘다. 머릿수건 동여맨 이맛살에 석류알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려도 일삼아 훔쳐낼 겨를이 없다. 밭이랑을 자식새끼처럼 끌어안고 양육하는 아낙들 머리 위로 구름 한 자밤 햇살을 가려주며 지나간다. 흙을 파고, 긁고, 무..

좋은 수필 2025.06.19

모과(木瓜) / 선 화

모과(木瓜) / 선 화 우리 집 마당에 우람한 모과나무 한 그루가 수문장처럼 버티고 서있다. 독특한 향기를 바람에 날리며 열매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이면, 담 밖에서 어슬렁거리는 행인의 낌새가 느껴진다. 목을 뒤로 꺾은 채 시각의 촉수를 높이며, 손이 닿지 않는 곳을 탐하는 눈길. 높은 곳을 향한 사람의 시선과 묵묵히 굽어보는 모과의 시선에선 갈망과 측은지심의 대비가 느껴진다.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며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고 있지만, 곁만 보고 폄하하는 비방 따위에 모과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기만 하다. 사람을 연거푸 세 번 놀라게 하는 재주가 있음 나와 보라는 듯 거침없는 표정이다. 우선 너무 못 생긴 외양에 놀라고, 맛을 보고 너무 맛없어 놀라고, 향기가 기막히게 뛰어나 다시 놀라게 하는 바로..

좋은 수필 2025.06.19

뒷모습 /윤남석

뒷모습 /윤남석 구부슴한 소나무가 목신木神처럼 줄지어 서서 차가운 바람을 부른다. 담장을 허문 병원화단에 이식된 소나무들은 고스란한 상태가 아니다. 비대칭적인 골간骨幹을 올이 숨숨한 부직포로 동여매고 스테이플러로 고정한 버팀목에 기댄 채 주춤거린다. 늘그막이 고향을 등진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어기대는 듯하다. 소나무가 부른 그 썰렁함이 어머니의 뒷모습에 율자栗刺처럼 돋친다.3층에 주차하는 사이, 주차장 입구에서 내린 어머니가 본관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신다. 흉부 외과진료를 위해 시골에서 어머..

좋은 수필 2025.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