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미, 그 의미를 읽다/허정진 비탈진 뙈기밭에 아낙들이 따개비처럼 붙어있다. 뙤약볕 내리쬐는 여름 한낮도 아랑곳없이 김매기에 열심이다. 시간도, 공간도 흐름을 멈춘 듯 바르비종파의 어느 화가가 그린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둥글게 몸을 말아 바닥에 웅크리고 호미 쥔 손으로 후비적후비적 땅을 긁으며 늙은 오리걸음을 한다. 호미놀림이 날래고 능수능란하다. 몸의 일부분처럼 유연하고 자연스러워 천의무봉의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 잡다한 풀뿌리들은 흙투성이 맨손으로 뒷정리하느라 덩달아 바쁘다. 머릿수건 동여맨 이맛살에 석류알 같은 땀방울이 흘러내려도 일삼아 훔쳐낼 겨를이 없다. 밭이랑을 자식새끼처럼 끌어안고 양육하는 아낙들 머리 위로 구름 한 자밤 햇살을 가려주며 지나간다. 흙을 파고, 긁고,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