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혈실 소묘/황진숙 난 매일 피를 뽑는다. 피를 봐야 끝이 난다.“팔 주세요. 채혈하겠습니다.”“왼쪽 팔이에요? 오른쪽 팔이에요?”“노다지 다니는데 무슨 피검사여.”“쪼금만 뽑아유. 겁나게 많이 뽑네.”“피가 왜 이리 시커멓대유.”“한번에 성공하세요. 제가 좀 예민해요.” 한 번의 채혈에 제각각의 요구사항이 보태진다. 각양각색의 문답으로 채혈실이 소란스럽다. 그나마 이 정도는 소박하다.“이봐요 애기엄마, 아니 어떻게 했길래 팔에 멍이 잔뜩 들은 거예요.”며칠 전에 채혈한 아주머니다. 혈관을 찌른 거라 꾹 눌러야 피가 멎는다고 얘기해 줬건만, 들은 체도 안 하고 마구 문지른 탓이다. 근육주사가 아니라서 문지르면 멍이 든다고 설명해줘도 막무가내다. 내 잘못이란다. 알아들으면서도 내뱉은 말을 주워 담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