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향기

문향이 넘나드는 선방입니다

2025/06/01 3

木佛 / 조현미

木佛 / 조현미 수목원에 들어선다. 나무와 나무가 반쯤 몸을 숙이고 객을 맞는 풍경이 흡사 일주문의 맞배지붕을 닮았다. 누군가 반쯤 읽다 만 경전 같기도 하고, 이마를 맞대고 선정을 ㅊ어하는 구도자를 닮은 듯해 사뭇 경건해진다. 한순간 그 많은 번뇌를 벗겠냐마는 나무들이 보시하는 초록 기운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바람소리, 새소리에 귀 씻고 들꽃들 염화미소에 마음 얹다 보니 잠시 벗어 놓고 온 일상이 하마 옛날이다. 수목원의 주인은 누가 뭐래도 나무들이다. 나무는 끌어안을 수 있는 만큼의 하늘만 욕심내며 서로의 그늘을 침범하지 않는다. 이웃을 생각해 둥글게 등이 굽은, 이끼랑 풀, 들꽃이며 새와 곤충들에게 제 몸을 거처로 내주는 배려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자체가 살아있는 한 좌座의 목불이다. 울울..

좋은 수필 2025.06.01

유주 / 조미정

유주 / 조미정 서원을 품은 대니산 기슭에 늙수그레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노란 등불을 켰다. 위로 쭉쭉 키가 자란 보통의 은행나무와 다르다. 키보다 더 넓게 옆으로 뭉텅뭉텅 가지를 벌렸다. 여러 그루의 나무가 일가를 이룬 듯 웅장한 은행나무는 몇 개의 쇠기둥에 구부정한 몸을 기대어 서 있다. 위풍당당해 보이던 모습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그간의 풍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람하던 한쪽 가지는 부러지고 반대쪽으로 뻗은 가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바닥에 주저앉았다. 찢기듯 벌어진 몸통 여기저기에는 썩은 살을 덜어낸 수술자국이 선명하다. 노인의 주름이 한 생애를 대변하듯 상처투성이의 은행나무는 볼 때마다 가슴이 짠해진다. 사실 은행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나무 중의 하나이다. 제 이름 속에 여러 무..

좋은 수필 2025.06.01

벼리/조미정

벼리/조미정 고깃배가 닻을 내린 부둣가에 그물이 낭창낭창 비린 몸을 말리고 있다. 갯바람에 뒤척일 때마다 바다에 시달린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골수는 다 빼주고 푸석한 구멍만 수백 개 남았다. 빠끔한 구멍사이로는 시도 때도 없이 바람이 든다. 어장을 찾아 던져놓았던 그물은 지난밤에 한쪽 몸이 싹뚝 잘린 채 배에 실려 왔다. 조류에 휩쓸려 떠다니다가 근처 다른 배가 쳐놓은 그물과 뒤엉켜버렸던 모양이다. 엉킨 매듭을 풀려고 얼마나 용을 썼던지 찢기고 쓸린 몸은 온통 푸른 멍 자국투성이다. 일일이 어루만지고 꿰매어서 손질한다. 그물을 만지면 허리 한 번 펼 날 없었던 엄마의 삶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쪽빛 바람 사이로 걸어 나온다. 엄마는 대청마루 귀퉁이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찢어진 그물을 깁고 있다. 한 ..

좋은 수필 2025.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