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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가 서 있던 자리 / 은옥진

에세이향기 2021. 5. 24. 09:39

큰 나무가 서 있던 자리 / 은옥진

 

창문을 열기에도 아직 이른 시간이다.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기에 내다보니 집 앞 빈터에 서 있는 아름드리나무가 막 넘어지고 있다.

“저 일을 어째.” 나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갔다. 함성 같기도 하고 통곡 같기도 한 소리에 이어 쿵, 와지끈하는 땅 흔들림이 이어졌다.

“어머나!” 비명이 내 목구멍에서 막힌다. 저 큰 나무가 땅바닥에 누워서 사지를 떨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부러진 밑동에는 굵은 밧줄이 감겨 있고, 그보다 조금 위쪽은 또 하나의 밧줄로 매여 있다. 길게 늘어진 밧줄 끝은, 저만치서 부르릉거리고 있는 덤프트럭 꽁무니에 매달려있다. 저 괴물이 잡아당긴 것이 분명하다. 엇비슷하게 잘린 그루터기는 물기 어린 속살이 드러나 처참하고, 잔가지에 매달린 채 바스스 소리를 내며 떨고 있는 이파리가 아침 햇살에 더욱 반짝인다. 옆에는 조금 전까지 그 나무에서 흔들거리던 그넷줄이 나동그라져 있다.

내 집 창문에서 바라보던 저 큰 나무가 저렇듯 느닷없이 갔다. 거목에 얽힌 내 기억은 아주 어렸을 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친구 집에서 놀다가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 설거지를 도우려고 마당에 내려섰는데, 맞은편 언덕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무 아래에선 동네 어른들이 비를 피하고 있었다.

느티나무라고 했다. 그날 이후 나에게 있어 큰 나무면 으레 느티나무이기 마련이었다. 둘레는 어른 팔로도 여러 아름이 될 것 같았고, 부챗살처럼 펼친 수관(樹冠)은 어엿한 정자 바로 그것이었다.

비가 그치자 모였던 사람은 흩어지고, 물기 어린 잎새들은 영롱하게 반짝였다. 때를 맞추려는 듯 매미들이 요란한 노랫소리가 햇살처럼 쏟아졌다. 그 뒤로도 성장하면서 나는 큰 나무들을 많이 보았고 그럴 때마다 그 의젓함을 외경하다가, 어느덧 그것이 하나의 동경으로 여물어갔다. “저런 나무 곁에서 살았으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음 보러 왔을 때, 창을 통하여 한 가득히 들어오는 햇살과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덩치 큰 나무가 보이는 게 마음에 들어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결정을 했다. 이사를 하고 난 뒤로는 날만 새면 창문을 열고 그 나무를 한참씩 바라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하였다.

매일 이른 시간부터 아주머니들이 그 나무 밑에 모여들었다. 나무 둥치에 등을 부딪치기도 하고, 더러는 에어로빅댄스 흉내도 낸다. 어떤 날에는 뜀박질에 맨손체조도 한다. 아침 식사가 끝날 즈음에는 나이 듬직한 아저씨들이 모여든다. 새벽의 아낙들보다 수가 더 많고, 꼭이 해야 할 이야기가 없는 듯한데도 담소가 이어지고 한쪽에서는 장기 놀이를 벌이기도 한다. 매미들의 합창도 이맘때쯤 기승을 부린다.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여기저기서 따라 울다가, 그칠 때도 비슷하게 뚝하고 멈춘다.

한낮이 되어 나무 그늘이 비었다 싶을 때면 야채 파는 아저씨가 트럭을 세워 놓고 낮잠을 즐기다가 시끄럽던 마이크 소리도 잠잠하다. 그곳은 항상 그늘지고 서늘하다. 트럭 소리가 멀어질 때쯤이면, 그 자리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다. 서쪽 하늘에 꽃구름이 피어나고 노을이 나무를 황금빛으로 물들일 즈음에, 아이들은 하나둘씩 짝을 지어 돌아간다. 어떤 때는 아이 이름을 부르는 어머니의 높은 목청도 들린다. 그러고 나면 나무는 깃을 찾아드는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다.

더위가 한창이던 어느 날, 그 빈터에 골프연습장이 생긴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아니나 다를까 높은 철탑이 세워지고 거기에 그물이 쳐졌다. 나무는 그늘에 가려 안개 낀 것처럼 보였다. 하루 종일 승용차가 오르내리며 골목에 분주함이 더했다. 그래도 우람하게 버티고 서 있는 나무는 당당하기만 했다. 나무 밑 그늘이 좁아지고, 공을 치거나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는 아이들이 오진 않았지만, 그런대로 사람들은 여전히 나무 아래를 즐겨 찾았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창문을 열었더니 앞이 탁 트이면서 그물이 철탑에서 벗겨져 여기저기 뭉쳐 있다. 그물에 가려져 흐릿하던 건너편 남새밭도 초점을 잘 맞춰 찍은 사진처럼 선명하다. 큰 나무는 다시 마음껏 숨 쉴 수 있을 것이고, 아이들은 전처럼 ‘스트라이크’를 길게 뽑으면서 야구놀이를 즐길 수 있으리라.

사흘이 못되어, 그 큰 나무가 밑동 째 잘려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다. 땅바닥에 누워 있는 나무는 굉장히 커 보였다.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가까스로 보듬을 수 있던 나무였는데, 전기톱을 든 남자가 아래위로 몇 차례 왔다 갔다 하더니 금세 동강난 토막을 만들고, 가지들을 다발로 묶어 쌓는다. 나무 밑을 찾던 낯익은 얼굴들이 손차양으로 햇볕을 가린 채 전기톱을 든 사나이의 동작만 이리저리 쫓고 있다.

그때 언덕 아래서 손을 내저으며 노인 한 분이 허위허위 올라왔다. 숨이 턱에 차 말을 더듬는다.

“아니 돌아가신 내 장형과 비슷한 나이였는데…. 내가 어릴 때 저 나무 아래서 팽이도 치고 연도 날렸지. 원 세상에 이럴 수가….”

팔십 고개를 보라보는, 인근에서는 터줏대감으로 알아주는 노인이었다. 그러나 거기에 모여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만 쳐다볼 뿐, 누구 하나 나서서 전기 톱질을 막지 못했다. 그다음 날 붕붕거리고 덜커덩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창문을 열고 보니 언덕 위는 휑뎅그레 비었고 불도저만 바쁘게 땅을 파 일궜다.

‘아파트가 들어선단다.’ 아, 그런 수순이었던가 잘려나간 큰 나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알알이 지난날의 기억들을 되새기리라. 바람에 가지를 일렁이던 때를, 새들이 날아들어 가지 위에서 지저귀던 때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지마다에 주렁주렁 매달리던 때를, 그넷줄에 매달린 아이들의 체취를, 그 그늘 밑에서 장기에 흥을 돋우던 촌로들의 여유로움과 고목만큼이나 주름진 얼굴로 파안대소하던 순간을, 지는 잎이 바람에 날리고 성긴 가지 네모꼴로 그물눈을 만들어 하늘이 별이 되어 보이고 그 자리에 눈꽃이 쌓이던 것을, 새로운 잎을 피우기 위해서는 긴 겨울 모진 추위도 외롭지 않았던 것을.

이제는 버혀서 없어진 나무. 나는 큰 나무가 서 있던 자리를 바라보면서, 그저 죄스러운 마음으로 자문을 거듭할 뿐이다. ‘사람들이 참 말 못 할 짓을 한 것은 아닐까? 꼭 그렇게 해야만 되었던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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